선거의 품질을 따져봅시다
  • 이현우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6.04.21 19:35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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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언론은 3당 교섭단체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낯선 권력 판도에서 향후 국회가 어떻게 운영될지 예측하느라 호들갑이다. 그러나 작금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다. 선거백서를 제대로 작성해 다음 총선에 교훈이 될 수 있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이번 선거의 질이 낮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선거의 품질은 절차적 평가와 내용적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절차적 평가는 공정성과 관련이 깊다. 이미 대한민국은 선거 부정이 발생해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수준의 국가는 아니다. 오히려 과도한 규제가 선거운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많은 지경이다.

문제는 내용적 평가에 있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사회적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선거운동에 반영했는지, 그리고 유권자들은 선거 과정에 참여하고 의미 있는 투표권을 행사했는지를 판단해봐야 한다. 새누리당의 공천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방패막이로 청와대 의지가 반영된 편 가르기 공천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은 외부 인사를 당 대표로 영입하면서 계파 청산에 골몰했다. 신생 국민의당은 정치 개혁의 구호를 내세웠지만 노회한 기성 정치인들이 승리가 가능한 본인의 고향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다. 세 정당 모두의 공천 과정에 당원이나 일반 국민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공약선거 역시도 공염불에 그쳤다. 전문가들이 평가한 각 정당의 공약은 낙제점 수준이다. 대부분이 엄청난 재원 소요와 부풀린 기대효과로 가득 찬 공약들이라는 것이다. 국민이 걱정하는 경제 이슈는 선거 기간 내내 변죽만 울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유권자의 투표정서는 ‘마뜩하지 않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투표율이 지난 총선보다 높아졌지만 대부분 사전투표 도입의 제도적 효과에 따른 것이다. 질적으로 투표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최선의 후보나 정당이 아니라 차악(次惡) 정도면 만족하는 기대 수준이었다. 그래서 교차투표가 유난히 많았다. 정말 좋아하는 정당이 있었다면 지역구와 정당비례투표에서 모두 같은 정당을 택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후보나 정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유권자들이 투표권 행사에 제약을 받은 것이다.

제3정당의 출현은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정당 변동 현상이 이번에 확인됐다.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표는 온전히 국민의당을 가장 선호한 결과가 아니다. 불만에 의한 투표 결정이 다수였다면 투표 만족도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 만족도 역시 높지 않다. 제3당을 택한다고 해서 투표가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뺄셈 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민주주의의 품질도 낮아진다.

발칙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투표용지에 ‘택할 만한 후보(정당) 없음’이라는 선택지를 넣는다면 이를 택한 투표자는 얼마나 될까? 확실한 것은 투표율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선거는 정치권이 유권자에게 만족스러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품질이 낮은 선거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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