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대중공업] “쌍용차 사태 재현하나”...협력사 줄도산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press.com)
  • 승인 2016.04.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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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사업부 협력사 8000여명 해고...“무급 15일 강제휴가 가라더라”
26일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5월 1일부로 회사를 관두겠다는 협력사 직원들이 급증하고 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은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규직에 한정된다. 현대중공업 협력사에는 폐업 피바람이 이미 불어 닥쳤다.

26일 최길선 회장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관련 5개 계열사 대표들은 긴급 담화문을 발표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특근을 폐지하고 중국과 경쟁 체제를 대비하자는 게 골자다.

담화문에는 인력 감축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이미 ‘3000명 구조조정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해양사업부 협력사들 줄도산을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여긴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정규직이 잘려나가지 않았을 뿐 구조조정은 진행되고 있다. 해양사업부 협력업체 노동자 8000여명이 이미 계약 해지됐다”고 밝혔다.

정 부위원장은 5월 1일부로 회사를 관두겠다는 협력사 직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협력사 사장들은 10~15일 무급휴가를 강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사실상 다른 직장을 구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26일 울산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현대중공업 마크가 새겨진 푸른 점퍼를 입은 최모씨(32)를 만났다. 최씨 행선지는 강남 고속터미널. 부모님 댁에 간다는 최씨는 지난 22일 밤 협력사 대표가 사무실로 불러 15일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사장이 휴가를 준 이유는 뻔 하지 않냐. 신변을 정리하고 새 직장을 알아보라는 것”이라며 “이미 내 안전모도 치워놨더라. 부모님께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하니 상황을 짐작하시는 것 같더라”며 씁쓸히 웃었다.

방어진 인근에서 만난 해양사업부문 협력사 전 대표 이모씨(57)는 지난해 12월 현대중공업의 기성 삭감에 못 견뎌 폐업했다.

이씨는 “사측이 고통을 분담하자며 기성을 삭감했다. 하지만 희생도 한계라는 게 있지 않나. 물량팀(작업 일용직)을 몇 달 쓰려면 거액이 든다. 결국 빚만 20억원 쌓인 채 폐업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20억원 빚 중 일부는 사채다. 사측에 정당한 대가를 요구했지만 돌아온 건 계약해지였다. 인생이 부도난 기분”이라며 “행여 빚이 집안을 무너뜨릴까 결국 합의 이혼했다. 다른 건 걱정이 안 되지만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아들이 맘에 걸린다”고 했다. 

26일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조 부위원장은 협력사 폐업이 정규직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 사진=박성의 기자

현대중공업 협력사 협의회는 지역자치단체가 나서 줄도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의회는 지난 25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협력사 협의회 사무실에서 김기현 울산시장과 간담회를 갖고 협력업체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협의회는 "현대중공업의 수주난으로 일감이 줄면서 1년 사이 약 100곳의 사내협력업체가 문을 닫고 197억원 상당의 임금이 체불돼 있다"며 "조선업의 특별고용지원 업종 지정과 경영자금 지원한도를 늘려줄 것"을 요구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협력사 폐업이 정규직으로까지 번져갈 것을 염려한다. 과거 평택 지역경제를 무너뜨린 쌍용차 사태가 울산 동구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9년 당시 쌍용차가 경영난을 겪자 협력사 431개가 폐업했다. 평택 지역 1·2차 협력업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진 끝에 쌍용차 정규직 2178명도 구조조정됐다.

정병천 현대중공업 노조 부위원장은 “과거 한진중공업과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도 협력사 직원 해고부터 촉발됐다”며 “협력사가 대거 폐업한 해양사업부문의 경우 정규직 구조조정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협력사 폐업이) 더 두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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