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5차 핵실험으로 벼랑 끝에 서나
  • 이영종│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
  • 승인 2016.04.28 17:47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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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핵실험 미끼로 북·미 대화 돌파구 찾기” 관측도 제기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 1월초 ‘수소폭탄 성공’이라고 주장한 4차 핵실험 후 불과 3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서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미 정보 당국은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대북 감시망을 집중시켜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김정은이 향후 어떤 패를 들고나올지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정보 당국이 첩보위성 등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풍계리 핵실험장에선 5차 핵실험 준비로 간주될 수 있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선 차량과 기술·노무 인력의 움직임이 3월에 비해 2~3배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인 ‘38노스’는 4월 중순 이후부터 촬영된 상업용 위성사진 등을 토대로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와 일부 관련 시설 주변에서 차량의 이동이 빈번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풍계리 북쪽 갱도 입구에서 트레일러나 차량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있었고, 서쪽 갱도에서는 광석을 운반하는 수레 2대가 궤도에 올라가 있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4월6일 ‘수소탄 시험을 성공했다’는 성명을 전해들은 평양 주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과거와는 다른 이례적인 핵실험 징후

이런 상황은 앞선 4차례의 핵실험이 2~3년의 기간을 두고 이뤄져 온 것과 비교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2006년 10월 첫 핵실험 후 2년 7개월이 지난 2009년 5월 2차 실험이 감행됐다. 또 2013년 2월 3차 핵실험까진 3년 9개월의 준비 기간이 있었고, 다시 2년 11개월 후 4차 실험이 벌어졌다. 뭔가에 쫓기는 듯 촉박한 일정의 추가 핵실험에 매달리는 건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드러낸 것이란 말도 나온다.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북한이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4월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북한이 고립 회피와 체제 결속을 위해 어떤 돌발적 도발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최근엔 5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도 포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특히 북한이 지난 4차 핵실험 때처럼 은밀한 준비를 통해 사전 포착이 어려울 정도로 기습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5차 핵실험 강행 쪽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건 북한의 심상찮은 움직임과 함께 김정은이 직접 추가 실험을 강력하게 지시했다는 점 때문이다. 김정은은 핵탄두 공개 같은 도발과 위협 행보를 이어가던 3월15일 노동신문을 통해 “핵 공격 능력의 믿음성(신뢰도)을 보다 높이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시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탄도로켓 시험 발사를 단행하라”고 촉구했다. 그 직후부터 풍계리에서 심상치 않은 동향이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과의 관련성이 제기된 것이다.

4차 실험을 한 후 석 달여 만에 추가 실험을 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한 북핵 전문가는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의 경우 만일의 실패에 대비해 관련 설비를 2개 정도 만들어놓는 게 관례”라고 귀띔했다. 1월 실험 때 남아 있던 여분의 핵실험 장치를 이번에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지난번 4차 실험 때와 비슷한 수준의 폭발력이나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데 머무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향상된 핵 능력을 과시하기보다는 추가 핵실험을 대내외 카드로 쓰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얘기다.

북한이 실제 핵실험을 강행하기에는 여러 제약 요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연초부터 핵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로 미국과 유엔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자초한 북한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3월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 2270호에는 중국과 러시아까지 찬성표를 던졌고, 이전과는 다른 촘촘한 대북 제재 망을 펼쳐놓고 있다. 추가 도발을 할 경우 김정은 정권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시점에 출구전략을 내놓을 것이란 얘기다.

핵실험 강행할 경우 남북 관계 더 악화

이런 맥락에서 4월20일 이뤄진 이수용 북한 외무상의 뉴욕 방문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실무회의 성격인 기후변화협정 서명식임에도 북한이 외교 책임자를 미국에 보내 미국과 유엔본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북·미 접촉이나 대화를 시도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수용은 회의 발언에서 미국의 핵 위협을 주장하며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 5차 핵실험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견해도 나오지만, 제재로 다급해진 북한이 탈출구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란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북·미 대화를 위해서는 비핵화에 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의 공식 입장인 가운데 평양 측이 대화 가능성을 타진하는 듯한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실험 직전을 비롯해 북·미 간 물밑 접촉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이 공을 들이고 있는 노동당 7차 대회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부담이다. 1980년 6차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리는 당 대회를 통해 김정은은 명실상부한 자신의 시대를 선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5월초 열릴 당 대회를 앞두고 속속 평양과 지방의 당 대표를 선출하는 행사를 진행하며 분위기를 띄워가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 시대의 비전 선포에는 무엇보다 경제 문제, 즉 민생 챙기기가 핵심이다. 자칫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로 제재와 압박만 켜졌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당 대회를 앞두고 김정은의 리더십 과시와 체제 결속 차원에서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하지만 후폭풍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이미 도발 위협 행보의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4월말 한·미 합동 군사연습 종료도 긍정적 요인이다.

한·미 양국 정부는 북한이 안보리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에 나선다면 김정은 체제가 감당하기 힘든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어떻게든 5차 핵실험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서다. 북한이 도발 쪽으로 한 발짝 더 옮아갈 경우 남북 관계나 한반도 상황이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벌써 북한에 대한 해상 봉쇄 등의 초강력 조치가 거론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김정은의 선택이다. 추가 핵실험으로 체제의 명운을 건 도박을 할 것인지, 아니면 대화 모드로의 전환을 꾀할 것인가 하는 결정이다. 김정은의 핵 버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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