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전통 음식의 지혜 나를 구하고 지구를 구한다
  •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
  • 승인 2016.04.28 18:15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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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건강을 지키며 지구 환경도 보호하는 음식 섭취의 중요성

“나는 어렸을 때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한다는 것은 우리 집안에서 제공하는 31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골고루 먹는 것이라고 믿었다. 4가지 기초식품군이란 초콜릿, 바닐라, 딸기, 그리고 모카 아몬드퍼지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저술가 및 사회운동가 존 로빈스(69)의 고백이다. 세계 굴지의 아이스크림업체인 베스킨라빈스 일가의 상속자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상당 기간 동안 소아마비를 비롯해 많은 질병에 시달렸다. 여러모로 건강을 되찾으려고 노력한 끝에 그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회사를 물려받는 대신 진정한 건강이란 무엇인지를 추구하게 된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의 몸과 음식,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얽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해지려면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고, 건강한 음식은 건강한 환경 속에서 구해지며, 거꾸로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술가 및 사회운동가 존 로빈스는 지구를 구하고 인간을 구하려면 육식은 가급적 피할수록 좋다고 말한다. ⓒ 연합뉴스

1987년 로빈스는 <새로운 미국을 위한 식단(Diet for a New America)>이라는 책을 발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국내에서는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육식을 위주로 한 현대인의 식생활이 인간의 건강과 지구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또렷하게, 그리고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강렬한 반응은 1988년 ‘지구를 구한다’는 뜻의 ‘어스세이브(Earth Save)’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단체가 내건 목표는 건강을 증진시키는 동시에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음식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스트레스 심한 환경에서 자란 음식물 피해야


구체적으로 어떤 음식이 그런 음식일까. 존 로빈스와 어스세이브가 말하는 내용을 간단히 추려보자. 첫째, 육식은 피할수록 좋다. 로빈스는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런던이 봉쇄되자 육식을 강제로 끊을 수밖에 없었던 영국인들은 오히려 건강 수준이 더 좋아졌다. 세계적으로 소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키워지는 소들이 세계의 자동차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있다. 그리고 동물도 사람처럼 존중되어야 한다는 생명윤리적 이유도 든다. “동물들이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은 설탕 발린 거짓말입니다. 그게 아니라 인간이 그들의 생명을 ‘뺏는’ 것입니다. 그들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저항하고 싸웁니다. 마치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 된다면 그럴 것처럼.”

 

둘째, 농약과 제초제, 기타 유해 화학 성분을 많이 이용하는 농법으로 농사를 짓거나, 가공할 때 유해 화학 성분을 많이 쓴 음식을 피하라는 것이다. 이런 음식에는 유해 성분이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것을 일상적으로 섭취했을 때 우리의 건강이 손상될 뿐 아니라 그 유해 성분으로 대기·토양·물을 오염시켜 환경도 망친다는 것이다.

 

셋째, 유전자 변형 식품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생산되는 과정에서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그런 음식을 섭취했을 때 인간의 건강을 해친다. 모든 생물이 만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강력한 독성을 띠고 있어 특별히 내성이 있지 않다면 자신에게뿐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도 위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꼭 유전자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재배되거나 사육된 것은 스트레스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2007년 핀란드 쿠오피오(Kuopio) 대학 페트리 칼리오(Petri Kallio)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재배되거나 사육된 동식물을 장기간 섭취할 경우, 섭취한 동물의 체내에도 유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유전자 표현형이 생긴다고 한다. 이 연구는 로빈스의 말을 비롯해 많은 생태론자의 주장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물질적 존재와 생명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중요하고도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함께 일합니다. 구름·바다·산·화산·식물·박테리아·동물 등 모두가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우리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동물에게 무자비한 일을 한다면 동물들의 고통은 바로 우리에게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생명의 거미줄(great web of life)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음식을 피할 경우,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할까.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어스세이브가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팩트(fact)만 봐도 짐작이 간다.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식재 중 80% 이상이 인간에게 독성 작용이 있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형 식품을 포함하고 있다. 프렌치프라이·케첩·피자를 채소로 치지 않는다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채소를 전혀 먹고 있지 않다. 물론 미국 얘기다.

 

아직은 미국보다 건강한 한국의 음식문화


어스세이브는 건강하고 안전한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미국 현실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존 로빈스와 그의 동료들이 제시한 지침을 한국 상황에 맞게 약간 조정해서 적용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음식 상황은 미국과 비교할 때 어떻게 다를까.

 

나쁜 점부터 얘기하자면, 한국도 식품 오염이라는 측면만을 봤을 때 아마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농약과 화학비료 문제는 물론이고 1990년대 후반부터는 유전자 변형 식품도 엄청나게 도입되었다고 식품 안전성 운동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좋은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음식문화에 아직 전통적인 지혜의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채소를 중심으로 한 반찬을 많이 섭취한다는 점과 김치·장류 등 발효식품이 발달해 식재의 위해성이 해독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한국인의 식탁에 일상적으로 오르는 봄나물 종류와 열무·아욱·토란 등 많은 토종 식재료들은 아직 유전자 변형 기술로부터 안전하다. 또 지난 10~20년간 유기농법이 확대돼 조금만 신경을 쓰면 비교적 안전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인간은 영양이 풍부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먹어서 입에 맞고 먹은 다음 속이 편하며 다음에 배가 고파질 때 다시 생각나는 음식. 복잡한 식품 안전성 지침보다 훨씬 실용적인 가이드가 아닐까. 그런 음식이 지구를 구하는 음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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