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인물난’에 떠오르는 50代 기수론
  • 남상훈│세계일보 기자 (.)
  • 승인 2016.05.05 17:46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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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개혁성향 남경필·원희룡 지사 조기 등판론 ‘솔솔’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새누리당이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미래권력을 담보할 수 있는 유력 대권주자들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야당의 거물 정치인에게 일격을 당해 낙선했다. 친박(親박근혜)계 대권주자로 육성하려던 안대희 전 대법관도 야당 중진에게 고배를 마셨다.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김무성 전 대표는 여유 있게 생환했지만 패장의 멍에를 안고 리더십에 타격을 입어 대권주자로서의 입지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김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본거지인 PK(부산·경남)에서도 야권에 상당한 의석을 빼앗겨 정치적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카드도 여의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총선 참패로 크게 위축된 상황이어서 당내 지지기반이 없고 정치력도 검증되지 않은 ‘반기문 대망론’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관측이다. 총선 참패로 대권주자들이 일제히 몰락하면서 여당의 정권 재창출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는 형국이다. 당 안팎에서 수권능력을 상실한 ‘불임정당’이 아니냐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 시사저널 포토, ⓒ 시사저널 박은숙


‘반기문 대망론’ 실현 가능성도 낮아져

절박해진 여당에선 50대 기수의 조기 등판론이 부상하고 있다. 개혁성향이 강한 원조 소장파인 남경필 경기지사와 원희룡 제주지사가 그 대상이다. 세대교체와 새 인물로 이반된 민심을 되돌려 수권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무소속인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50대 기수이긴 하지만 여당 복귀가 불투명해 차출 대상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남·원 지사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된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20년 만에 3당 체제가 이뤄진 정국에서 민심은 여야 간 ‘협치(協治)’를 요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협치를 실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 임기 초반 2년간 맞닥뜨릴 여소야대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한 경험을 쌓고 있는 셈이다.

남 지사는 경기도의회의 여소야대 구도에서 야권의 협력 없인 도정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인 점을 고려해 야당에 사회통합부지사를 배려하는 연정(聯政)을 이끌고 있다. 사회통합부지사는 복지·여성·환경·대외협력 등 일부 조직에 대한 예산권과 인사권을 부여받았다. 원 지사는 민간과 행정이 같이 협력해 도정을 운영하는 협치를 실행에 옮겼다. 협치는 관이 독점하던 정책결정 집행권에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권한까지 부여해 수평적 협력을 하는 것이다.

두 사람 중 남 지사의 최근 행보가 심상찮다. 남 지사는 총선 이후 잇따라 경기도 출신 국회의원들과의 만찬회동을 주도한 데 이어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며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남 지사는 4월25일 오후 도내 여야 국회의원 당선자들을 굿모닝하우스(옛 경기지사 공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연정 강화, 공유적 시장경제 등 자신의 도정 공약을 비롯한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국회 차원의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앞서 16대 국회 소장파 모임 ‘미래연대’ 인사들과 회동한 데 이어 도내 낙선자 위로 만찬을 갖기도 했다. 이 자리에선 자연스럽게 당의 위기상황에 대한 우려와 쇄신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남 지사는 이영조 전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에 이어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의 창당 멘토 역할을 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까지 도정 사업에 합류시켰다. 남 지사가 내년 대선 출마를 겨냥한 사전준비 작업에 돌입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원 지사는 중앙에서 도정 현안을 적극 챙기는 모습을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4월25~26일 이틀 동안 정부부처 장관들과 잇따라 만나 도정 현안 해결과 내년도 국비예산 확보에 주력했다. 그는 4월25일 오후 서울정부종합청사에서 국민안전처 장관 등을 만나 지역 현안 사업과 내진 보강 예산 등 안전망 확충을 위한 정부 차원의 관심과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원 지사는 이튿날인 4월26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행정자치부·국토교통부 장관을 차례로 만나 감귤명품화창조센터 건립과 말산업 육성 특화단지 조성 지원을 요청하고 제주2공항의 조기 건설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기간 단축과 공항 개발 기본계획 용역비 반영을 요구했다.

“남·원, 내년 대선 등판 가능성 낮다” 전망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도지사 임기가 2018년 6월까지여서 내년 12월 대선에 출마한다면 임기 중 출마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두 사람의 조기 등판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조기 등판론에 대해 “남·원 지사는 새누리당에 꼭 필요하다”면서도 “도정(道政)에 전념하고 있는 현 지자체장으로서 다음 대선에 나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도 지사를 해봤지만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며 “지금 워낙 당이 난파선이 된 상태지만 좀 지나면 소위 대선 모드로 갈 걸로 보기 때문에 그때 (두 지사 외에) 당내의 숨은 보석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도 “현재로선 몸값이 상승 중인 남·원 지사가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서 “두 사람이 당분간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데 노력하겠지만 초임 단체장이란 한계와 야당 대권후보의 강세 등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연말 정도에 대권 불출마를 선언하고 차차기 대권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여권 내부에선 과거 사례를 들어 두 지사가 내년 대선에 조기 등판할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한다.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 당시 한나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야당 후보를 압도하며 사실상 대통령직을 놓고 양자대결을 펼쳤다. 야당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선 정동영·손학규·정세균 의원이 대권주자군을 형성했으나 여당 대권주자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결국 정동영 의원이 야당 대선후보가 됐지만 여당의 이명박 대선후보에게 대패했다.

현재 여야 대권주자의 경쟁력은 그때와 정반대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문재인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민의당에선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강력한 대권주자군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에선 김 전 대표가 야당 대권주자에 한참 뒤처져 있고 남·원 지사는 대권주자 여론조사에 제대로 포함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두 지사가 이번 대선에서 승산이 없는데 임기 중에 대권에 출마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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