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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아이가 떠나기 전에 명예 회복시켜주고 싶다”

대전=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5.05(Thu) 17:58:04 | 1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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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통해 흔히 접하는 성폭력 사건들. 피해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사람들은 분노한다. 미성년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성폭력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당 사건은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사람들의 분노는 이내 식어 내리고, 관심은 멀어진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또 다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는다.

시사저널은 지난 2012년 대전의 한 중학교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지적장애 여중생 전 아무개양의 이야기를 다뤘다<시사저널 2013년 8월29일자 1245호 ‘너의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아’ 기사 참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전양은 매끄럽지 않은 어투로 같은 반 남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있을 수 없다’는 학교, ‘혐의를 찾지 못했다’는 경찰과 계속적인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2년8개월이 지난 시점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해당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전양 어머니의 하소연이었다. 4월27일 전양의 집을 찾았다. 전양의 어머니와 언니는 그간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털어놨다. 전양의 건강도 더욱 악화돼 있었다. 두 상자 분량의 사건 관련 자료들은 ‘그들의 시간이 여전히 그때에 멈춰 있다’고 하소연하는 듯했다.

지적장애 여중생인 전 아무개양은 구체적인 행동을 묘사하며 같은 반 남학생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진 속 글자는 전양의 일기에 나오는 문구다. ⓒ 시사저널 박은숙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었다

겨울방학을 앞둔 2012년 12월26일의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전양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전양은 같은 반 남학생이 자신의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괴롭혔다고 털어놓았다. 구체적인 행동을 흉내 내기도 했다. 전양의 어머니와 언니는 곧바로 학교를 찾았다. 전양은 교실로 들어가 비어 있는 한 학생의 책상을 지목했다.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앞에서 남자 화장실에서 상황을 재연했다.

담임교사는 다음 날까지 반 학생들을 상대로 개별 면담과 설문조사를 벌였다. 사건 시간으로 추정되는 4교시에 ‘누군가 나가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토대로 성추행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수사기관에 별도의 신고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전양의 신체 상태에 대한 어떤 진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튿날 전양의 가족은 ‘학교폭력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를 찾았다. 뒤늦게 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건 발생 석 달 만인 3월26일 피의자 윤 아무개군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경찰은 가족들이 이의신청의견서를 제출하자 재수사에 나섰고, 사건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했다. ‘일관되게 자신의 피해 사실에 대해 보고하는 등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원스톱 지원센터 임상심리사 이자영씨의 의견서를 함께 제출했다. 뒤늦게 산부인과를 찾아 ‘hymen(처녀막)이 11시, 3시 방향으로 intact(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서도 덧붙였다. 경찰 수사가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사건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후 전양의 성추행 주장은 법적으로 ‘없는 사건’이 됐다. 전양이 지목한 남학생은 법적 다툼 끝에 증거 불충분으로 ‘불처분’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는 전양의 피해 진술만 갖고 사건이 이뤄졌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이 돼버렸다.

학교의 사후 대처는 미숙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었지만 형식상 구색을 갖췄을 뿐 전양의 신체·정신적 피해, 초기대응 문제 등을 다루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결과만으로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전양의 어머니에게 “학폭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사건 결과에 불만이 있을 경우 10일 이내에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는 내용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건 이후 전양은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병원에서 입원·통원 치료를 받았다. 전양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교복 입은 학생을 보고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양의 출석 독촉·경고장을 보내왔다. ‘정당한 사유 없이 계속 결석을 한다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전양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독촉·경고장을 보낸 데 대해서도 감정이 상했다.

“아이 명예회복을 위해”…학교와 싸운 3년

전양 가족들의 분노는 학교를 향했다. 경찰에 즉시 신고를 하지 않아 충분한 증거를 확보할 기회를 놓쳤다는 원망이었다. 전양의 어머니는 학교 담임교사와 특수교사 등을 즉시신고 의무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고소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4조 제2항에 따르면, 신고의무자는 피해자의 피해사실 주장이 접수됐다면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어도 의무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은 고소 두 달여가 지난 뒤에 교육청에 이관했다. 이후 교사들은 2013년 12월 15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교사들은 교육청의 과태료 처분에 이의를 제기했고, 교육청은 사건을 다시 대전지방법원에 송치했다. 대전교총과 한국교총이 법률 자문에 나섰고 회원들이 탄원서까지 제출하며 교사 편에 섰다. 결국 법원에서는 2014년 2월 ‘해당 사건이 법적으로 혐의 없음 처분을 받은 상황에서 신고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과태료 부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과태료 처분을 취소했다. 이 과정에서 전양의 가족들은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조사를 거쳤는지, 법원에 어떤 내용이 제출됐는지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다. 이렇게 교사들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가족들은 교육청이 관련 서류를 법원에 제대로 제출했는지 의심했지만, 이를 확인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전양의 가족은 더 이상 예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욱 커졌다. 경찰 수사도, 법원의 판단도 신뢰하지 못했다. 사건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동네 마트조차 갈 수 없었다.

전양의 어머니(오른쪽)가 4월27일 사건 관련 자료를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민우


“사건 이후 가족의 삶은 더욱 끔찍해졌다”

전양의 가족은 따가운 시선을 받아가며 각종 증거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경찰 조사 결과를 받아든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특수교사가 전양에 대해 “성에 대한 욕구에 죄의식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말이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가끔 거짓말을 한다” “끌어안거나 뽀뽀하려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등의 의견을 진술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전양의 가족은 청와대 게시판과 다음 ‘아고라’ 등에 억울한 사연을 올렸다.

전양의 어머니는 현재까지도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여섯 차례 계절이 바뀌었을 무렵 일부러 멀리 찾아갔던 대전시 유성구의 한 마트에서 전양의 특수교사를 만났다. 전양의 어머니는 해당 교사를 보자 전양에 대한 진술을 따져 물었다. 특수교사는 이날 충돌을 빌미로 전양의 어머니를 공무집행방해와 폭행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법원은 ‘말다툼은 있었지만 폭행은 없었다’는 전양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전양의 어머니에게 벌금 150만원을 부과했다. 마트 폐쇄회로(CCTV) 화면을 법영상분석연구소에 의뢰해 “폭행을 당했다는 특수교사의 진술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다”는 소견을 받아내 2심 재판부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담임교사와의 악연도 이어졌다. 전양의 어머니가 담임교사의 아이에게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전양의 어머니는 뛰어다니는 아이와 부딪혀 커피를 쏟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고의로 쏟았다며 상해죄로 경찰에 고소했다. 전양의 어머니는 지난해 11월25일 2심 재판부로부터 과실이 인정돼 과실치상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던 전양의 어머니는 어느새 ‘전과자’가 돼버렸다.

사범대에 다니던 전양의 언니는 ‘교사의 꿈’을 포기했다. 사건이 잘 해결되리라 믿었던 그는 갈수록 사건의 실체와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전양 사건에 매달리게 됐다. 다른 친구들처럼 인턴 경력을 쌓을 여유조차 없었다. 힘들게 공부해 따 놓았던 어학 성적은 유효기간이 지나버렸고, 취업 스터디조차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스무 살 남짓의 앳된 대학생은 어느새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픈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며 취업조차 미루고 있었다.

전양의 어머니는 “지난 2012년 이후 수년간 민원인으로 살아야 했고, 그사이 아이(전양)는 대학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며 “병실에서 3일 밤낮을 꼬박 새우고 법정으로 향했던 것은 생사를 오가는 아이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고 울먹이며 말했다. 전양의 언니는 “동생 사건 자체도 끔찍했지만 그 후 저희 가족의 삶은 더욱 끔찍해졌다”며 “끝이 보이지 않는 법정 다툼으로 저희 가족은 다시 일어설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전양의 언니는 다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더 이상 수사기관이나 교육기관이 지금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 저희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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