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등쳐먹는 악덕 사건 브로커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5.05 17:59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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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당사자의 다급하고 절박한 심리 악용…온라인 ‘무료 상담’도 조심해야

법조비리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해외원정 도박으로 수감 중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의 재판 과정에서 유명 법조 브로커가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하고 있다. 정 대표의 항소심 첫 배당을 받았던 현직 부장판사는 이 법조 브로커와 동반 해외여행을 다녔고, 다른 브로커와의 저녁 자리에서 정 대표의 구명 로비를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그동안 숱한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브로커’들은 단골처럼 등장했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이 있는 곳에는 브로커들이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요즘에는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전문으로 하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개인파산’은 과도한 빚을 진 사람들을 법률적으로 구제해주기 위한 것이고, ‘개인회생’은 파산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빚을 없애거나 줄여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이 두 가지 모두 민·형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변호사만 대행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개인파산이나 회생은 수임료가 높지 않아 법조인들이 꺼리는데, 이런 틈새를 비집고 브로커들이 의뢰인의 약점을 잡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 이들은 변호사 명의를 빌리거나, 변호사를 고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실제 업무는 무자격 브로커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모두 변호사법 위반이다.

가장 악랄한 것은 ‘사건 브로커’들이다. 이들은 특정 사건 피의자나 피해자 가족 등 소송 당사자들에게 접근해 승소나 구속, 형 집행정지 등을 미끼로 거액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게 다반사다. 특정 변호사의 선임을 요구하거나 판사나 검사들에 대한 ‘로비 자금’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한다.

군 의문사 사건의 유족들도 사건 브로커들의 농간에 적잖은 피해를 입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공군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김 아무개씨가 지방 출장을 갔다가 갑자기 사망했다. 유족들은 김 하사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철저한 수사를 요구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유족들은 인터넷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하사의 누나는 포털사이트 뉴스에 있는 군 사건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그것을 보고 한 군 사건 브로커가 접근해왔다고 한다. 그는 “내가 군 의문사 사건 전문기관에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연락처를 남겼다. 김 하사의 누나가 전화하니 사무실이 인천국제공항 근처라고 해서 절박한 마음에 그곳에 사건기록을 들고 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브로커는 김 하사의 부모님께 계속 돈을 요구했다.

누나 김씨는 “처음에는 ‘내가 군에 높은 사람을 안다’면서 자료 조사비 명목으로 부모님께 돈을 요구해 30만원을 통장으로 입금했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같은 방법으로 돈을 요구했다. 그러다 제대로 조사 한 번 하지 않은 채 ‘몸이 아프고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부모님께 200만원 정도를 더 뜯어갔다”고 말했다.

김 하사 유족들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번은 사건 브로커가 변호사를 소개했는데, 그는 “검사나 판사한테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해야 한다”면서 돈을 뜯어갔다. 누나 김씨는 “군 사건 전문 변호사를 만나기도 했는데, 자료 조사비만 2000만원을 요구했다. 그래서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더니 수임 서류를 부모님 앞에서 찢어버리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사건 브로커들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이병석 새누리당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14년까지 4년간 발생한 법조비리 범죄는 1만725건으로 1년 평균 2680건, 하루 평균 7건에 달했다. 이 중 민·형사 사건 브로커가 5353건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인지도 낮은 변호사들과 결탁

그렇다면 사건 브로커들은 피해자나 가해자 측에 어떻게 접근할까. 이들 중에는 유독 전직 경찰 출신이 많다. 특정 로펌 또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고문’이나 ‘실장’ ‘부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브로커로 나서고 있다. ‘전직’을 내세워 친분이 있는 경찰관들에게 접근해 사건 정보를 빼내거나 사건 수임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경찰관들이 사건 정보를 브로커들에게 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동료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알아봐주겠다며 피의자 측으로부터 돈을 받는 일도 있다. 사건 브로커들은 피의자 가족들에게 접근해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고 경찰에서 좋게 조사받으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경찰관을 통해 손을 써야 한다”며 금품을 요구한다.

요즘 사건 브로커들이 가장 많은 곳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이용자와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증하다 보니 사건 브로커들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영업장’을 옮겨갔다.

특정 사건 이해 당사자의 경우 포털사이트 ‘지식인’이나 ‘카페’ ‘블로그’ 등에서 관련 정보를 찾기 마련인데, 이곳에 각종 법률 지식을 올려놓고는 댓글 등으로 문의하면 사무실로 유인해 자신들과 결탁한 변호사들과 연결시켜준다. 사건 수임계약이 체결되면 소개비를 받는 방식이다. 보통 10%에서 40%까지 받는다.

온라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무료 법률상담’도 조심해야 한다. 브로커들이 ‘무료 상담’을 미끼로 의뢰인을 유인해 사건을 수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굳이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도 되는 사건까지도 이해 당사자들의 불안과 기대 심리를 자극해 현혹한다. 그러나 막상 수임계약을 체결한 뒤에는 태도가 돌변해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거나 부실한 변론을 하는 일이 많아 의뢰인은 수임료와 소송비용만 날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는 사건 브로커가 변호사 몰래 의뢰인과 사건 수임계약을 하고 돈을 받는 일도 있다. 이들은 편의상 자신들과 결탁한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으로 등록돼 있다. 가장 많은 직함이 바로 ‘사무장’이다.

사건 브로커들은 자신과 일하는 변호사들과 틀어져도 카페나 블로그 등을 운영하며 또 다른 변호사와 결탁한다. 한 건의 수임이라도 아쉬운 변호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건 브로커들과 동업을 가장한 ‘공생’을 선택한다. 법조계에서는 사건 브로커들과 결탁한 변호사들에 대해 “시장 기반이 없는 인지도가 낮은 변호사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법조계에서는 사건 브로커들에게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무료상담보다는 가급적 유료상담을 받는 게 사건 해결에 좋고, 만약 상담을 받을 경우 해당 변호사가 직접 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변호사를 소개받아야 할 때는 가급적 여러 명의 변호사로부터 충분한 상담을 받아야 하며, 변호사 선임료도 비교해서 결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법률문제에 대해 신뢰가 가고 승소 가능성이 가장 높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건 브로커들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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