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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지옥이다 벗어날 수 없다

청소년 자살의 암울한 그림자 ‘학교폭력’…“학교에 발 딛는 순간 지옥”

서종한 | 프로파일러(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ㅣ . | 승인 2016.05.05(Thu) 17:59:52 | 1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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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위치한 주거지에서 김진수 학생이 학교에서 쓰던 줄넘기 끈을 이용해 목을 맸다. 다행히 죽지 않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뇌손상이 심해 뇌사 판정을 받았고 곧 호흡기를 뗐다. 머지않아 그의 호흡은 멈췄다. 중학교 1학년이던 진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 망자(亡者)의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사실이 왜곡돼 전달되거나 상당 부분 와전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받아들인다. 특히 학교폭력과 관련된 문제라면 책임회피와 맞물려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는다. 교사와 같은 반 학우, 심지어 부모조차도 자신의 자식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모른다.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쉽게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 일러스트 임성구


 행복했던 초등학교  시절

13세의 진수는 지적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정신지체가 있었고 왼쪽 다리를 조금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정상인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아 표시가 나지 않았다. 전교생이 20명 남짓한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마냥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6년 동안 같은 반에서 지낸 친구들은 진수의 장애를 알았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함께 놀아주며 공부가 힘들 땐 과목을 나눠 가르쳐 줬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함께 뛰놀며 아무런 걱정 없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학원은 가지 않았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말이 많고 농담을 잘했던 진수의 활기찬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인사성이 밝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장래 희망이 선생님이었다. 지능이 떨어져 학습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꼼꼼하게 복습과 예습을 하며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시골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그마한 사업을 하던 부모님을 따라 대전에 있는 큰 중학교로 입학했다. 다행히 지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던 진수는 일반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입학하고 나서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진수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말도 없고 웃음도 사라져 집에 오면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찬 진수는 시선을 회피하거나 주변을 살피며 경계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떤 때는 땅만 보며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느라 바빴다. 진수가 사춘기라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중학교와 일진회

중학교 친구들은 진수가 지능이 조금 떨어져 자신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친구들은 교묘하게 그의 약점을 이용했다. 친한 척하며 다가온 같은 반 학생의 권유로 일진회에 들어갔다. 일진회가 뭔지도 몰랐던 진수는 단지 그들과 사이좋게 어울리며 지내고 싶은 순진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점차 진수에게 술과 담배를 강요했다. 여학생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질 것을 요구했고, 그 수위가 높아져 친구의 지갑을 훔쳐 올 것을 강요했다. 진수는 잘못된 행동이라며 그들의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

이때부터 덩치 좋은 몇 명의 학생들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무리들에 의해 상습적인 폭행이 이뤄졌다. 정신지체를 처음 본 학생들은 말을 더듬는 그를 따라 하며 “더듬 병신”이라고 놀렸다. 쉬는 시간에는 교실 뒤편에 세워 놓고 반 아이 전체가 돌아가며 뺨을 때렸다. 마치 통과의례인 것처럼 아침이면 반 아이 절반이 진수를 때리며 놀리는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진수는 점차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에 잠식된 채 고개조차 들 수 없었다.

목과 가슴 여기저기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진수는 일진회에서 나오고 싶었다. 악몽 같은 그곳에서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일진회에서는 진수의 요구에 화를 내며 바닥에 강제로 눕혀 속옷과 바지를 벗기는 등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성폭력을 자행했다. 울며 놓아 달라는 외침에도 침을 뱉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진수를 세워 놓고 스파링을 했다. 진수는 발목뼈에 금이 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다리를 절며 집으로 들어서는 진수를 보고 맞벌이하던 부모님은 그제야 무슨 일이 있느냐며 추궁했다.

진수는 보복이 두려워 사실 그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넘어졌다고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했다. 더 이상 부모님과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부모님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또래에서 흔히 겪는 일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진수는 이후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악몽을 꿔 깨기가 일쑤였고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두려움에 온몸을 떨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과거의 행복

진수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서 일절 말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지내며 일상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보냈다.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했지만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라 말을 아꼈다. 일진회는 진수에게 50만원을 가져오면 탈퇴를 받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저금통을 깨고 용돈을 더 보태서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가져다줬다. 그러면 놓아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진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계속 돈을 요구했다. 부모님의 돈을 훔칠 수 없었던 진수는 아끼던 시계와 모자를 팔았다. 이러한 금전적인 요구는 진수가 가진 것이 바닥날 때까지 이어졌다.

진수는 모든 것을 다 잃은 날 혼자 앉아 가족 앨범을 한 장씩 넘겨봤다. 함께 뛰놀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 가족들을 떠올렸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과거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죽는다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곳이든 지금 있는 곳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믿었다. 죽음 말고는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없어 보였다. 죽음 앞에 마주 선 진수는 그 선을 넘기로 마음먹을 만큼 고통의 한계에 다다랐다.

진수는 일기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옛날 함께 행복하게 놀던 시간이 그립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날 좋아하던 친구들도 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이다. 벗어날 수 없다. 이 지옥에서 날 구할 사람도 없다.”

진수는 그날 죽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어머니께 언제 늦게 들어오시는지 물어봤다. 그런 날을 몇 개 정해 놨다. 어떻게 죽을지도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다. 뉴스에서는 목을 매는 방식이 가장 많았다. 진수는 학교에서 쓰던 줄넘기로 목을 매 죽기로 마음먹었다.

죽기로 마음먹고 난 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버지의 품이 그리웠다. 함께 목욕탕에 가서 아버지 등을 밀어 드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지친 어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 부모님은 한동안 대화가 없던 아들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며 좋아했다. 그날 저녁 외식을 하고 노래방을 갔다.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다.

이튿날 가게를 보던 어머니께서 저녁에 먹으라며 도시락을 집으로 배달시켜줬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진수는 그렇게 혼자 화장실에서 목을 맸다. 유서는 남기지 않았다. 가게를 정리하고 10시쯤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집 안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불안감을 느꼈다.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었고 부엌 식탁에는 먹다 남은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목을 맨 진수를 발견했다.


“폭행당한 이유 알 수가 없다”

영문을 모른 채 죽어 간 아들이 이상했다. 유서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사춘기 성장통이라고만 생각했던 부모님은 죄책감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였던 희정이가 자신의 부모님께 진수의 학대 사실을 알렸고, 곧 진수의 부모에게도 이 사실을 전달해 줬다. 경찰조사가 이어졌다. 그렇게 진수가 죽고 나서야 다들 부산을 떨며 관심을 보였다. 교사들은 반 아이들 몇몇을 통해 어느 정도 정황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들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다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어 했다. 큰 분란 없이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그에게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을 거리낌 없이 퍼붓고 협박을 했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때렸다. 친구들의 폭력은 당연한 일과처럼 됐다. 하루라도 진수를 괴롭히지 않으면 볼일을 못 본 것처럼 불편해했다.

진수는 매 순간, 아니 삶 자체가 고통스러운 지옥 같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발을 딛는 순간 마지못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쉬는 시간은 죽기보다 더 싫었다. 학교에서 한순간도 편히 쉴 수가 없다.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진수는 깊은 탈진과 우울감으로 자신의 내면에 깊이 침잠(沈潛)했다. “병신 같은 놈”이라며 스스로 지옥에 빠져들었다. 바로 ‘자학’이다. 그리고 또 외로움에 사무쳤다.

폭력은 치명적인 전염성을 갖고 있어 주변 학생들을 금방 감염시킨다. 심지어 교사조차도 마찬가지일 때가 적지 않다. 아주 치명적이지만 반대로 아주 단순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무감각해진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은 각자의 시·공간에서 내면의 상처를 안고 그냥 무기력한 채 주저앉는다. 진수가 느낀 모든 고통은 저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을 지닌 카멜레온과 같았다.

용기 내어 맞서 싸우라는 말은 그 작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강요나 다름없다. 아무도 진수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를 모른다. 함께 밥을 먹고 TV를 보고 잠을 자는 가족들조차도 시리도록 고통스러운 마음의 절규를 듣지 못한다. 하루하루 쳇바퀴를 돌리듯 모두 일상의 부속품이 되어 산다. 아이의 마음에는 도대체 관심이 없듯 말이다.

진수는 극단적인 방법을 찾았다. 차가운 화장실에서 자신이 가장 아꼈던 줄넘기로 목을 맸다. 진수가 죽은 다음 날 친구들은 그한테서 뺏은 돈으로 운동화를 샀다. 새 운동화를 보여주며 ‘득템’ 했다며 자랑질까지 했다. 진수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진수를 괴롭혔던 아이들은 그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양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불리(bully·괴롭히는 사람)에 어울리는 또 다른 대상을 포식자처럼 찾아 나선다. 그래서 이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표정을 닮았다. 보고만 있어도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남겨진 자를 바로잡아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측면에서는 희망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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