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엔 칭다오’ 우리 입맛 사로잡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6.05.05 18:22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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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입맥주 매출 1위 차지한 ‘칭다오맥주’의 저력

1894년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두고 청나라는 일본과 전쟁을 치렀다. 청은 치열한 전투 끝에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듬해 청과 일본은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을 체결했다. 청은 랴오둥(遼東)반도, 대만(臺灣), 펑후(澎湖)제도를 일본에 할양키로 했다. 이때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에 압력을 가했다. 바로 ‘삼국간섭’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직 서구 열강에 대적할 만한 군사력을 갖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보상을 청조(淸朝)에 강요했다. 1896년 만주 철도 부설권을 획득했고, 1898년 다롄(大連)과 뤼순(旅順)을 강탈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가만있지 않았다. 1897년 독일은 자오저우(膠州)만을 획득했고, 이듬해 프랑스는 광저우(廣州)만을 조차했다. 독일은 자오저우만의 한 해변에 큰 군항을 세웠다. ‘푸른 섬’이란 이름을 가진 도시 칭다오(靑島)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됐다.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은 뜻밖의 유산을 남겼다. 바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칭다오맥주’다.

국내 맥주 시장은 ‘칭다오맥주’의 전성시대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서구의 중국 침략으로 탄생한 ‘칭다오맥주’

1903년 독일과 영국의 사업가들은 라오산(?山)의 광천수에 주목했다. 예부터 라오산은 ‘태산이 높다 해도 라오산만 못하다’라고 할 정도로 풍광과 물이 좋았다. 그들은 40만 멕시코 은화로 사들인 독일의 생산시설에다 라오산의 맑은 물을 더해 맥주를 제조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게르만칭다오맥주회사’를 설립하고 2000톤의 맥주를 처음 생산했다. 해가 다르게 기술이 좋아져 1906년 독일 뮌헨 국제박람회에선 금메달도 땄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일본이 칭다오를 점령하면서 맥주공장의 운영은 일본 회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 뒤 30년간 대일본맥주회사가 경영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나서야 중국인에게 되돌려줬다. 1946년 칭다오맥주공장이 설립됐고,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영체제로 바뀌었다.

이런 칭다오맥주가 최근 우리 소비자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8일 이마트는 “올해 1~3월 수입맥주 판매량에서 칭다오맥주가 유럽 맥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산 맥주가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2위는 하이네켄, 3위는 호가든, 4위는 아사히 등으로 전통의 수입맥주 강자가 차지했다. 독일과 일본 맥주는 오래전부터 수십 종이 유통돼 왔다. 이마트는 “최근 중국요리의 수요가 증가하고 양꼬치 전문점이 크게 유행을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칭다오맥주는 2000년 한국에 처음 출시됐다. 오랫동안 일부 맥주 마니아를 제외하고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인기 수입맥주 반열에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맥주 수입량은 1만9605톤으로 전년 대비 무려 70.6%나 늘었다. 현재 중국 맥주는 일본 맥주(3만1000톤), 독일 맥주(2만4847톤)와 더불어 수입맥주 시장에서 3강 체제를 구축했다.

사실 칭다오맥주는 국제적으로 어지간한 한국 맥주보다 지명도가 훨씬 높다. 이는 과거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기록에서 드러난다. 192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미국 국제맥주대회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1991년 벨기에 주류박람회, 1993년 싱가포르 술 전시회, 1997년 스페인 주류엑스포 등에서 금상을 탔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 맥주 시장의 판매량 1위는 칭다오맥주가 아니다. 우리에겐 낯선 화룬쉐화(花潤雪花)가 8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화룬쉐화는 중국 최초로 맥주 판매량 1000만 킬로리터(kL)를 돌파한 기업이다.

그러나 이익은 칭다오맥주가 훨씬 많이 낸다. 2014년 총판매량은 915만 킬로리터로 화룬쉐화보다 낮지만, 총매출액은 290억4000만 위안(약 5조2272억원)으로 전년보다 2.68%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이 19억9000만 위안(약 3582억원)으로 전년 대비 0.85% 늘었다. 이는 화룬쉐화보다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2014년 중국 맥주 생산량은 4921만 킬로리터로 전년 대비 2.8% 감소했지만 전 세계 생산량의 24%를 차지하고 있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브라질, 러시아, 독일이 추격하고 있다. 중국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은 연간 37리터로 아직 세계 평균보다 낮다.

서구에선 1인당 국민소득이 10% 증가할 때마다 맥주 소비량이 1.5리터씩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국 인구가 13억7000만명인 데다 1인당 소비량이 해마다 1리터씩 증가하고 있어, 언제든 성장가도를 내달릴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맥주는 현재 중국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술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바이주(白酒)를 제치고 생산과 소비에서 주류 시장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산둥성 르자오의 칭다오맥주 공장에서 직원이 제품을 확인하고 있다. ⓒ REUTERS


세계 유수 맥주사도 ‘칭다오맥주’에 러브콜

중국인이 맥주를 즐겨 마시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주택가 상점에서 팔리는 맥주 값은 750밀리리터(mL) 1병당 5위안(약 900원)에 불과하다. 이런 가격 경쟁력은 중국이 세계 최대의 보리 생산국이기에 가능했다. 풍부한 원료는 맥주산업을 발전시키는 큰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각지의 지방정부는 주류세를 낮게 책정하고 맥주회사를 경쟁적으로 설립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브랜드의 맥주가 수십 가지나 된다. 지역마다 로컬 브랜드가 현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맥주업체 중 대륙 전체를 무대로 판매하는 기업은 칭다오, 화룬쉐화, 하얼빈 등 극소수다.

이런 상황 덕분에 칭다오맥주는 세계 유수의 맥주회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업계 1위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는 칭다오맥주의 지분을 틈날 때마다 사들이고 있다. AB인베브는 버드와이저·코로나·호가든 등을 생산하는 벨기에와 브라질의 합작사다. 일본 맥주 업계 1위인 아사히도 2009년 AB인베브로부터 칭다오맥주 지분 일부를 사들였다. 그 후 칭다오맥주와 제휴해 전 세계와 중국 내 판매망을 넓히고 있다.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칭다오맥주 축제도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맥주 축제는 1991년부터 지역 관광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시정부와 칭다오맥주가 협력해 개최해 오고 있다. 칭다오맥주의 명성을 등에 업고 단시일 내에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체코 플젠의 필스너 우르켈과 자웅을 겨루는 세계 3대 맥주 축제로 발돋움했다.

현재 중국에는 수백 개의 맥주 공장이 있어 같은 브랜드라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살아남은 중국 맥주가 칭다오맥주를 앞세워 우리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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