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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도, 베니스도, 베를린도 다 겪은 아픔이었다

부산영화제도 거쳐야 할 세계적 국제영화제들의 독립 얻기 위한 역사적 과정들

김성욱│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ㅣ . | 승인 2016.05.05(Thu) 18:29:35 | 1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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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항상 예술에 간섭하려 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광채를 원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들이 원하는 광채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광채는 정치인들이 간섭할 때 사라져버린다. 그 빛이 예술 안에서 스스로 타오르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관계자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지지하며 냈던 성명이다. 베를린영화제는 지금의 ‘부산영화제 사태’가 프로그래머들의 영화 선택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영화제 독립성에 대한 간섭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 4월18일에는 9개의 영화단체들이 참여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汎)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부산시가 영화제의 자율성을 계속 부정한다면 올해로 예정된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뱅상 랭동의 모습. 68혁명으로 생긴 영화제의 위기를 슬기롭게 넘긴 칸영화제는 지금 세계적인 권위를 획득했다. ⓒ AP연합


‘감독주간’ ‘영 포럼부문’ 탄생시킨 계기 돼

이런 발언들은 곧바로 지난 세기 국제영화제에서 벌어졌던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제의 독립성과 관련한,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 혹은 문화적 예외를 둘러싼 논란의 역사들 말이다. 영화가 탄생한 이래로 국가의 주도성과 영화제의 독립성을 획득하려는 노력 사이에는 충돌이 있어왔다. 파시즘하에 창설된 베니스영화제가 전후에 그 잔재들을 일신하려 했던 시도들이나, 패전 이후 동서냉전의 시기에 반공문화의 최전선이자 자유세계 문화를 전파하는 정치적 역할을 안고 출발했던 베를린영화제가 환골탈태를 시도했던 과정들, 그리고 ‘68혁명’을 거치면서 영화제의 독립성을 쟁취한 칸영화제의 역사가 그러하다. 이러한 영화제들이 국제영화제로 성장하는 데에는 1960~70년대 영화인들의 영화예술의 독립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 주요한 동력이었다. 영화란 특별히 산업·국가와 결합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편에 정치적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고, 이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예술적·미적 관심을 표명한 예술가들과의 사이에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가령 프랑스를 대표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공식 부문 외에 ‘감독주간’이 신설된 역사가 하나의 사례이다. ‘감독주간’은 ‘프랑스 영화감독협회’가 주최하는 부문으로,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발발 때문에 생긴 영화제의 개최 위기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젊은이들의 열기로 거리가 뜨거웠던 5월, 누벨바그의 주역이었던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제 막 개막한 칸국제영화제에 난입해 영화제의 중단을 요구했다. 당시 ‘프랑스 영화감독협회’가 이를 주도했다. 이들의 행동을 지지해 배우 모니카 비티, 감독 테렌스 영과 로만 폴란스키, 루이 말 등이 심사위원을 사퇴했고, 결국 5월19일 칸영화제는 중단을 선언한다. 영화제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칸영화제가 죽었다. 이는 범죄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칸영화제는 이듬해 ‘감독주간’ 부문을 신설했다. ‘프랑스 영화감독협회’가 주관해 상영작을 자유롭게 선정하는 부문이다. 그때까지 칸영화제는 마치 올림픽 행사처럼 각국의 대표작을 출품했는데, ‘감독주간’은 그런 관료주의와 투쟁하면서 작가들이 직접 영화를 선정해 구래(舊來)의 영화제에 신선한 기운을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감독주간 창설자 중의 한 명인 피에르-앙리 들뢰는 이를 두고 “영화 선정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심사위원도 상도 없지만 오직 영화 팬들을 위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1972년에는 영화제가 모든 공식 상영작들을 선정한다는 독립성을 표명하기도 했다. 영화인들의 시위로 신설된 ‘감독주간’은 성공적인 행사로 치러졌고, 이 부문에서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 논란을 불러온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 등 영화가 상영됐으며 이후 짐 자무쉬, 소피아 코폴라, 스파이크 리, 타비아니 형제, 다르덴 형제들의 작품이 소개될 기회를 얻었다.

베를린영화제 또한 1970년에 큰 위기를 겪었다. 20회를 맞은 영화제가 열리던 중 그해 젊은 독일 감독 미카엘 베어호벤이 만든 베트남 반전 영화 <O.K>를 두고 심사위원장이 ‘반미 영화’라 비판하며 상영중지를 요청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에 항의해 젊은 영화인들이 영화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마침내 1968년의 칸영화제처럼 영화제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진다. 영화제로서는 최대의 위기였다. 이 시위를 주도한 것은 ‘독일 시네마테크의 친구들’로, 이 중에는 독일 예술영화관 ‘아스날’의 대표인 울리히 그레고르가 있었다. 그는 안티-베를린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 위기를 타개한 것은 새로운 합의의 시도였다. 어떻게 예술적인, 가치 있는 영화를 자유롭게 상영하는 기회를 획득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베를린 문화장관 베르너 슈타인이 중재에 나서 울리히 그레고르의 운동을 영화제에 편입하는 것을 제안해, 다음 해 자유롭게 이들이 영화작품을 선정하는 ‘영 포럼 부문’이 신설됐다. 이 부문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들어진 뛰어난 작품들도 소개되었고, 베를린영화제가 정치성의 한계를 넘어서 국제영화제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됐다.

부산영화제, 독립성 획득하는 기회 될 것

이렇듯 지난 세기 영화제의 역사는 문화적 예외와 다양성, 독립성을 획득하는 긴 싸움의 과정이기도 했다. 여기서 조절과 새로운 합의가 중요했다. 무엇보다 영화예술 애호가들과 작가들이 주도한 시민운동은 국제영화제가 성장하는 데 튼튼한 밑거름이 됐다. 그 덕분에 영화제가 단지 각 나라의 영화를 소개하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 시장이 장려한 영화와는 다른 영화들을 끊임없이 순환하고 유통시키는 본연의 역할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를 되돌아볼 때 지금 부산영화제가 처한 상황은 단순한 위기는 아니다. 어쩌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다. 영화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부산영화제의 스태프들 또한 역사의 교훈을 숙지하고 있다. 그래서 부산시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다이빙 벨>을 상영했던 결정이 여기서 나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도리어 영화제가 더 큰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역사의 교훈을 정치인들과 행정가들이 모르거나, 무시하거나, 거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제의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부산영화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위기를 돌파하는 것으로 새로운 영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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