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등 비극적 참사, 국가의 책임감 부재로 인한 것”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3:58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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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직속 그레고리안 대학의 프랑수아-자비에 뒤모르티에 총장

2014년 8월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흘간의 방한 일정 동안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등 한국 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만나는 등 고통받는 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4월17일 또 한 명의 무게감 있는 가톨릭계 인사가 한국을 찾았다.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의 프랑수아-자비에 뒤모르티에(Françoir-Xavier Dumortier·68) 총장이다. 그레고리안 대학은 교황이 직접 총장을 임명하는 바티칸 교황청 직속 대학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17명의 교황이 선출된 명문 신학대학이다. 1551년 이탈리아 로마에 설립됐으며, 가톨릭 남자 수도회인 예수회에 소속된 대학 중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3400여 명의 신학도들이 소속돼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유현석)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뒤모르티에 총장은 2010년부터 이 대학의 총장을 맡아왔다. 저명한 신학자이자 주요 가톨릭계 인사로 알려진 뒤모르티에 총장의 동아시아권 국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4월20일 시사저널과 만나 세월호 사건, 다문화 사회,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처한 위기 등 국내외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문답을 나눴다.

“남겨진 자들에게 ‘기억’은 일종의 의무”

그가 신부(神父)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나와 은행에서 3년 정도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학과 법을 전공했다. 그 시절 사회 이슈만큼 그가 애정을 쏟은 분야는 철학과 신학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처음 신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신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신학도의 길을 걸으면서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성당은 사회적으로 참여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람들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심지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나는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 ‘기억’은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잊지 않는다’는 게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런 그에게 지난해 한국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어떤 의미로 읽힐까.

“세월호 사건은 이번에 한국에 와서야 처음 얘기를 들었다. 때문에 그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하긴 어렵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때 책임을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오다가 배가 난파해 사망하는 사건이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이런 비극적 참사가 일어나게 된 데에는 그 배 선장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진정한 책임은 선장도 난민도 아닌 ‘국가’라고 생각한다. 국가 책임의 부재로 인해 국제적·사회적으로 많은 갈등과 비용이 초래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분리할 게 아니라 ‘우리’로 통합해야”

그는 ‘실천’을 강조하며 실천적 종교인의 철학을 피력했다. “유럽의 경우 종교가 점점 세속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교회나 미사에 직접 가지 않아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신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가톨릭·비가톨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순히 가톨릭이라는 특정 종교의 전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개념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종교는 사랑이다’는 명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런 교황의 실천적 신념을 지지한다.”

4월16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 난민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을 방문해 12명의 시리아 난민을 데리고 바티칸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소 바티칸에서 노약자·장애인들과 폭넓은 스킨십을 하며,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발언도 서슴없이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뒤모르티에 총장은 과거 특정 주교모임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종종 봐왔다고 한다. 그는 “(교황과)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친분이 있다”고 말했다.

뒤모르티에 총장은 한국에서 충남 예산의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인 수덕사,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유적지인 솔뫼성지, 한국 예수회 본부가 있는 서강대 등을 방문했다. 그는 특히 “불교 사찰을 방문한 것은 난생처음이다”며 수덕사 방문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천주교의 기본 신념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신념을 존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자유·다양성·톨레랑스를 존중한다.”

대표적 다문화 국가인 프랑스에서 자란 그는 다문화 사회의 문턱 앞에 선 한국 사회에도 ‘톨레랑스’ 정신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정치학도 출신 사제답게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국가의 책임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국가 간 장벽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세계화 흐름 속에서 다문화·다인종·다언어 사회로 진입하고 있으며, 누구도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을 순 없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정책결정자들이 외국인들이 한 사회에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돕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분리해 생각할 게 아니라 ‘우리’로 통합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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