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얘기할 땐 녹음기 켜놔야 한다”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7:09
  • 호수 138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文의 두루뭉술 화법’이 당내 논란 일으킨다”는 지적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8월말이나 9월초에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당내 갈등 원인이었던 ‘김종인 당 대표 추대론’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더민주는 4·13 총선 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당 대표로 합의추대하자는 일각의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추대론을 놓고 불협화음을 냈던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사이의 갈등은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언론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언론은 ‘상수’로 봐야 한다. 갈등을 부각시키고 때에 따라선 갈등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를 감안하면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최대주주(문재인 전 대표)와 ‘제왕적 리더십’의 전문경영인(김종인 대표)으로 나뉘어 있는 더민주의 독특한 지배구조는 언론이 기사 쓰기에 딱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결국 언론의 책임 이전에 두 사람의 독특한 캐릭터가 일차적인 갈등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 연합뉴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 연합뉴스

 


“文, 원래는 친절할 정도로 자세히 말하는 사람”

 

일단 문 전 대표 측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그의 ‘화법’(話法)을 지적한다. 문 전 대표의 두루뭉술한 화법이 말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으로 꼽는 4월22일 회동 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두 사람은 이날 저녁 총선 후 처음 만나 단독 회동을 가졌다.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에게 전당대회 불출마를 권유했다”고 했지만,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경선 출마 권유를 내가 거절했다”고 했다. 똑같은 주제에 대해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자 김 대표는 일부 언론에 문 전 대표에 대해 “더 이상 (둘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016년 초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삼고초려’했을 때도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대선까지 당을 맡아달라고 했다”고 한 반면, 문 전 대표 측은 “(당 대표가 아니라) 대선까지 경제민주화 문제를 맡아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자신의 발언 때문에 오해를 산 것은 비단 김 대표와의 사이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다. 2015년 5월 문 전 대표는 당시 같은 당에 있던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에게 ‘당 혁신기구 위원장’을 제안한 바 있었다. 안 대표는 당시 이를 거절했다. 이에 문 전 대표 측은 “안 전 대표가 본인이 적절치 않다며 (위원장에) 조국 교수(서울대)를 추천했다”고 언론에 말했으나, 안 대표는 기자들에게 “추천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14년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을 놓고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와 면담한 후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문 전 대표가 면담에서 이 교수 영입에 사전 동의했느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런 식의 논란이 매번 반복되면서 ‘문 전 대표와 이야기할 때는 녹음기를 틀어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문 전 대표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것은 상대방의 면전에서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기보다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긍정하는 식의 화법이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원래 문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의 직설적 화법의 소유자다. 문 전 대표와 함께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문재인 전 대표의 두루뭉술한 화법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친절할 정도로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이다. 같이 근무할 때도 ‘예’ ‘아니오’가 분명했는데, 애매모호하게 말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당 대표를 지내면서 화법이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당 대표 되면서 두루뭉술 화법으로 변화

 

실제로 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때나 2014년 비상대책위원으로 복귀했을 당시 직설화법으로 도마에 오른 경우가 많았다. 2014년 9월24일 비대위에선 세월호 특별법 제정 문제에 대해 “새누리당이 대통령과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대안을 안 내놓고 있다”며 “그것은 정치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내린 독재자의 통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증세 논란과 관련해서도 “여당은 증세가 아니라고 우기더니 이제는 서민증세가 아닌 부자증세라고 우긴다”며 “견강부회도 유분수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역시 같은 달 25일 노무현재단 포럼에선 “새정치연합(옛 더민주)은 ‘정치 자영업자들의 담합 정당’ ‘출마자들의 카르텔 정당’ ‘대중 기반이 없는 불임 정당’”이라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다.

 

이런 문 전 대표의 화법이 다소 두루뭉술하게 변한 것은 2015년 2월8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로 보는 시선이 많다. 당시 문 전 대표는 함께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박지원 의원(현 국민의당 원내대표)으로부터 “문재인 후보는 당권도, 대권도 다 갖겠다고 한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국물까지 다 마시겠다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 발언 이후 당내에서 ‘친노 패권주의’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문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 인사들이 강경파로 불렸고, 이들의 특징으로 대체로 수위 높은 발언, 강한 결집도 등이 꼽혔다. 즉 문 전 대표의 직설화법은 친노 세력의 좌장으로서, 당내 반대파들에게 공격당하기 좋은 시빗거리였던 셈이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전당대회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문 전 대표는 과거와 같은 직설적 화법으론 구설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지금의 (두루뭉술) 화법으론 논란이 벌어지는 것 같다”며 “당 안팎에서 모두 공격받는 최대 계파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원죄’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4월25일 김 대표와의 갈등설과 관련해 “언론이 사소한 진실 다툼으로 두 사람 틈을 자꾸 벌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의 전당대회가 예정된 8월말이나 9월초 전에 계파갈등이 불가피하다고 보면, 문 전 대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