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믿음은 리더들의 인격과 도덕성에서 나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7:42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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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굿 컴퍼니 컨퍼런스’ 키노트 스피치 연사로 나서는 윤종용 前 삼성전자 부회장의 ‘신뢰경영’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에겐 다양한 꼬리표가 붙는다. ‘샐러리맨의 신화’ ‘존경받는 최고경영자(CEO)’ ‘닮고 싶은 CEO’ 등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 많은 꼬리의 몸통은 ‘신뢰(trust)’다. 신뢰는 그가 45년 동안 삼성에서 근무하고, 그 가운데 18년간 CEO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 밑거름이 됐다. 윤 전 부회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해서 장수하는 기업이 초일류기업이고, ‘굿 컴퍼니’(좋은 기업)다. 이들 기업은 기업의 본질적 가치인 수익성·안정성·성장성을 유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통찰력과 선견력(先見力) 등 대여섯 가지의 ‘성공 인자’를 갖춰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와 믿음”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이 올해 ‘제4회 굿 컴퍼니 컨퍼런스’를 개최하면서 ‘대한민국의 대표 CEO 윤종용’을 키노트(keynote) 스피치 연사로 초청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가 바로 ‘NEO TRUST’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신뢰 구축을 의미한다. 윤 전 부회장은 5월2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2016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나는 이렇게 삼성전자 신뢰를 쌓았다’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굿 컴퍼니 컨퍼런스는 ‘좋은 기업이 좋은 사회를 만들고, 결국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슬로건 아래 시사저널이 2013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대규모 국제 포럼 행사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 뉴스뱅크 이미지

 

 
“상사가 부하 의심하면, 부하도 일할 흥 안 나”

 

 

윤종용 전 부회장이 신뢰와 믿음을 중시하게 된 것은 어릴 적 체험에서 시작됐다. 1944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그는 훈계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묵묵히 아들을 믿는 농부 아버지는 어린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경북대사대부고를 졸업한 그는 철학과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철학은 배고프고, 물리학은 수학에 약해 포기했다. 그나마 물리학에 가까운 분야라고 생각한 것이 전자 분야였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1966년 졸업 후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첫 발령처는 ‘한국비료’였다. 흙먼지가 불어오는 현장에서 막사 생활을 하며 첫 직장생활을 견뎠다.

 

그러나 삼성그룹은 주력 사업이던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한 후 신규 사업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동력으로 찾은 것이 전자 분야였고,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삼성전자의 전신)이 설립됐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윤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로 발령 났다. 비디오사업부 부장 시절이던 1986년, 그는 이병철 회장의 경영 목표가 무리라고 판단해 사표를 냈고, 이후 2년 반 동안 필립스와 현대전자에서 근무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면서 윤 전 부회장은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다. 이 회장은 중요한 것만 자신이 결정하고, 나머지는 임직원에게 맡기는 성격으로 잘 알려졌다. 이후 삼성전자 경영을 통째로 맡기다시피 할 정도로 윤 전 부회장을 특별히 신뢰했다.

 

윤 전 부회장이 사회 초년병 시절인 1970년대 초, 국내 전자업계는 부품은 고사하고 금형 제작과 플라스틱 사출기술도 원시적 수준이었다. 일본이 트랜지스터·집적회로·컬러TV 등을 자체 기술로 생산할 그 당시, 삼성은 일본 기업인 산요전기와 NEC에 직원 50명을 보내 그들의 기술을 배우도록 했다. 그 엔지니어 중에 윤 전 부회장도 있었다. 그런 삼성전자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것으로 여겼던 일본 소니를 30여 년 만에 제치고 세계 전자업계 1위로 올라섰다. 그 주역이 윤 전 부회장이다.

 

그는 1990년 삼성전자 가전 부문 대표이사가 됐다. 이후 삼성전기, 삼성전관, 삼성그룹 일본 본사 등에서 18년 동안 CEO로 일했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삼성전자 CEO를 맡아 회사를 지켜냈고, 2000년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해 2008년까지 세계적인 전자기업으로 키웠다. 삼성전자는 1993년 반도체 메모리 생산에서, 2006년부터 TV 판매 수량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2년 삼성전자는 ‘비즈니스위크’가 발표한 글로벌 IT(정보기술) 100대 기업 가운데 1위에 선정됐고, 2006년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전자기업 3위가 됐다. ‘미투(me too·모방) 업체’가 최첨단 디지털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윤 전 부회장은 이후 2011년까지 상임고문으로 있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직을 연임한 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삼성전자의 태동기부터 세계적인 기업으로 비상할 때까지의 역사를 일군 주역이 윤 전 부회장이다. 그는 현업에 있을 때나 퇴임 후에도 입버릇처럼 신뢰와 믿음을 강조해왔다. 한때 삼성을 떠난 자신을 다시 받아준 일, 회사가 경영을 오랜 기간 맡겨준 일 모두가 신뢰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퇴임 후 여러 강연에서 “상사가 부하를 의심하면 불안하고, 부하도 일할 흥이 나지 않는다”며 신뢰를 강조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일 잘하는 CEO’ 2위에 올라

 

그는 어떻게 신뢰를 쌓아왔을까. 서울 강남에 있는 개인 서재 겸 사무실 벽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사물에 대해 연구해 지식을 넓힌다는 의미다. 윤 전 부회장은 “초급 간부는 지장(智將)이 돼야 한다. 지식을 쌓아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그 이상 임원부터 CEO까지는 덕장(德將)이 돼야 한다. 덕을 갖추려면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다. 나를 중심으로 위, 아래, 옆에 있는 사람과 신뢰를 쌓지 않으면 덕장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에서 믿음을 얻으려면 현장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 현장 경험 위에 쌓은 신뢰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발휘된다는 게 윤 전 부회장의 지론이다. 그는 1년에 4개월 이상은 외국의 현장에서 생활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삼성 전용기를 자주 이용했다. 일반 여객기를 이용하려면 정해진 운항시간을 맞춰야 하지만 전용기는 밤이든 새벽이든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현역 시절 삼성 전용기를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으로 꼽힌다. 해외 현장을 누비기 위해 1년에 10번 정도 전용기를 이용했다. 윤 전 부회장은 “리더가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현장에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신뢰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활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게 반평생을 기업인으로 지낸 윤 전 부회장의 경험이다. 그는 “기업이 추구하는 변화와 혁신의 60~70%는 실패하는데, 이는 구성원들에게 신뢰와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뢰와 믿음의 핵심은 리더들의 인격과 도덕성에서 나온다. 리더의 인품·정직성·도덕성·희생정신 없이는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 또 신뢰와 믿음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하 간에 예절을 지키고 인격체로 존경하고 대접해야 한다. 또 공정하게 평가하고 보상해야 한다. 모든 조직원이 자신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공정하게 대우받는다고 확신할 때 그들은 조직을 신뢰하게 되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뢰와 믿음은 기업의 발전으로 나타났다. 그가 삼성전자 CEO와 부회장을 맡은 1996~2008년 사이에 주주 수익률이 1437% 올랐다. 이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 경영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2009년 ‘세계에서 가장 일 잘하는 CEO’ 상위 100명을 선정 발표하면서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고문을 2위에 올렸다. HBR은 윤 전 부회장이 삼성을 메모리칩 제조사에서 디지털 신기술 선도 업체로 발전시킨 공로를 높게 평가했다. 1위는 1997년부터 10년간 애플 경영을 맡아 1500억 달러의 시장 가치를 창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2005년에는 포춘지 선정 ‘영향력 큰 아시아 기업인’에서 1위 자리를 차지했다. 2007년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명예회원으로 이름이 올랐다. 그는 “지금의 삼성을 어떻게 혼자 만들 수 있겠나. 믿음을 주고받은 임직원들이 이룩한 결과”라며 재차 신뢰를 강조했다.

 

2002년 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스퀘어에서 열린 ‘삼성 올림픽 홍보관’ 개관식에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이건희 회장, 올림픽 관계자들과 개막 버튼을 누르고 있다. ⓒ 연합뉴스

 

 
“자세한 얘기는 컨퍼런스 강연장에서 전달”

 

 

신뢰경영만큼은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며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윤종용 전 부회장이지만, 그도 자식만큼은 자기 마음대로 어쩌지 못하는 아버지였다. 그의 아들 윤태영은 초등학교 시절 주산과 암기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누르지 못한 아들은 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윤 전 부회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 공부하도록 했다. 아들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큰 사고(?) 없이 마쳤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앞둔 어느 날 아들 윤태영이 자취를 감췄다.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윤 전 부회장은 문득 연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다는 아들의 말이 생각났다. 출입국관리소 등을 수소문한 끝에 아들이 귀국한 사실을 알아냈다. 윤 전 부회장은 아들을 입대시킬 목적으로 병무청에 영장을 신청했다. 

 

마침 생활비가 떨어진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 전 부회장은 아들에게 신체검사를 받도록 했다. 병무청에서는 허리 디스크 판정이 났고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아 그 결과를 제출하라고 했다. 윤 전 부회장은 아들의 입대를 도와달라며 한 대학병원 의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의사는 디스크 진단을 내렸고 결국 아들은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 1년 뒤 디스크 수술까지 받은 윤태영은 끝까지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연예 기획사 등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윤 전 부회장은 방송 관계자를 소개해주면서도 그들에게 아들이 찾아오면 거절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방해공작(?)에도 아들 윤태영은 결국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윤 전 부회장은 “더 자세한 얘기는 2주 후에 열리는 ‘굿 컴퍼니 컨퍼런스’ 강연장에서 전달하겠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4회째를 맞은 이번 ‘2016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는 윤 전 부회장 외에도 국내외의 여러 석학과 경영자들이 참석해 신뢰경영을 주제로 강연한다. 와카바야시 가쓰히코 일본 하드록공업 대표는 ‘교량 철도는 복원되지만 신뢰는 복원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발표한다. 하드록공업은 ‘풀리지 않는 볼트와 너트’로 세계적인 우위를 차지한 기업이다. 국내 고속철(KTX), 인천대교 등에 사용한 볼트와 너트가 이 회사의 제품이다. 딜립 순다람 마힌드라코리아 사장은 ‘글로벌 기업의 신뢰경영 전략’을 소개한다. 인도의 마힌드라는 자동차 사업을 주력으로 하며 2010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기업이다. 호리 나오키 교세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실장은 ‘신(新) 기업가 정신 신뢰의 위기…기업을 삼킨다’라는 주제로 강연한다. 일본의 교세라는 전자기기·정보기기·태양전지·세라믹 관련 기기 제조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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