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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시티, 0.02%의 기적 내년에도 계속될까

올 시즌 기적의 우승 넘어 명문 클럽 롱런에 도전하는 레스터 시티의 과제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ㅣ . | 승인 2016.05.12(Thu) 17:52:39 | 1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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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영화도 이런 대본은 비현실적이라 싫다고 한다. 스포츠 역사상 가장 경악스러운 스토리 중 하나다.” 레스터 시티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하자 영국 공영채널 BBC가 기사의 전문에 쓴 표현이다. 5월3일 레스터 시티는 유일하게 자신들을 추격하던 2위 토트넘이 첼시와의 경기에서 2-2로 비기자 남은 2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챔피언 등극을 확정했다. 창단 후 132년 동안 그들이 들어올린 1부 리그 트로피는 단 하나도 없었다. 레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 역사도 다시 썼다. 1992년 출범 후 이제까지 우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블랙번, 아스널, 첼시,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단 5개 팀만이 차지했었다.

절대 다수가 기대하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에 이 기적 같은 우승은 무수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이제 레스터 시티는 스스로가 유럽 최고의 축구 리그 중 하나인 프리미어리그의 챔피언임을 자각해야 하는 시기다. 남은 시즌 동안 챔피언의 기쁨을 만끽하지만 그 뒤에는 다음 시즌에 대한 도전이 남아 있다. 이번의 동화 같은 우승을, 향후 빅클럽으로의 도약이라는 지속성 있는 다큐멘터리로 완전히 전환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다.

벌목공 출신도 있고 프랑스의 하부 리그만 전전했던 선수도 있다. 유명 선수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레스터 시티 선수들은 ‘형제’ 같은 조화를 보이며 프리미어리그 우승 5000분의 1이라는 확률을 뚫어냈다. ⓒ PA 연합


레스터 시티에 2500억원 안긴 EPL 우승

레스터 시티의 우승은 피치 위가 평등하다는 걸 증명했다. 하지만 그라운드 밖은 그렇지 않다. 지금 유럽 축구는 ‘쩐(錢)의 전쟁’이라 일컬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금력이 풍부한 팀이 천문학적 이적료를 감당하며 양질의 선수를 영입해 계속 상위권을 유지한다. 자금력의 핵심은 중계권에 따른 배당금이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제외한 대다수 리그가 순위와 중계 횟수에 따른 중계권료 차등 지급을 택하고 있다. 높은 순위에 오를수록 더 많은 배당금을 얻고, 그 자금을 바탕으로 전력을 강화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중된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최근 한 시즌 중계권료가 3조원에 육박했다. 두 번째로 높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3배에 달한다.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 시티가 받게 되는 배당금은 1550억원 규모다. 지난 시즌 14위를 차지하며 받았던 배당금보다 350억원가량 늘어났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은 더 큰 보너스를 선사했다. UEFA로부터 500억원의 기본 배당금을 지급받게 된다.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경기를 치르면 그에 따른 배당금을 받고, 최종 순위에 따라 추가 배당금이 있다. 이렇게 레스터 시티는 우승으로 얻은 중계권과 챔피언스리그 출전 배당금으로만 1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얻었다.

스폰서 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입 증대도 예정돼 있다. 레스터 시티는 구단주인 태국 출신의 재벌 비차이 스리바드하나프라브하 회장이 소유한 킹파워 인터내셔널 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다. 킹파워는 연간 여객 처리 규모가 4500만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수완나품 국제공항 면세점의 독점 사업권을 보유한 기업이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인 유커 방문 숫자에서 한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며 주가가 치솟아, 면세점 외의 소비 산업으로 확대를 시도 중이다. 연간 매출은 2조원 규모지만 태국에서는 알짜 기업으로 통한다. 스리바드하나프라브하 회장은 이미 130억원의 성과급을 레스터 시티 선수단에 지급했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우승 기념 파티를 예약했다.

태국은 지난 3년간 프리미어리그의 해외 중계권 판매 순위에서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해외 축구 인기가 높은 나라다. 리버풀·뉴캐슬·맨시티 등이 태국에서 국민 클럽의 인기를 누린 팀이지만, 올 시즌을 기점으로 레스터 시티가 그 지위를 차지했다. 태국을 중심으로 한 범(汎)아시아 마케팅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일본 역시 자국 선수인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의 활약으로 레스터 시티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과거 가가와 신지, 이나모토 준이치(아스널)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자국 선수가 소속된 팀에 대한 스폰서 지원이 활발하다. 태국인 구단주에 일본인 선수가 활약하는 프리미어리그의 챔피언이라는 이점은 프리미어리그를 주목하는 아시아 기업들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 브랜드 평가기관인 ‘레퓨컴’은 배당금 외에 신규 스폰서 유치, 입장권 수익 증대만으로도 1500억원가량의 추가 수입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원히트 원더’로 남느냐, ‘빅클럽’이 되느냐

이전에도 유럽 축구에서 깜짝 우승은 있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블랙번 로버스가 대표적이다. 블랙번은 1994~95시즌에 잉글랜드 최고의 골잡이 앨런 시어러를 앞세워 맨유를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정상에 등극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 7위로 추락했다.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할 수 있는 탄탄한 선수층이 없었던 게 독으로 작용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블랙번은 1승1무4패로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허무하게 탈락했다. 그 후 다시는 우승 경쟁에 가세하지 못한 블랙번은 점점 레벨이 떨어졌고, 2012~13시즌부터는 2부 리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형적인 ‘원히트 원더’다.

반면 우승이라는 분기점을 통해 빅클럽으로 완벽하게 변모한 경우도 있다. 첼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다. 첼시는 2004~05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전에도 클럽대항전 출전을 노려볼 만한 상위권 팀이었지만 늘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 우승은 첼시가 50년 만에 거둔 1부 리그 우승이었다. 이후 첼시는 세 차례 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11~12시즌엔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며 정점을 찍었다.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13~14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10년간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양분하던 리그 우승 판도를 깬 첫 사례였다. 그 뒤에도 아틀레티코는 소위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첼시와 아틀레티코의 완벽한 빅클럽 변신에는 공통점이 있다. 재정 지원, 뛰어난 감독, 양질의 선수 등 3박자가 고루 맞았기 때문이다. 첼시는 러시아의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희대의 풍운아 조세 무리뉴 감독이 지도력을 발휘했고, 매 시즌 이적 시장을 주도하며 특급 선수를 보강했다. 아틀레티코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지만 챔피언스리그에 꾸준히 출전하며 위기를 탈출했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재벌 기업 중 하나인 완다그룹이 지분을 사들이며 숨통이 트였다. 아틀레티코는 최근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급부상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전력의 반을 차지한다. 완벽하게 짜인 수비 전술과 자로 잰 듯 한 카운터를 앞세운 시메오네 감독의 전략은 패스 게임과 전방 압박이 주였던 세계 축구 전술의 지형을 바꿔 놨다.

레스터 시티가 롤모델로 삼을 만한 팀은 아틀레티코다. 상대적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돌파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축구연맹은 이적료 등으로 인한 각 클럽의 지나친 지출을 막기 위해 재정 페어플레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재정 페어플레이의 요지(要旨)는 클럽의 지출이 수익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 내 많은 클럽들이 무리한 선수 영입으로 파산을 맞자 현재 FIFA(국제축구연맹) 수장인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이 유럽축구연맹 사무총장 시절 도입한 제도다. 이 말은 레스터 시티가 과거의 첼시나 맨시티처럼 구단주가 엄청난 자금력을 갖고 있어도 씀씀이에 제한이 생긴다는 의미다.

올 시즌 레스터 시티의 지출은 10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이적료로 650억원가량을 썼고 나머지는 선수단 임금이 주를 이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네 번째로 낮은 순위다. 다음 시즌 레스터 시티는 3배가 늘어난 3000억원 이상의 지출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하는 맨시티의 선수단 연봉액(약 47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첼시·유벤투스·로마·모나코 등을 지휘하며 빅클럽의 생리를 잘 아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이 우승 후에도 매우 현실적인 시선으로 선수단 구성을 바라는 이유다. 그는 “슈퍼스타 영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팀 스타일에 맞추며 전력을 배가할 수 있는 선수를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 있는 선수를 최대한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틀레티코가 레스터 시티에 주는 교훈

당장 레스터 시티는 우승의 주역인 제이미 바디, 리야드 마레즈, 은골로 캉테 등을 빅클럽의 구애로부터 붙잡는 것이 급선무다. 그들을 보내고 거액의 이적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어렵게 구축한 팀 케미스트리가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라니에리 감독은 경고했다. 챔피언스리그 등 수준 높은 무대를 대비해 영입할 선수도 특급 선수보다는 빅클럽에서 실패했거나 젊고 유망한 선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포진한 주역들과 연봉 격차가 클 경우 내부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노(老)감독의 판단이다.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면서 늘어나는 일정도 극복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조별리그 6경기를 개막 후 3개월간 소화해야 한다. 이후 토너먼트 일정은 FA컵·리그컵과 맞물려 빡빡하게 돌아간다. 빅클럽들이 더블 스쿼드에 가까운 선수층을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레스터 시티는 경쟁 팀들이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를 치르느라 발생한 체력 부담을 역이용해 승점을 쌓아갔다. 올 시즌 누렸던 상대적 우세는 이제 다음 시즌부터 반대로 작동할 것이다. 라니에리 감독은 다음 시즌의 목표를 1차적으로 10위권 진입이라고 설정했다. 그는 “우승은 기적이었다. 또 하라는 건 무리가 있다. 일단은 10위권, 그리고 최대 빅4 진입을 목표로 하겠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우승을 일궈낸 올 시즌 시작 전에 라니에리 감독이 내세운 목표는 지난 시즌 레스터 시티의 성적이었던 14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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