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과 피학 승화시킨 조세호의 한 마디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6.05.16 16:27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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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처럼 번져가는 ‘조세호 놀이’, 대중들이 기꺼이 이 놀이에 동참하는 이유

“왜 안재욱 결혼식 안 왔냐?”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 김흥국이 뜬금없이 물었고, 조세호가 억울하다는 듯 대꾸했다. 지난해 7월 MBC <세바퀴>에서 주고받았던 이 간단한 질문과 답변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왜 안 왔냐?”는 질문은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차츰 놀이가 되어갔다.

‘조세호 놀이’가 빠르게 번져갔던 가장 큰 원인은 ‘패러디’다. <대호> <시간이탈자> 같은 영화의 포스터에 조세호와 김흥국, 안재욱의 얼굴이 합성되어 <세호> <행사이탈자> 등으로 패러디되었고, 동료 연예인들도 즐겁게 이 패러디 놀이에 동참했다. 어찌 보면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대화 내용이 SNS를 통해 재미있게 패러디되면서 일파만파의 파장을 만들어냈던 셈이다.연예인들까지 가세해 조세호의 ‘불참’을 묻는 질문들을 SNS상에 앞다퉈 올렸고,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드라마까지 조세호의 이름을 부르는 이 즐거운 놀이에 참여해 톡톡한 홍보효과까지도 거둬갔다. 심지어 관공서들까지 나서서 자신들의 행사에 왜 조세호씨가 참석하지 않았느냐고 토로(?)하는 상황. 이 정도 되면 조세호가 홍길동처럼 수백 명으로 변하는 분신술을 쓴다고 해도 ‘불참’할 수밖에 없다. 조세호는 이 놀이가 불길처럼 번져나가는 사이 어느새 ‘불참의 아이콘’이 되었고, 인기 또한 급상승했다.

 

 

‘불참의 아이콘’, 왜 하필 조세호였을까

 

이 ‘조세호 놀이’에서 가장 궁금한 대목은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세호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조세호라는 인물의 캐릭터와 무관하지 않다. 2001년 SBS 공채로 시작한 조세호의 개그맨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양배추’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지만 그다지 주목받는 개그맨은 아니었다.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냈던 건 KBS <웃음충전소>의 ‘타짱’에 출연했을 때다. 상대방을 웃기는 대결을 벌이는 ‘타짱’에서 그는 말·부처 같은 다양한 가면들을 쓰고 등장해 여지없는 웃음 폭탄을 안겼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그의 존재감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가면 같은 소도구를 활용했던 것이 아닌가. 가면을 벗고 본래 모습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그 가면이 오히려 자신의 캐릭터를 굳혀버린 족쇄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tvN <코미디 빅리그>에서 콩트를 했지만 생각만큼 화제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세호의 이름을 불러주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김구라였다. 김구라는 MBC <라디오스타>에서 줄기차게 조세호를 거론하며 그의 가능성을 설파해주었다. 김구라가 조세호의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세호는 이번 ‘조세호 놀이’에서도 화제가 됐던 ‘억울한 캐릭터’를 여러 일상적 사건을 통해 갖고 있었다. 2009년 김래원과 같은 날 입대하면서 자신만 훈련소 차량을 못 탔던 일화는 대표적이다. 본래 같이 훈련소 차량을 타기로 했었지만, 몰려든 팬들과 취재진들 때문에 훈련소 차량이 김래원만 태우고 가버린 것. 이외에도 권상우·이동욱 등 배우들과 친분이 있어도 “왜 친하냐”는 질문을 받고, 명품 옷을 입어도 “왜 네가 명품을 입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조세호는 특유의 억울해하는 표정이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왜 ‘조세호 놀이’가 조세호일 수밖에 없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조세호는 그 특유의 억울한 표정으로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었기 때문에 ‘놀이’의 장본인이 되었다. 거기에는 독특한 웃음을 유발하는 ‘가학과 피학’이 들어가 있다. 슬랩스틱이 그러하듯이 누군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당사자는 힘들어도 그걸 보는 이들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심각한 정도라면 웃음이 나올 수 없겠지만, 상상력을 자극할 정도라면 충분히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코미디들이 주로 다루는 것이 바로 이 가학과 피학의 본능을 자극하는 웃음들이다.

 

‘조세호 놀이’는 뜬금없이 상대방을 다그치는 김흥국의 목소리가 전제되어 있다. 아무 때나 맥락 없이 “왜 안 왔냐?”고 묻는 건 사실 공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이 코미디로 바뀌는 건 상대방이 그걸 코미디로 받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 얼토당토않은 질문에 정색하고 나선다면 그건 웃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조세호는 거기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툭 쏘는 말을 던지면서 웃음으로 전화(轉化)시킨다. ‘조세호 놀이’는 이 과정을 통해 성립된 것이다.

가학과 피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고 그래서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대화지만, 이런 식의 주고받는 말이 코미디가 됐을 때는 양자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사실 ‘조세호 놀이’는 그래서 김흥국 이전에 이미 김구라가 여러 차례 <라디오스타>를 통해 해왔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주목받지 못하는 예능인들을 지목해 뜬금없이 공격하면서 그 사람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알려오곤 했다. 김구라의 직설은 때론 공격당하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조세호 놀이’는 이 가학과 피학이 코미디라는 장르로 풀어져 양자가 성공적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SNS 놀이문화의 특징, 선택과 집중

사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만큼 다양한 정보들이 무수히 쏟아지는 공간도 없다. 그 많은 정보들은 누군가 집중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없는 것들로 치부되고 사라져간다. 그래서 네트워크의 또 다른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누군가 그 많은 정보 중 대중들의 마음을 폭넓게 사로잡을 만한 걸 선택해 집중하면 그 주목도는 몇 배로 높아진다. 네트워크는 어느 한 점을 찍어 누르면 그곳으로 집중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집중이 점점 커져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되면 마치 블랙홀 같은 힘이 생겨난다. 그 집중에서 배제되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이번 ‘조세호 놀이’는 전형적인 SNS 놀이문화의 양태를 보여준다. 지난해 여러 달 동안 인터넷의 어투를 “~전해라”로 만들어버렸던 이애란의 <백세인생>을 떠올려 보자. 인터넷에서 갖가지 패러디와 말장난 놀이로 번져가던 “~전해라”는 일상 대화에 스며들며 누구나 한 번쯤은 써먹는 말이 되기도 했다. 최근 방영되었던 KBS <태양의 후예>가 만들어낸 군대 어투 “~말입니다” 놀이도 마찬가지다. 일단 어떤 말이나 어투가 유행어로 번지게 되면 이제 그 파급효과는 과거에 비해 몇 배가 빨라지고 폭넓어졌다.

 

‘조세호 놀이’가 선택되고 집중된 건 그것이 갖는 잠깐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답답한 현실 속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왜 안 왔냐?”고 한마디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작은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 가학과 피학을 담은 것이라고 해도 그 당사자들인 김흥국도, 조세호도, 또 안재욱도 모두 행복한 결과를 가져간다는 점에서 이 놀이는 ‘안전하게’ 대중들을 매료시켰다.

 

SNS 놀이문화는 기본적으로 제약이 약하고 그 전파 속도가 빠르며 입소문을 타고 움직인다는 점에서 상업성과 만났을 때 큰 효과를 가져온다. 조세호 놀이의 당사자들인 조세호나 김흥국, 그리고 안재욱까지 이 현상으로 인해 꽤 큰 상업적 이익들을 얻어갔다. 조세호는 새삼 대세 개그맨으로 자리했고, 다양한 광고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조세호 놀이를 불러일으킨 김흥국은 이른바 ‘예능의 치트키(cheat key: 게임에서 제작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키)’라고 불리며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안재욱은 새삼 젊은 팬 층이 늘어나고 있다. SNS를 통해 자신의 이름이 하나의 유머 코드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놀이문화가 가진 수혜는 당사자들에게만 머물지 않고, 놀이에 참여한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돌아간다. 사실 조세호의 이름을 거론하며 “왜 안 왔냐”고 멘션을 남긴 연예인들 역시 주목받았다. 놀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이 놀이가 다양한 홍보 마케팅으로도 활용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종영한 JTBC 드라마 <욱씨남정기>는 종영을 앞두고 공식 포스터를 통해 ‘조세호 놀이’에 참여했다. 남자주인공인 윤상현 얼굴 위에 조세호를 합성해 ‘세호씨, 올꺼죠?’라는 문구를 집어넣어 패러디를 시도한 것. 고양국제꽃박람회를 주최한 고양시와 최초로 해양범죄수사대를 발족한 부산경찰청 역시 조세호가 안 와 섭섭하다는 글을 통해 괜찮은 홍보 효과를 누렸다. 조세호 놀이의 상업적 활용은 그것이 직접적인 홍보가 아니며, 또 유머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대중들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을 야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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