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은 PK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유권자 독립 선언을 한 것”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5.18 13:48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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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텃밭 갈아엎은 김영춘 더민주 당선자가 말하는 PK 민심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지난 4·13 총선에서 자신들의 안방인 호남을 국민의당에 내줬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그나마 더민주의 호남 참패를 만회한 것은 ‘수도권 완승’과 ‘PK(부산·경남)의 선전(善戰)’이었다. 특히 PK 지역구 의석 34석(부산 18석, 경남 16석) 중 더민주는 8석이나 차지했다. 1990년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선언 이후 25년 만에 새누리당의 텃밭이 갈아엎어진 것이다.

 

4·13 총선에서 드러난 PK 민심을 이야기하자면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인물이 김영춘 더민주 당선자(3선·부산 부산진구갑)다. 김 당선자는 서울 광진구 갑에서 재선(16~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지난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도 혁파’를 주장하며 부산으로 내려갔다. 한 차례 쓰라린 패배를 딛고 김 당선자는 지역주의 구도에 균열을 일으킨 주인공이 됐다.

 

시사저널은 PK 민심 변화의 상징으로 통하는 김 당선자를 만나 4·13 총선에서 드러난 PK 민심의 의미를 들어봤다. 5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커피숍에서 한 인터뷰에서 그는 “4·13 총선에서 드러난 PK 민심은 지역민이 새누리당으로부터 유권자 독립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19대 총선 낙선 후 두 번째 도전에서 승리했다. 가장 큰 승리 요인은 무엇이라 보나.


역시 변화와 개혁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갈망이었다. 그 열망이 솟구쳐서 PK 전체의 선거 지형을 바꾼 것이다. 물론 지역민이 변화를 선택하고 싶어도 합당한 (야당) 후보가 안 보이면 못 찍었을 것이다. 부산에서만 5명의 (더민주) 당선자가 나온 것은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야권 후보들, 또 신인이라도 한 번쯤 표를 줄 만큼 매력이 있는 후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민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함께 후보에 대한 지지가 결합하면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PK에서 유독 ‘새누리당 심판론’이 강했다는 시각이 있다.


새누리당이 일당 독점한 지난 25여 년 동안 지역 경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형편없이 축소되고 쪼그라들었다. 이걸 지역민이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심리로 관성 투표를 해왔는데, 이번에 임계점을 넘어 폭발한 거다. 일당 독점한 ‘새누리당 너희가 한 게 무엇이냐’는 문책의 마음이 컸고, 또 ‘만날 찍어주니깐 머슴이 주인 행세를 하네’라는 민심도 컸다. 대구는 (새누리당이) 현역을 바꾸려고 무리한 공천을 해서 반발을 샀고, 부산은 거꾸로 공천 신청한 현역 의원들이 다 공천되면서 반발을 산 것이다. 그러니 지역민이 ‘웃기네, 우리가 다 거수기야?’라는 반감이 생겨났다. 부산 경제에 대한 문책, 그다음에 유권자로서 무시당하는 모멸감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PK에서 ‘새누리당 비토’가 늘었다고 해도 민심 저변이 더민주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나.


물론 야당을 적극 지지해서 야당 후보를 찍은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과거보다 희석된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 (더민주를) ‘빨갱이당’ ‘호남당’으로 매도하던 심리상태에선 상당히 벗어났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을 찍기 싫어서 야권 후보를 찾다 보니깐 괜찮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을 찍은 것이다. 

 

PK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선 당의 쇄신도 필요하지 않나. 당권 도전 의사는 없나.


최근 들어 권유하는 분들이 많아졌다. 국회를 떠난 지 8년 만에 돌아오기도 했고, 부산시민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약속도 했다. 애초 나는 국회의원 첫 1년은 지역민에게 보은하는 시기로 집중해보겠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앙 당직을 맡지 않고 1년은 지방을 위한 국회의원으로서 일하자고 했다. 하지만 최근 다른 요구가 많이 있어서 지역민과 당원의 판단을 구해서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 아직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당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당의 형식이나 포장을 바꾸는 것은 필요 없다고 본다. 바꾼다고 하더라도 아주 부분적인 작업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당이 혁신을 한다고 하면 당을 바꾸고 선출 절차를 바꾸는 등 기술적 접근만 하는데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이 아주 답답한 삶의 현실 때문에 절망하고, 암담한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그분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한다면 (당의) 껍데기가 뭐가 중요하겠나. 

 

계파 갈등을 고질적인 문제로 보지 않나.


계파 문제나 패권주의 문제가 실체보다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다분히 언론의 영향이 컸다. 언론이 갈등 위주로 보도하니깐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물론(계파 갈등 논란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 못한 우리 당의 문제도 있다.

 

PK를 ‘친노’의 근원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우리 당 당선자 대부분이 친문(親문재인), 친노(親노무현)이고 이들이 당내 최대 계파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당선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면 (특정 계파에) 소속감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 당 안에 비주류들도 친노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나는 비주류에게 ‘너무 쫄지 마라’고 말한다. 당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친노)그 안에도 비주류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주류가) 자꾸 친노, 친문을 이야기하는 순간 비주류가 점점 더 왜소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공격이 상당한 비약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보나.


대표적인 것이 소위 ‘호남홀대론’인데, 문 전 대표나 친노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호남 기득권 정치인들의공격이라고 생각한다. 호남의 일반 민심이 생각하는 것보다 호남 정치인들이, 혹은 정치 주변부의 사람들이 그런 공격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문 전 대표나 친노 쪽에서도 공격의 빌미를 준 점은 있다. 예를 들면 호남홀대론에 대한 대응 문제다. 서툴렀다. 또 당내에서 패권주의를 야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기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경선 방식을 끊임없이 고쳐 나간 것은 아닌지, 그게 옳은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친노 쪽도 비판자들의 이야기를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PK가 새누리당 텃밭이었지만 과거로 거슬러가면 ‘야성(野性)’을 지닌 지역이지 않나.


총선을 통해서 다시 과거의 야성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지역에서 나온다. PK는 과거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4·19 혁명의 도화선도 만들었다. 또 부마항쟁을 통해 박정희 독재정권을 끝냈고, 6월항쟁의 불씨를 되살려냈다. 한국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큰 횃불이었는데, 3당 합당 후 퇴색된 것이 아쉬운 일이었다. 내가 부산으로 내려갈 때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PK 민심은 더 이상 새누리당의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유권자로서 독립선언을 한 것이다. 어느 당에도 구애받지 않고 투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민혁명, 유권자 독립선언이다. 다만 야당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는 아니기 때문에 야당에 대한 고정 지지층을 더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 PK라고 하면 YS,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걸출한 정치 지도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정치적 위상이 하락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젠 큰 선거에서 PK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과거 새누리당 입장에선 잡아놓은 물고기라고 신경 안 썼고, 더민주 쪽에선 어차피 질 것이니 팽개쳐버린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당이든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PK가 중앙 정치의 관심과 구애의 대상이 됐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지난 총선에서 PK 지역민이 주권독립 선언을 한 것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야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PK 출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경남 창녕 출신이니 그 범주에 들어간다. 결국 PK가 차기 대선에 미칠 영향이 클 것 같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해도 (부산에서) 30% 정도밖에 못 얻었다. 문재인 후보도 부산 출신인데 40%밖에 득표를 못했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60%를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새누리당으로 쏠리는) 관성 투표는 안 할 것이라고 본다. 대선 국면에서 PK가 객관성을 갖고 투표를 하면 우리 당의 정권 창출 가도가 훨씬 밝아질 것이다.

 

민심을 들어보면 지역 출신의 대통령을 바라는 목소리가 나오나.


당연히 그런 목소리가 있다. 두 가지다. ‘우리가 만날 TK(대구·경북) 들러리냐’라는 이야기가 하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지했지만, 결국 TK가 (지역 예산을) 더 가져가니깐 그렇다. 두 번째는 정권이 10년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해야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도 많다. 그만큼 PK 민심은 (관성화된 투표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총선에서 표출된 PK의 민심에 스스로 놀라고 심지어 감동한다. 이게 중요한 자각이다. 내년 대선에서도 이런 (자각) 효과가 지속될 것이라고 본다.

 

대권 도전에 대해 묻고 싶다. ‘대권을 꿈꾼다’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면서 내가 대통령이 돼서 만들고 싶은 나라에 대한 꿈이 왜 없겠나. 그런데 어떤 자리에 가려는 정치는 안 할 생각이다. 처음 정치를 할 때부터 생각이다. 정치계에 입문해서 야당 김영삼 총재 시절에 비서로 일했는데, 그때부터 25년 세월 동안에 뭐가 되기 위해서 안달하며 몸부림치는 사람치고 좋은 정치를 하는 사람을 못 봤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겠다. 조급해서 무리하다 보면 욕심이 앞을 가리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엉뚱한 헛발질을 하고 구렁텅이에 빠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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