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트럼프? 중국은 왜 트럼프에 호의적일까
  • 모종혁│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19 14:52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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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불간섭주의와 중국인의 영웅 숭배 심리에서 비롯

“우리는 중국이 미국을 계속 강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지난 5월1일 미국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시 유세에서 한 대권주자가 막말에 가까운 표현을 쏟아내며 중국을 공격했다. 이전에도 이 후보는 중국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1999년 이후 중국에 빼앗긴 일자리 200만개를 다시 찾아오겠다”며 “미국 경제가 너무 늦기 전에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에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는 4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강도 높은 ‘중국 때리기(ChinaBashing)’의 주인공은 미국 공화당의 차기 대권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다.

 

미국 대선에서 ‘중국 때리기’가 횡행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후보 시절 중국을 비난했다가 대통령 당선 후 태도를 바꾼 경우가 수두룩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대(對)중국 국교정상화 작업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심지어 대만과의 국교를 회복하고 첨단 전투기를 판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집권 후 레이건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일으켜 민주화운동을 압살한 중국 지도자들을 “베이징(北京)의 도살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선된 뒤 중국에 최혜국 대우를 줬고 영구적인 교역정상화 입법을 추진했다.

 

트럼프의 중국 비난이 과거 대권후보와 다른 점은 있다. 인권문제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무역 불공정 문제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이를 시정할 관세율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이런 트럼프를 대하는 중국의 태도가 미묘하다. 5월4일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경제문제에서 중국에 적대적인 트럼프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미·중 경제협력은 서로에게 혜택을 주고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한다”며 “미국 대선은 내정문제이기에 우리는 선거상황에 대해선 논평하지 않겠다”며 한 발 뺐다.

 

 

 

“트럼프는 실용주의자” 묘한 제스처

 

과거 중국 정부는 미국 정치인의 공격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유엔에서 양성 평등과 여권(女權) 향상을 위한 회의를 열고 1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민주당의 대권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트위터에 “페미니스트를 탄압하는 시 주석이 여성 권리에 대한 회의를 주최한다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훙 대변인은 “국제사회에서 일부 사람들은 관련 문제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들이 중국의 사법주권을 존중할 것을 희망한다”며 힐러리를 비판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는 더욱 극적이다. 5일5일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사설에서 “트럼프는 실용주의자이고 힐러리는 이념을 중시한다”면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지금처럼 막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힐러리의 발언 때 ‘환구시보’는 “그의 저속하고 예의에서 크게 벗어난 표현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든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를 떠올리게 한다”고 힐러리를 맹렬히 비꼬았다. 이런 매파적 성향과 달리 공화당 대권후보로 확정된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트럼프에 대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을까. 이는 국익적인 고려와 중국인의 영웅 숭배 심리에서 비롯됐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최대 외교현안은 남중국해 문제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트럼프는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분쟁에 끼어들어 3차 세계대전을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반해 힐러리는 국무장관으로 일할 시절 ‘아시아 회귀 정책’을 추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심화시켜 ‘아시아 중시 전략’을 펼치면서 대중 포위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스인훙(時殷弘) 인민대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남중국해 문제엔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훨씬 더 매파”라면서 “힐러리는 변호사 출신이라 ‘법대로’를 고집하겠지만 트럼프는 사업가라서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는 트럼프가 제창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서도 읽힌다. 미국 우선주의는 자국 이익에 초점을 맞추고 타국의 문제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정책이다. 이런 배경에서 중국에선 트럼프가 대권을 잡기를 바라는 인사들마저 생겨나고 있다. 댜오다밍(刁大明) 중국사회과학원 미국연구소 부연구원은 “트럼프는 현실주의자이기에 이익의 거래를 지지한다”면서 “미·중 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겼다.

 

사업가 명성과 마초적인 영웅 이미지로 인기

 

트럼프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중국판 구글인 바이두(百度)에는 트럼프와 힐러리의 팬 카페가 개설돼 있다. 5월11일 오후 9시 현재 트럼프의 팬 카페 회원 수는 1688명으로 클린턴 팬 카페(1549명)보다 많다. 주목되는 것은 게시 글과 활동량이다. 트럼프 팬 카페가 3만 건의 글과 수많은 댓글로 교류하는 데 반해, 클린턴 팬 카페는 그 3분의 2 수준이다. 지난 4월 초 환구시보가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3300명 중 절반이 넘는 54%가 트럼프를 좋아한다고 답해서 그렇지 않다는 45.6%보다 높았다. 

 

트럼프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사업가로서의 명성과 마초적인 영웅 이미지 때문이다. 트럼프는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 받았지만, 사업을 훨씬 더 키워 세계적인 부동산 재벌이 됐다. 이런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트럼프는 평소 자신감이 넘쳐서 언론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도발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트럼프가 술을 안 마시고, 담배·마약·문신과는 거리가 먼 가정을 꾸린 점도 중국인들에게 큰 호감을 사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딸 이반카가 개설한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는 1만6600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결정적으로 중국은 트럼프가 무역전쟁을 일으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미·중 교역액은 5980억 달러(약 699조원)에 이른다. 미국에 있어 중국은 3대 수출시장이다. 2009년 미국 정부는 중국산 타이어에 무역보복을 가해 35%의 관세를 부과했었다. 하지만 중국산 수입이 줄어든 만큼 인도네시아, 멕시코, 태국 등지에서 타이어가 수입됐다. 즉 외국산 제품에 대한 고관세 정책으로 미국에서 새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중국은 미국의 무역보복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맞대응해왔다. 그 때문에 미국 항공기, 자동차, 반도체 등의 수입이 다른 나라로 대체돼 미국 기업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중국 정부가 잘 알고 있다. 단지 염려하는 점은 트럼프 열풍으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의 역습’이다. 트럼프는 분노한 백인 중·하류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공화당의 대권후보가 됐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부실한 사회보장망을 지닌 중국에서도 언제든지 트럼프 현상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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