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옥시’ 막는 법, 누가 누더기 만들었나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5.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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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재계․언론,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국민 분노하자 ‘돌변’

현행법은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자는 뜻에서 추진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약칭 화평법)'이 약화되고 느슨해진 채로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화평법은 국내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결과를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하는 법이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면 독성 화학물질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 법은 ‘누더기’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원안과 달리 연간 1톤 미만의 화학물질을 다루는 경우 유해성 평가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서다. 이는 화평법의 큰 약점으로 평가받는다. 제품에 들어가는 독성 화학물질은 극히 미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 탓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도 핵심 독성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은 연간 약 280㎏만 사용됐다. 


화학물질의 정보 공개 의무도 원안에서 축소됐다. 기존 '화학물질 사용자의 제조, 수입자에 대한 용도 등 정보 제공' 조항은 '요청받은 경우에만 제공'으로 약화됐다. 불성실 보고 업체 등에 대한 과징금 조항은 삭제됐다. 시행령을 제정할 때도 화평법은 연구목적의 화학물질은 등록 의무가 면제되는 등 약화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도대체 누가 화평법을 ‘누더기’로 만든 걸까. 

 

정부․재계․언론 합심해 ‘제2옥시’막는 법 ‘악법’으로 규정

화평법 추진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부 입법으로 이 법안은 추진됐다. 그러자 재계가 즉각 반발했다. 반대 이유로 든 건 비용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와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를 포함한 화학산업 관련 14개 단체는 “산업연구원의 조사 결과 화학물질을 등록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간접비를 포함해 최소 2조7204억 원에서 최대 13조139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반대 건의서를 제출했다. 당시 지식경제부도 “규제목적 대비 대응 부담이 과중된다”면서 같은 취지의 의견을 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은 이보다 강화된 화평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또한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계, 경제언론의 반대로 약화된 채 국회를 통과했다. ‘비용’문제와 ‘영업비밀이 새나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3년 6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화평법 뿐만 아니라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에 대해서도 ‘비용’문제를 거론하며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정부가 규제완화 테스크포스(TF)를 만들며 여기에 화평법을 포함시킨 점도 화평법과 시행령이 크게 약화된 요인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9월 화평법에 대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면서 이를 두고‘악법’으로 규정했다. 또 “최근 화평법 등 일부 환경규제가 의원입법으로 진행되면서 관계부처나 산업계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향후 의원 입법안에 정부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대국회 협력을 강화하라”고 강조한 바 있다. 

화평법에 대해서는 경제언론도 날을 세웠다. 법 제정 이전과 이후, 줄곧 반대 기조를 유지했다. ‘매일경제’는 2015년 8월28일 ‘기업 90%, 화평법 문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기사에서는 ‘지난 1월부터 시행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평가법)으로 화학관련기업 10곳 가운데 9곳이 경영 차질을 빚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도 2015년 4월3일 1면에 '우물 안 규제입법, 결국 통상마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이랬다. "국내에서도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던 규제들이 미국과의 새로운 통상마찰요인으로 급부상했다." 화평법이 ‘쓸모없는 규제’라는 얘기였다.

국민 공분 사자 태세전환한 정부․언론 

이런 정부와 언론의 태도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공분을 산 올해 4월 이후부터 급변했다. 박 대통령은 4월28일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하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사태 재발 방지에 뒤늦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환경부는 5월 냄새 탈취제 '페브리즈'를 포함해 방향제, 탈취제 등 생활화학제품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살생물질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매일경제’는 2016년 5월16자 6면에 ‘누구도 의문품지 않았던 가습기 살균제…22년간 정부는 눈뜬 장님’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태세전환은 이토록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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