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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속에서 철학과 미학이 나온다”

‘전통 자수의 대가’ 인간문화재 최유현 자수장, 60여 년간의 작품 모은 자수전 개최

장지연│프리랜서 기자 ㅣ | 승인 2016.05.22(Sun) 18:16:48 | 13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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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자수의 대가 최유현 자수장(80·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刺繡匠)의 일생은 오색실로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 걸었던 한평생이었다.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한 땀 한 땀 진심을 담아 수를 놓았던 최 자수장의 정성은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그가 걸어왔던 길, 전통 자수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손끝에 마음을 싣고 자수에 담아내기를 60여 년. 그 오랜 세월이 담긴 작품들을 모은 ‘최유현 자수전’이 개최된다. 5월22~29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심선신침(心線神針)’전에서는 최유현 자수장의 대표작인 불화(佛畵)자수뿐 아니라 20대의 생활자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변천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 하나에 12년이란 시간 걸리기도

인간문화재 최유현 자수장의 작품을 마주하기에 앞서 그의 자수 인생을 듣기 위해 시사저널은 5월11일 서울 광화문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이고, 현재 부산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부산에 거주 중인 최 자수장은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잠시 서울로 올라왔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본지와 만난 최 자수장은 “번잡해서 서울에서 어떻게 삽니까. 차도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라며 한동안 단정하게 숨을 골랐다. 느림의 미학을 좇아온 삶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오로지 자수에만 몰두했던 최 자수장은 수를 놓는 마음가짐을 ‘심선신침(心線神針)’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으로 선을 이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뜻입니다. 자수는 수많은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서 작품이 됩니다. 수행하는 마음으로 해요.” 

최유현 자수장이 40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불화자수들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만 수년이 걸리는 대작들이다. 여러 대표작 중에서도 유독 그가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라는 ‘자수만다라(刺繡曼陀羅)’와 ‘삼세불(三世佛)’은 각각 8년여, 1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또한 ‘팔상도(八相圖)’를 자수로 승화시키고 싶다는 마음에 기도를 올렸던 시간만 10년이다. “불화가 예불의 대상인데 누가 손을 대게 합니까. 사진도 못 찍게 하고. 그런데 10년을 매일 통도사에 가서 기도를 하니까 그 작품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오는 거예요. 그래서 ‘팔상도’를 수를 놨죠. 수를 놓고 나니 보물이 되더라고요.” 이처럼 최 자수장의 자수 작품은 정성의 예술이며, 선생의 예술혼이 깃들어 있다. 

최유현 자수장은 10대 시절 처음 자수를 접했다. 시기별로 20대에는 생활소품, 30대부터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민화, 40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불화자수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선생의 자수 인생을 돌이켜보면 항상 도전과 창조가 있었다. “10대, 20대 초년에는 기초적인 기능을 익혀야 했어요. 그런데 다들 하는 걸 되풀이하니까 싫증이 나서 못하겠더라고요. 더 창의적인 것을 하고 싶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전통문화를 밑그림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됐어요.” 전통문화에 대한 최 자수장의 애정이 새로운 장르를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았던 스승들에게 국적 없는 자수를 배우면서 전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고 그랬어요. 한 단계 한 단계 계단을 밟아 올라가다 보니 우리 전통미술의 뿌리인 불교미술을 만났어요.” 

최 자수장은 “전통은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전통이 아닙니다. 조선시대는 백자가 있고 고려시대는 청자가 있듯이, 전통을 밑받침으로 창작하고 이루어나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수를 놓고 있어요”라고 했다. “후대에 남길 이 시대의 문화를 창출하고자 하는 의욕”으로 작품을 남기는 최 자수장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로 시대의 전통문화를 만들었다. 

<연화장세계도(蓮華藏世界圖)>, 270x300cm

 

전통 자수 맥 잇기 위해 작품 판매하지 않아

최유현 자수장은 한국 전통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연화장세계도>를 비롯한 불화자수로 대통령상·국무총리상·문화부장관상·문화재위원장상 등을 수상하며 자수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199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 지정받은 그는 작품 활동과 동시에 전통 자수의 맥을 이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 전통 자수는 특수한 매력이 있어요. 조상들에게 좋은 예술을 받았는데 전통을 계승해야 되잖아요. 수가 예쁘고 좋다는 걸 알면서도 너무 힘드니까 안 하려고 해서 문제예요. (후학) 10명에서 한 명이 나오면 다행이죠. 30명, 50명에서 한 명 나오는데.” 

자수는 결과는 화려하지만 그 과정이 더디다. 전통 자수를 제대로 교육받지 않고 짧게 배운 사람들이 공방에서 수를 가르치는 일이 많아졌고, 최 자수장은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혼란기예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적 없는 수를 배웠던 그런 문제가 또다시 생기고 있는 겁니다. 자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꾸준히 배워야 해요. 거듭거듭 하지 않으면 수가 안 됩니다.” 1985년 학원 문을 닫고 공동작업을 통해 전문가들만 교육했던 최 자수장은 10년 전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초교육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자수를 후대로 이어가고자 하는 책임감 때문이다. 

최유현 자수장이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지 않고 모으는 이유도 전통 자수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이다. “3년, 5년, 10년씩 걸린 작품인데 내가 몇 백 년 사는 사람도 아니니까 안 되죠. 이제 내가 작품을 남겼으니까 후계자는 없느냐, 작품을 더 계승할 수 없느냐,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잖아요. 내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그런 이유예요. 작품들을 잘 보존하고 전시하면 이 어려운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도전자가 나오겠지요. 한 번씩 봐야 발심(發心)할 것 아니에요. 안 보고 어떻게 발심합니까. 내 작품을 보고 자수를 하고 싶다고 발심하는 동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목적입니다.” 

국내외 통틀어 수십 차례 전시전을 열었던 최유현 자수장이지만, 매번 자수전을 앞둔 마음은 한결같다. 60년을 오롯이 수에 담아온 진심이 대중에게 닿기를. “진실한 자수가 무엇인지 보고 가셨으면 해요. 현대는 빨리 결과를 내고 알아주길 원하잖아요. 꾸준히 몇 십 년이고 자기 일생을 다 쏟는다는 것이 어렵죠. 빠른 것만이 다가 아니고 느림 속에서 철학과 미학이 나온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제일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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