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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글로벌 시대의 아이돌, 더 첨예해진 역사교육

걸그룹 AOA 멤버 설현과 지민의 역사지식 논란이 시사하는 문제점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4(Tue) 07:00:52 | 13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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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과 역사교육. 사실 그리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최근 벌어진 인기 걸그룹 AOA의 설현과 지민의 역사지식 논란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 논란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글로벌 시대에 역사교육의 문제가 왜 더 중요해졌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역사의식 문제가 더 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AOA가 케이블 ‘온스타일’에서 하는 <채널 AOA>라는 프로그램에서 역사적 인물과 유명인들을 알아맞히는 퀴즈를 했다. <채널 AOA>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듯 걸그룹 AOA의 스폰서가 들어간 프로그램이다. AOA는 새로운 앨범 발표를 앞두고 있었고, 그래서 방송을 통해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려 했다. 그리고 이 앨범 발표는 소속사인 ‘FNC 엔터테인먼트’(FNC)가 홍콩에서 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기업설명회를 하는 날에 맞춰져 있었다. 어찌 보면 최근 설현이나 지민처럼 걸그룹 대세 아이돌로 자리한 AOA의 활동을 통해 FNC의 이미지 또한 제고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채널 AOA>에서 했던 이 퀴즈 놀이는 홍보는커녕 엄청난 논란으로 돌아왔다.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식 발음)?”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역사에 너무 무지하다는 비난이 나오게 됐고, 그것이 일파만파의 논란으로 이어졌던 것. 사실 이런 식의 퀴즈 놀이를 집어넣은 건 그 의도가 명백하다. KBS <1박2일>에서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이라고 말해 ‘구탱이형’이라는 캐릭터를 얻었던 김주혁처럼 무지함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친근함을 만들기 위함이다. 하지만 토사구팽을 토사구탱으로 잘못 말하는 것과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이라고 말하는 데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민감할 수 있는 역사 문제인 데다, 하필이면 안중근을 김두한(그것도 일본식 발음으로)으로 오인한 것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성격이 리얼리티쇼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보면, 이 부분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영된 건 프로그램 제작진들의 역사의식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AOA의 홍보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에서 이 사안이 이토록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건 제작진들의 역사 문제에 대한 안이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재미만 있다면 신중해야 할 역사적 사안들도 마구 예능에 끌어들이는 일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국내에서 방영돼도 인터넷을 타고 해외까지 바로바로 송출되어버리는 시대에 글로벌을 지향한다는 아이돌 그룹의 역사에 대한 잘못된 말 한마디는 심지어 국가적인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기도 한다. 


5월16일 걸그룹 AOA의 설현(왼쪽 사진)과 지민이 쇼케이스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근 온스타일 <채널AOA>에서 역사 문제를 풀던 중 안중근 의사를 “긴또깡”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 연합뉴스

쯔위 사태가 건드린 역사라는 민감한 부위

 

우리는 이미 지난 1월 이른바 ‘쯔위 사태’를 통해 글로벌 시대에 역사 문제가 얼마나 민감해지는가를 목도한 바 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인터넷 방송 버전에 나온 걸그룹 투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를 흔든 것이 그토록 큰 문제로 비화할 줄 아무도 몰랐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사태는 이슈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대만 출신의 멤버가 대만 국기를 흔드는 것이 무에 잘못된 일일까. 게다가 그 국기는 쯔위가 가져간 게 아니라 제작진이 준비한 것이었다. 물론 이 부분에서 오히려 책임은 제작진에게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 국기와 함께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는 그 의미는 ‘대만 독립’ 같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국가의 화합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대만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활동하며 연예인들의 갖가지 정치적 이슈들을 건드리는 걸로 유명한 황안이 여기에 기막힌 ‘정치적 의도’를 뒤집어씌웠던 것. 이로써 이 사안은 중국과 대만의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그리고 엉뚱하게 그 불똥은 마침 있었던 대만의 총통 선거로 튀었다. 중국에서 광적 포퓰리즘이 일어나면서 쯔위에 대해 쏟아진 비난 여론은 대만 선거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만 독립 성향을 보인 민진당이 더 표를 얻었고, 민진당 주석 차이잉원(蔡英文)이 대만 총통으로 당선됐다. 이 와중에 정치적 희생양이 된 열여섯 살 소녀는 짓지도 않은 모든 죄를 어깨에 짊어진 채 카메라 앞에 나와 고개를 숙였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태는 진정됐고, 중국인들이 쯔위에게 동정적인 시각을 보내면서 동시에 문제를 야기한 황안을 비난하는 역전된 상황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태가 남긴 후유증은 컸다. 새삼 글로벌하게 꾸려지고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의 역사교육 문제가 제기된 건 이 사태 때문이었다.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의 역사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실효성을 가질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다. 

 

대형 기획사들의 졸속 리스크 관리 능력

 

이번 AOA 설현과 지민의 역사지식 논란이 드러낸 또 한 가지는 이미 글로벌해진 아이돌 그룹을 갖고 있는 대형 기획사들이 이렇게 의외로 터져 나온 사태에 거의 속수무책일 정도로 졸속의 리스크 관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사실 이번 논란이 더 커진 건 사안 그 자체보다 소속사인 FNC의 잘못된 대처가 화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기업설명회 같은 회사로서는 민감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지만, 설현과 지민이 각각 공개사과를 한 후에도 논란의 불길이 꺼지지 않은 것은 이후 소속사가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었다. 

 

방송에 편집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변명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무엇보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AOA의 새 앨범 발표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에 들어간 도요타 차량까지 문제시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도요타 역시 전범기업이라는 또 다른 문제제기는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 이면을 두고 보면 소속사의 이런 ‘강행’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소속사는 다시 도요타 차량이 PPL(간접광고)이 아니고 당일 우연히 렌트한 차량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커진 반감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소속사는 그날 저녁 AOA의 컴백을 알리는 쇼케이스를 열었다. 사실 노출이 있는 짧은 옷을 입고 춤을 춰야 하는 AOA가 이런 상황에 그걸 강행한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사과와 눈물로 시작해 사과와 눈물로 끝난 쇼케이스는 그래서 대단히 이상한 풍경을 만들었다. 눈물짓고 사과한 후 또 춤을 추며 노래한다는 것이 어디 어울리는 일인가. 그걸 강행했다는 건 소속사가 ‘안티’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이돌 소속사의 리스크 관리 능력은 지난 쯔위 사태에서도 똑같이 드러난 바 있다. 무고한 열여섯 살짜리 어린 소녀가, 물론 부모님의 동의를 얻었다고는 해도, 홀로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이는 장면은 심지어 중국인들까지 공분하게 만들었다. 트와이스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정서적 반감이 생겨난 건 물론이다. 역사로 빚어진 글로벌한 분쟁 사태에 우리네 기획사들이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최근 콘텐츠는 그 내용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내용에 담겨지는 정서가 더 중요해진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노래와 춤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대중들의 호평을 받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아이돌 그룹이 정서적으로 호감일 때 그 노래와 춤이 더 좋게 들리고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최근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건 ‘인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제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인성이 아니라고 낙인이 찍히는 순간 아이돌 그룹은 활동기반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기를 맞게 된다. 

 

인성은 그냥 흉내 낸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공부를 통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네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은 기획사에 어린 나이에 들어가 오로지 춤과 노래만을 집중적으로 연마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최근에는 글로벌 활동을 위해 다양한 언어 교육을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해지는 건 기본적인 교양 수준의 지식들이다. 인문학이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삶의 깊이 같은 거창한 목적 때문이 아니다. 타인과 어떤 사안을 두고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양을 쌓기 위함이다. 

 

역사는 글로벌 활동을 하게 된 요즘 시대에 더더욱 중요한 소양이 되고 있다. 그것은 민감한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을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함이다. 뭘 알아야 문제가 심각할 수도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교육이 중요해진 건 타자와 논쟁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가 소통의 길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아이돌 그룹이 국가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것들을 문화로 완충시키며 일종의 문화 전도사 역할을 해내는 것. 그것이 과거의 아픈 역사들을 제대로 바라보면서도 우리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데 일조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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