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거의 기정사실화 됐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공화당은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라는 자리를 따낸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 끝나진 않았다. 클린턴은 아직 경선이 진행 중이라 ‘당선 확실’ 정도의 상태이고 트럼프는 7월에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정식 후보로 임명될 때까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원래 대부분의 미국 신문은 트럼프가 이처럼 쾌속 진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토록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신문들은 선거가 진행될수록 트럼프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반(反)트럼프의 자세를 선명히 했다.
'공개지지‘(endorsement)는 편집위원만의 독립된 의견
신문이 대통령 후보 중 누군가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것을 영어로는 'endorsement’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공개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공개지지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존재한다. 1860년 뉴욕타임스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공개지지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전통은 이어져 내려온다. 2012년 대선에서는 대략 41개 신문이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35개 신문이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그렇다고 토박이로만 이뤄진 곳은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할수록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시야와 통찰력이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자 채용 시스템 상 토박이 체제가 유지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주요 신문사의 경우 지역에서 실력과 전문성을 몸에 익힌 뒤 그 중 우수한 기자들이 스카우트 돼 위로 올라오는 구조다. 토박이가 적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공개지지라는, 미국 저널리즘의 독특한 기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우리와 달리 국토가 넓은 미국의 신문은 주나 지역마다 발행되다보니 미디어의 기능 외에도 독자의 커뮤니티라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래서 신문 역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견해를 보여줄 필요가 대두됐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언론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후보자에 대한 공개지지는 독자에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 우리 신문이 시민과의 대화에 참여하고자하는 의무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신문사는 취재 등에서 얻는 통찰력을 독자들과 공유할 의무가 있다.”
“독자들이 논설과 보도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또 신문이 공개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선거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도와 달리 의견은 논의의 장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이 신문을 읽어주는 지역 사회를 위한 공헌이기도 하다는 게 미국적 정서다. 이런 이유로 신문사는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지방 선거 등에서도 지지 후보를 표명한다.
반면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독자가 과연 같은 지면에 실리는 논설과 뉴스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고 접근하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지면을 통해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건 편집위원회와 의견이고 편집부와는 상관없는 거야”라고 분리해 받아들이는 독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편집위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신문사 측의 논리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저널리즘의 오랜 전통이지만 이런 공개지지도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지금도 모든 유력지가 공개지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1929~1933)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1928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공개지지를 하지 않고 있다. USA투데이는 창간 이후 단 한 번도 공개지지를 한 적이 없다.
최근에는 공개지지를 하지 않겠다는 신문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미국 대선 때는 전국 100대 신문사 중 23개사가 공개지지를 하지 않았다. 몬태나 주에서 발행되는 ‘그레이트폴스트리뷴’도 그 23곳 중 하나다. 발행인인 짐 스트라우스는 2012년 공개지지를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점점 더 많은 독자가 뉴스와 논설의 차이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지자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 이후 독자들은 모든 기사를 특정 후보에 치우쳐 있다고 딱지를 붙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