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UPDATE] 트럼프는 3, 클린턴은 80...신문사들의 공개지지 전쟁
  • 김회권 기자 ()
  • 승인 2016.05.3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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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거의 기정사실화 됐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공화당은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라는 자리를 따낸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 끝나진 않았다. 클린턴은 아직 경선이 진행 중이라 ‘당선 확실’ 정도의 상태이고 트럼프는 7월에 열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정식 후보로 임명될 때까지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를 일이다. 


원래 대부분의 미국 신문은 트럼프가 이처럼 쾌속 진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토록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신문들은 선거가 진행될수록 트럼프의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 반(反)트럼프의 자세를 선명히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간부들이여, 트럼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정치인으로는 자질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차례차례 다른 신문들도 트럼프를 반대하며 대선을 앞두고 지지 후보를 표명하고 있는데 대략적으로 80개 정도의 신문사가 클린턴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트럼프 지지를 드러낸 곳은 타블로이드지 3곳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신문들의 움직임을 보면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고 당당하게 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일까. 기자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균형 있는 보도를 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런데 그 기자들의 집합체인 신문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라는 의문 말이다. 

필라델피아트리뷴은 민주당 경선에서 클린턴이 아닌 샌더스를 공개지지했다.

 

'공개지지‘(endorsement)는 편집위원만의 독립된 의견


 신문이 대통령 후보 중 누군가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것을 영어로는 'endorsement’라고 한다. 우리말로는 ‘공개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공개지지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존재한다. 1860년 뉴욕타임스는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에이브러햄 링컨을 공개지지 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 전통은 이어져 내려온다. 2012년 대선에서는 대략 41개 신문이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35개 신문이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이처럼 예부터 당당하게 드러내던 공개지지지만 그런 신문사의 관례는 매일 뉴스를 생산하는 사내의 '편집부‘와는 상반된다. 신문의 뉴스 보도는 어쨌든 중립성과 균형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게 대전제다. 그것을 벗어난다면 미디어로서의 신뢰도는 실추된다. 그런 점에서 신문은 ’공개지지‘와 ’균형 보도‘라는 모순을 대선 때마다 접하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공개지지는 보통 미국 신문사의 '편집위원회'가 관여한다. 이 편집위원회는 뉴스를 만드는 편집국과는 완전 분리돼 존재한다. 공개지지와 같은 의견을 표명하는 일이 편집위원들의 몫인 반면, 균형감 갖춘 보도는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와 편집자 등의 몫이다.

편집위원과 편집국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12년 독자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은 질 에이브람슨 뉴욕타임스 당시 편집장은 "자신은 (편집국의) 편집장으로 편집위원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들(편집위원)의 논설 기사는 나 자신도 독자 여러분처럼 지면에서 처음 읽게 된다.“

 

편집위원회는 독립성을 강조한다. 워싱턴포스트는 편집위원회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다. “논설 기사는 편집위원회의 구성원들이 토론을 나눈 뒤 결정한다. 편집위원회는 워싱턴포스트라는 회사의 견해를 표명한다.” 여기에는 분리의 원칙이 적용된다. “뉴스 기자와 편집자는 결코 편집위원회의 논의에 참여할 수 없고, 편집위원은 뉴스 보도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편집위원회의 숫자는 신문사마다 다르다. 워싱턴포스트는 9명의 편집 위원이 시의성 있는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총의를 모아 논설로 정리한다. 뉴욕타임스는 16명으로 이뤄졌고, LA타임스도 9명의 베테랑 기자 출신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편집위원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신문사의 조직적 의견을 개진한다. 그러다보니 해당 신문에서 나름 오랜 기간 근무했던, 그리고 전문성을 갖춘 전직 기자 혹은 전직 편집장들이 많다. 

 

그렇다고 토박이로만 이뤄진 곳은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할수록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시야와 통찰력이 좁아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자 채용 시스템 상 토박이 체제가 유지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주요 신문사의 경우 지역에서 실력과 전문성을 몸에 익힌 뒤 그 중 우수한 기자들이 스카우트 돼 위로 올라오는 구조다. 토박이가 적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런 공개지지라는, 미국 저널리즘의 독특한 기질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우리와 달리 국토가 넓은 미국의 신문은 주나 지역마다 발행되다보니 미디어의 기능 외에도 독자의 커뮤니티라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래서 신문 역시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들의 존재와 견해를 보여줄 필요가 대두됐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언론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후보자에 대한 공개지지는 독자에게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보다 우리 신문이 시민과의 대화에 참여하고자하는 의무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신문사는 취재 등에서 얻는 통찰력을 독자들과 공유할 의무가 있다.”


현재 시점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곳은 3곳, 클린턴을 지지하는 곳은 80곳 정도로 추정된다.

“독자들이 논설과 보도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또 신문이 공개지지를 표명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선거를 논의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보도와 달리 의견은 논의의 장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이 신문을 읽어주는 지역 사회를 위한 공헌이기도 하다는 게 미국적 정서다. 이런 이유로 신문사는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지방 선거 등에서도 지지 후보를 표명한다. 

 

반면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독자가 과연 같은 지면에 실리는 논설과 뉴스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고 접근하는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지면을 통해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건 편집위원회와 의견이고 편집부와는 상관없는 거야”라고 분리해 받아들이는 독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편집위원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신문사 측의 논리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저널리즘의 오랜 전통이지만 이런 공개지지도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있다. 지금도 모든 유력지가 공개지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1929~1933)에 대한 지지를 드러낸 1928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공개지지를 하지 않고 있다. USA투데이는 창간 이후 단 한 번도 공개지지를 한 적이 없다. 

 

최근에는 공개지지를 하지 않겠다는 신문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미국 대선 때는 전국 100대 신문사 중 23개사가 공개지지를 하지 않았다. 몬태나 주에서 발행되는 ‘그레이트폴스트리뷴’도 그 23곳 중 하나다. 발행인인 짐 스트라우스는 2012년 공개지지를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점점 더 많은 독자가 뉴스와 논설의 차이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지자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면 이후 독자들은 모든 기사를 특정 후보에 치우쳐 있다고 딱지를 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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