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반기문' 지지층 일치하니 여권주자일 수밖에...
  •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2 21:51
  • 호수 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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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주자로 유력한 반기문, “반 총장 외면 못할 것”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도전 시사로 새누리당, 특히 친박계는 희색만면(喜色滿面)이다. 새누리당행(行)을 전혀 언급한 바 없지만 말이다. 총선 참패로 ‘무기력’ 늪에 빠져 있던 새누리당에 반기문 총장의 적극적 메시지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되고 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 총장의 존재는 새누리당에 ‘불행의 씨앗’이기도 했다. 반기문이라고 하는 유력한 카드를 갖고 있다고 여긴 친박계가 총선 과정에서 무리한 시도들을 한 배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친박계가 주류로서의 위상을 놓치지 않으면 반 총장 카드로 다음 대선까지 안정적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만약 반 총장 카드가 애초부터 없었다면 새누리당의 극한 계파 대결은 아마 상당히 수위가 약하게 전개됐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반 총장으로 활력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면 정치 영역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기가 막히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 친박계의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데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그렇다고 야권으로 가긴 어렵다. 정치적 공간이 없다. 빗줄기는 가뭄에 필요하지 풍년에는 환영받지 않는다. 이미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지닌 대권주자들로 넘쳐나는 야권엔 빈 좌석이 없다. 대선주자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곳에서 구애도 나오는 것이다. 대형 화재로 인해 제법 자란 나무들이 모두 타버려 민둥산이 된 새누리당에 반 총장을 위한 크고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는 셈이다. 

지지층에서도 이미 그러한 특성이 뚜렷하다. 야권 성향층에서는 별다른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반면, 보수 성향층 또는 여권 성향층에서는 강한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15~16일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반 총장은 25.4%로 1위를 차지했다. 반 총장을 뺀 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던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각각 16.6%, 14.0%로 2, 3위로 한 계단씩 내려갔다.
(데일리한국/리서치앤리서치, 2016년 5월15~16일, 전국 19세 이상 1000명, 전화면접조사, 응답률 14.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박근혜 대통령이 4월1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 본회의에서 박 대통령 자리로 찾아온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인사하고 있다.
대구·경북, 50대 이상에서 높은 지지율

조사결과를 자세히 보면, 새누리당 지지층 중 42.5%가 반 총장을 지지하고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주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었는데 15.3%에 불과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7.3%만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반 총장을 이미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인이 새누리당과의 연계성에 아무리 손사래를 친다 하더라도 지지층 있는 곳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경북에서도 29.4%로 다른 주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또 새누리당이 50대와 60세 이상층에서 주로 지지를 얻고 있듯이 반 총장은 이들 세대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50대에서는 29.6%, 60세 이상에서는 32.1%였다. 모두 해당 연령대에서 2위 주자와 현격한 격차를 보였다.

새누리당의 지지층과 반 총장의 지지층이 ‘기가 막히게’ 겹치고 있는 것이다. 반 총장으로선 이를 기반으로 확장하고자 할 것이다. 이를 버리고 시작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새누리당과 반 총장은 ‘이심전심’할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반 총장은 막판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일각에선 한때 40%에 달하는 지지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선을 포기한 고건 전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냐는 전망도 내놓는다. 현실정치의 혹독한 비바람을 온전히 견뎌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반 총장과 고건 전 총리는 닮은 데가 있다. 모두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알린 것이 정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 비정치인 출신이다. 대체로 비정치인은 혼탁한 정치로부터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때 묻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비정치인이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강한 시기일 때 반사효과의 수혜자가 된다. 2007년 대선 때나 지금이나 정치 불신의 기운은 제법 강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치인은 안 된다는 인식도 작동했다. 대기업 사장이기도 했고, 서울시장도 지냈기 때문에 당시 이 후보는 정치인 이미지가 덜했다. 당시 고건 전 총리도 이러한 혜택을 잠시나마 받았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결국 대선 레이스에서 도중하차한 경로도 같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고건 전 총리와 반 총장은 다른 게 더 많다. 먼저 고 전 총리는 고정적 지지기반은 없었다. 호남이 고향이긴 했지만 호남을 지지기반으로 만들지 못했다. 또 정치세력의 강한 뒷받침을 받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지지층이 허약했다. 외부의 공세에도 쉽게 흔들렸다.

5월25일 제주포럼 만찬장에서 반기문(오른쪽) 유엔 사무총장이 나경원(왼쪽) 새누리당 의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운데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
‘고향’ 충청 지역에서도 40%대 지지율

반면 반 총장은 충청이라는 견고한 지역기반이 있다. 앞서 소개한 조사에서도 충청지역에서는 40.5%가 반 총장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고 있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고정기반을 갖는다는 것은 위기에도 버틸 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새누리당에서 적극 지원할 태세다. 공세와 방어를 정당이 해주는 경우와 후보 개인이 직접 하는 경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는 점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다. 그리고 이번 방문에서 본인이 강조한 ‘남북관계 개선’은 여전히 대한민국 선거에서 주요한 어젠다가 될 수 있고, 대선주자로서의 강점과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부분들로 인해 반 총장은 고 전 총리와는 다른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견고하지 못한 지지층으로 인해 쉽게 허물어져 결국 중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고 전 총리와 달리, 반 총장은 당선 가능성과는 별개로 대선주자로서의 기본적 안정성은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박계의 손안에 쥐어진 카드’라는 인식은 반 총장의 위력이 커지는 것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강경 보수 이미지가 강한 친박계 후보라는 인상이 강해지면 비정치인 출신으로서 지니고 있는 중도층 소구력이 약해져 이른바 확장력이 제한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의 일국(一國) 방문치고는 이례적으로 길다는 5박6일. 긴 기간만큼이나 긴 정치적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반기문은 떠났지만, 대선주자로서의 반기문은 남았다. 옹위(擁衛)하려는 세력과 끌어내리려는 세력의 일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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