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다 돈’ 땜질식 처방이 총체적 부실 불렀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0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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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열아홉 살 김군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정수영 서울메트로 안전관리본부장이 6월1일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면피·떠넘기기·은폐·축소…. 안전사고 뒤에 으레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5월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젊은 수리공이 숨졌다. 사회초년생인 김 아무개군은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올해 나이 열아홉 살, 시민들은 김군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김군은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인 은성PSD 소속 근로자였다. 사고 당일 그는 구의역 9-4번 승강장에 있는 고장 난 스크린도어를 열고 선로 쪽으로 들어가 홀로 정비를 시작했고, 곧이어 들어온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취업 7개월 차였던 19살 청년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김군의 죽음 뒤에는 ‘과실’과 ‘인재’가 도사리고 있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매뉴얼’도 형식상 만들어진 종이 조각에 불과했다. 2호선에는 언제든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관리 외주업체를 선정할 때 입찰을 부쳐 최저가를 써낸 업체에 낙찰했다. 이런 방식으로 은성PSD는 2011년부터 5년 동안 서울메트로와 약 350억원가량의 계약을 체결했고, 1~4호선 97개역(스크린도어 7700여 개)의 관리를 맡았다.


문제는 은성PSD의 인적구성이다. 이것을 보면 왜 이번 사고가 일어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사 전체 임직원 143명 중 정비 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은 59명(41%) 정도다. 나머지 84명 중 상당수는 서울메트로 퇴직자 출신이다. 전문성이 없는 퇴직자들이 하청업체인 은성PSD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재취업’ 형태로 고용됐던 것이다.
은성PSD는 매월 용역비로 5억80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낙하산 출신들에게 지급됐다. 용역비의 대부분이 스크린도어 수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워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수리공들의 급여는 ‘쥐꼬리’만 했다. 숨진 김군의 월급은 144만원에 불과했다.


서울메트로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은성PSD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들을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고장이 났을 때 투입할 수리공이 현저히 부족했다. 지하철역에는 수시로 전동차가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2인1조’ 근무가 원칙이다. 한 명은 열차가 오는 것을 지켜보고, 한 명은 수리를 하는 형태다.


그러나 은성PSD는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하소연한다. ‘2인1조’ 근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수리공이 최소 28명이 필요했다.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에 수리공 충원을 요청했지만 17명만 받아들여졌다. 이 중 수리공은 7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10명은 스크린도어 청소 인력이었다. 산술적으로 봐도 수리공 21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상적인 근무형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적은 비용과 인력으로는 스크린도어의 잦은 고장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 수리공 7명이 97개역의 수리를 맡다 보니 말 그대로 ‘5분 대기조’나 다름없었다. 숨진 김군의 가방에서 뜯지 않은 컵라면과 수저가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했던 셈이다.


사고도 대처도 ‘판박이’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는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서울메트로가 운행을 담당하는 2호선에서 발생했고, 안전조치 없이 혼자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가 일어났다. 지난 2013년 1월 은성PSD 직원 심 아무개씨(당시 37세)가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심씨는 역무원에게 작업을 통보했지만, 군자 차량기지로 진입하는 빈 전동차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서울메트로는 이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작업 매뉴얼을 만들었다. 크게 세 가지였다. 스크린도어 점검 시 2인1조 출동, 지하철 운행시간에는 승강장에서만 작업하고 스크린도어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 스크린도어 안에 들어갈 때는 사전에 보고할 것 등이다.


그러나 2년7개월 후에 같은 사고가 강남역에서 또 발생했다. 지난해 8월 유진메트로컴 소속 조 아무개씨(당시 29세)가 스크린도어 안쪽에서 장애물 감지센서를 점검하다가 승강장으로 진입하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세 차례의 사고가 재연되는 것을 보면 서울메트로는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했던 것이다. ‘땜질식 처방’이 낳은 비극이었다.


세 번의 사고 대처도 판박이였다. 이번 구의역 사고가 나자 서울메트로는 사고 책임을 ‘죽은 수리공’에게 떠넘기려 했다. 사고 발생 직후 서울메트로가 내세운 사고 원인은 2인1조로 출동하지 않은 점, 작업자가 역사 출동 사실을 서울메트로 전자운영실에 통보하지 않은 점, 작업자가 작업일지를 작성하지 않은 점, 작업표시판을 부착하지 않고 작업한 점 등이었다. 모두 숨진 김군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군의 가족들은 서울메트로가 사고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때까지 장례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의 어머니는 “회사 측에서 지킬 수 없는 규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우리 아이가 지키지 않아 그 과실로 죽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너무 억울하다”며 울분을 토했다.


경찰과 서울시의 조사 결과는 서울메트로와는 달랐다. 사고 당일 김군은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겠다”고 역무원에게 보고했다. 역무원은 규정대로 보수 인력 두 명이 왔는지 확인하지 않고, 스크린도어 열쇠를 내줬다. 이때 역무원이 규정대로만 했더라도 김군은 죽음을 피했을 것이다.


역무원은 열쇠의 반출과 반납을 일지에 기록해야 하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사고 당시 구의역 상황실에는 역무원 3명이 근무했다. 김군 혼자 작업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역무원 중 한 명은 CCTV로 전동차가 역으로 접근하는지를 지켜보고 안전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CCTV를 주시하지도 않았다. 이런 사실이 사고 사흘 뒤에 드러나자 김군에게 사고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서울메트로는 그때서야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마터면 김군을 두 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은성PSD가 김군이 사고 당시 “2인1조로 근무했다”고 서울메트로에 허위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업무상 과실을 피하기 위해 작업일지를 조작했던 것이다.


사망한 작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3년 1월 성수역 사고 때도 서울메트로와 은성PSD는 서로 네 탓 공방만 하다가 “지시도 없이 수리 작업을 진행했다” “전동차가 없는 밤에만 작업할 수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책임 떠넘기기에 나섰다. 죽은 사람 탓으로 몰아갔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스크린도어 작업을 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원청과 하청 어느 곳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당시 서울메트로와 은성PSD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됐지만 양쪽 모두 업무상 과실치사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숨진 심씨의 유족은 양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은성PSD에만 3000만원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이에 유족이 항소하자 배상금을 4500만원으로 늘리는 선에서 강제조정안이 받아들여졌다.

 

안전시민연대 및 노년유니온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월1일 스크린도어 정비작업 중 숨진 김 아무개씨 사고와 관련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 없애는 게 최선의 대책
구의역 사고 후 서울메트로는 재발 방지대책을 내놓았다.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이 2인 이상인지 역무원이 점검하겠다는 것과 오는 8월1일까지 스크린도어 유지·관리를 맡을 자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전 사망 사고 후에 내놓은 대책을 ‘재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회사 설립’도 이미 나왔던 대책이라는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자회사를 설립하면서 일부 용역직원들을 채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자사의 퇴직자들을 채용하려고 했다. 자회사가 퇴직자들의 ‘일자리 만들어주기 창구’라는 비난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숨진 김군은 이러한 내용의 문건이 공개되자 최근 2개월 동안 휴일마다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대책이 없어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니었다. 매뉴얼이 있었지만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이 사고를 불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제2, 제3의 구의역 사고는 불을 보듯 뻔하다.


문제의 근원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대책인데, 이를 위해서는 하청업체 선정 방식을 바꿔야 한다. 원청업체가 업무의 일부분을 아웃소싱하는 것은 효율적인 일처리와 하청업체의 전문성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산업계는 이를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품질과 안전은 뒷전이고, 무조건 비용을 줄이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청업체들은 하청업체를 선정할 때 ‘저가낙찰제’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메트로도 마찬가지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값싼 제품은 그만큼 품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만큼만 줄 테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하청업체는 일감을 얻기 위해 출혈을 감수해서라도 낙찰을 받으려고 할 것이고, 일감을 수주하면 인건비나 시공비 등의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열악한 용역업체들이 비전문적 인력을 현장에 투입하다 보니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서울메트로는 서울시 산하의 공기업이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세금은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정작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서울메트로는 하청업체를 제 식구들 밥그릇 챙겨주는 곳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퇴직자들의 낙하산을 없애고, 그 자리를 관련 자격증을 가진 전문인력으로 채워야 한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매뉴얼에 있는 ‘2인1조’ 근무방식을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작업자가 작업을 역무원에게 통보했는데도, 누구 하나 작업자의 안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역무원들의 ‘무사안일’이 살릴 수 있는 청년 수리공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지금까지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의 경우 제대로 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 관리·감독 부실로 사람이 죽었지만 벌금 몇 백만 원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이런 총체적인 문제들이 스크린도어 작업자를 죽인 공범들이다. 다른 안전사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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