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자금흐름’ 관찰한 검찰, 타이밍만 노렸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6.12 10:14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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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심장부로 파고든 검찰의 칼날, 다시 안갯속에 빠진 경영권 분쟁

“언제 터졌어도 터질 것이 결국 이번에 터진 것 아니겠나.” 최근 롯데그룹을 향한 검찰의 전 방위적이고 대대적인 수사를 지켜보는 재계나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와 첨단범죄수사1부는 6월10일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계열사, 임원의 주거지 등 17곳을 압수수색했다. 무엇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재계 서열 5위 롯데는 지금 충격에 빠져 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 계열사는 호텔롯데와 롯데쇼핑, 롯데홈쇼핑 등 3곳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집무실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과 신동빈 회장의 평창동 자택도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사와 수사관 200여 명이 압수수색 현장에 출동해 회계장부 등을 확보했다”며 “첨단범죄수사1부는 롯데홈쇼핑 비리를, 특수4부는 그룹 전반에 대한 수사를 맡을 예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계열사만을 타깃으로 삼았던 검찰 수사의 칼날이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 등 오너 일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검사·수사관 200여 명 압수수색 대거동원

 

시사저널은 지난 4월26일자(1384호) ‘총선 이후 재계에 전방위 사정 태풍…롯데·대우조선해양·부영 3대 타깃으로 거론’ 보도에서 일찍이 지금의 사태를 예견한 바 있다. 실제, 검찰은 6월8일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선 데 이어, 이틀 후인 10일은 롯데를 정조준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부영그룹 탈세 의혹의 경우, 지금 특수1부가 ‘정운호·홍만표 게이트’ 수사에 우선적으로 달라붙고 있어 다소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의 타깃이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롯데는 사정 1순위로 거론됐다. 이명박(MB) 정부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히면서 대대적인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MB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형 M&A(인수·합병)에 잇달아 성공했다. 2008년 43조8920억원이던 그룹의 자산은 2012년 83조305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계열사 수도 46개에서 79개로 늘어났다.

정권이 바뀌자 롯데는 납작 엎드려 사정의 칼날을 피해갔다. 롯데가 최근 여성 인력을 대거 충원한 것도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시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경력 단절 여성들의 재취업을 돕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현 정부 초기부터 여성 인력을 대거 채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인력을 빼낸 자리에 여성 직원을 채울 정도였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이 탄생하기도 했다.

검찰은 6월 초 서울 소공동 호텔롯데 면세점사업부와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네이처리퍼블릭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하는 과정에서 신 이사장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선 것이다. 6월 말로 예정된 호텔롯데의 상장 계획은 잠시 연기됐다. 면세점 사업부가 호텔롯데의 주요 사업인 데다, 신 이사장이 이 회사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롯데그룹은 “상장 계획은 큰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던 증권신고서를 수정해 다시 제출할 계획”이라며 “처음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담지 못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소 일정이 지연될 수 있지만 주주가치 제고와 보호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만큼 상장 계획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너 일가인 신 이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룹 전체로 확대 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도“그룹 전체로 수사가 번질 것이라는 추측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서는 이때 이미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었다. 5월 말을 전후로 ‘미니 중수부’로 불리는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수사관들이 개인 일정을 취소하고 업무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주말도 모두 반납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특수단이 수사 대상을 롯데로 압축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파다했다. 결과적으로 이 예상은 빗나갔다. 당시 특수단이 훑은 자료는 대우조선해양에 관한 것이었다. 롯데 대신 대우조선해양을 첫 번째 타깃으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시간 이미 특수4부와 첨단수사1부가 롯데그룹 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만표·진경준 비리 수사 물타기’ 의심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하필 이때냐”는 것이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재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검찰은 신 이사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지 불과 8일만에 그룹 전체로 수사 대상을 확대했다. 이에 대해 6월 초 면세사업부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이 나왔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동안 호텔롯데 등에서 압수수색한 회계장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압수수색에 투입된 부서가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1부와 특수4부 두 곳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첨단수사1부는 지난해 롯데홈쇼핑 비리를 수사한 곳이다. 검찰은 당시 거액의 상납을 받은 신헌 전 롯데홈쇼핑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10명을 기소했다. 이후에도 검찰은 수상한 자금흐름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흐름을 밝혀냈을 수도 있다. 검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신 전 대표는 한때 롯데쇼핑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며 “롯데홈쇼핑에 이어 롯데쇼핑이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다른 얘기도 나오고 있다. 올해 검찰은 전·현직 검사장들의 잇따른 추문으로 곤욕을 치렀다. 검사장 시절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혔던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계 구명로비 의혹으로 수사를 받다 최근 구속됐다. 진경준 검사장은 지난 3월 공직자재산공개 과정에서 ‘126억 주식 대박’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그는 주식 매입자금의 출처를 거짓으로 해명한 것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커졌다. 한 시민단체는 진 검사장을 고발했고,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다.

고위층의 잇따른 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야당 주변엔 특검 얘기가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다. 때문에 검찰이 국면전환을 위해 롯데그룹을 타깃으로 잡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나오고 있다. 오랜 기간 내사를 통해 자료를 축적해왔기 때문에 수사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신동빈 회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어떤 경우든 신 회장에게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성장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2011년 롯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직전 롯데그룹의 자산은 67조2650억원대였고, 계열사는 60개였다. 롯데그룹은 하이마트(현 롯데하이마트)와 KT금호렌터카(현 롯데렌터카), 삼성정밀화학(현 롯데정밀화학)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2015년 기준으로 롯데그룹의 자산은 93조4070억원, 계열사 수는 80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불거진 ‘왕자의 난’으로 신 회장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형제간 재산 다툼 과정에서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가 도마에 올랐고, ‘롯데=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의 상장을 시작으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집권 5년 차인 신 회장의 리더십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시내면세점 추가 선정에 악영향 미칠 듯

무엇보다 올해 말로 예정된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사업자 선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선정 과정에서 특허권을 박탈당했다. 정부는 최근 두세 곳의 특허권을 추가로 내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배경에 롯데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비리에 연루돼 비난 여론이 확산될 경우, 시내면세점 선정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면세점 사업자 추가 선정을 두고 특혜 논란이 일고 있다”며 “입점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롯데에 추가 사업권을 내주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주목된다. 서울공항 활주로 너머로 제2 롯데월드가 보인다.

[박스] MB 정부의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 이번엔 밝히나

검찰이 롯데그룹 전반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하면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이 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메스를 들이댈지 여부다.

이명박 정부는 2009년 3월 잠실 제2롯데월드의 건축을 최종 승인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제2롯데월드의 건축 방안이 다시 검토된 지 1년 만이었다. 이전까지 국방부와 공군은 “서울공항 최종 접근 경로에 인접한 초고층 건물은 사고의 잠재 요인이 된다”며 건축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2006년 서울시가 제2롯데월드 건축계획을 심의 가결하자 행정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2009년 입장을 번복했다. 동편 활주로 방향을 3도 틀고, 필요한 비행 안전시설 비용을 롯데그룹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건설을 승인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에 부정적이었던 김은기 공군참모총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경질되기도 했다.

야당에서는 그동안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일례로 정부는 제2롯데월드를 승인하면서 서울공항에 드나드는 항공기의 기지를 이전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 관계자는 “정부는 건설 승인 후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KA-1 저속통제기와 대통령 전용기를 다른 공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총리실 주관 회의에서 안전하다고 판단해 없었던 일로 됐다”고 말했다.

성남 서울공항에서는 2005년부터 격년으로 서울에어쇼가 열려왔다. 주 활주로인 서편에서는 전시회(비즈니스 데이)가, 부 활주로인 동편에서는 에어쇼(퍼블릭 데이)가 동시에 열렸다. 하지만 2013년부터 ‘비즈니스 데이’와 ‘퍼블릭 데이’가 다른 장소에서 개최됐다. 에어쇼는 청주공항에서, 전시회는 160km 떨어진 일산 킨텍스에서 열렸다. 서울공항 활주로의 정비 공사가 늦어지면서 에어쇼 장소마저 바뀌게 됐다.

안전문제도 거론된다. 서울공항은 활주로 공사를 진행하면서 ASR(비정밀) 착륙 절차도 포기했기 때문이다. 서울공항은 그동안 ASR 레이더와 PAR(정밀) 레이더를 통해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해왔다. 정부는 문제가 된 동편 활주로의 방향을 3도 틀고, 항공 안전장비를 추가하면서 ASR 접근 절차를 포기한 것이다.

이렇듯 제2롯데월드를 두고 그동안 뒷말이 적지 않았다. 야당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찰 수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검찰이 최근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나서면서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에 나설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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