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견제 위해 누나 손잡은 게 악수(惡手)였나
  • 김소연 머니투데이 산업부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2 10:41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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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게이트’ 불통 튄 롯데,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다시 원점으로

‘엎친 데 덮친 격’. ‘정운호 게이트’의 불똥이 튄 롯데그룹의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만큼 적합한 표현이 또 있을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가까스로 구명의 길을 찾자마자 이번에는 ‘정운호 쓰나미’가 롯데그룹을 덮쳤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네이처리퍼블릭의 면세점 입점 명목으로 20억 여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롯데그룹이 사정의 칼날 한가운데에 섰다. 


그뿐만이 아니다. 롯데홈쇼핑은 6개월 황금시간대 영업정지에, 롯데마트는 ‘가습기 살균제 파문’으로 전 대표이사였던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이 구속 위기에 놓였다. 정운호 게이트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롯데그룹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검찰은 신 이사장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주요 임원들 자택까지 압수수색했다. 이로 인해 1년여를 끌어온 롯데그룹 형제간 경영권 분쟁 향방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신 회장으로서는 당초 형(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편에 섰던 누나(신영자 이사장)를 포용한 데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원 롯데, 원 리더’라는 공든탑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신 회장의 한숨도 절로 깊어지고 있다. 

2015년 3월24일 ‘롯데월드타워 100층 돌파 기념 및 안전기원식’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신영자 당시 롯데쇼핑 사장 등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신동빈 원 리더’ 체제 근간부터 뒤흔들 수도

당초 검찰의 1차 타깃은 롯데면세점이었다. 정운호 대표로부터 네이처리퍼블릭 면세점 입점 대가로 신영자 이사장이 약 20억원의 뒷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밝혀내는 데 수사의 초점이 맞춰졌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롯데면세점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가 롯데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 시간문제라고 봤다. 롯데면세점이 호텔롯데의 매출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 검찰이 신 이사장 자택과 그의 아들 자택 및 회사, 호텔롯데 면세사업부 등을 압수수색할 당시 100여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점, 신 이사장이 과거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임원으로 재직해 영향력이 크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했다.

우려는 금세 현실화됐다. 검찰은 롯데면세점에 이어 6월10일 호텔롯데를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호텔롯데 대표이사인 신동빈 회장과 주요 임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회사다. 롯데면세점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호텔롯데는 물론, 계열사인 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그룹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장소에는 롯데그룹 정책본부와 계열사 7곳이 포함돼 있고, 주거지를 포함하면 17곳”이라며 “검사와 수사관 등 200여명이 압수수색에 참여했고 횡령과 배임 혐의를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소문은 박근혜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공군 참모총장을 경질하면서까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를 내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롯데는 효성·CJ와 더불어 대표적인 MB 특혜기업으로 통한다. 효성과 CJ가 현 정부 들어 사정 당국의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는 점은 롯데그룹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사태에 특히 관심이 쏠리는 것은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향배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롯데그룹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은 자칫 ‘신동빈 원 리더’ 체제를 근간부터 뒤흔들 수 있다.

지난해 7월27일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신동빈 회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을 전원 손가락 해임하면서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1년여 지루한 싸움을 이어왔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 회장은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직후인 8월 대국민 사과를 통해 투명경영,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약속했다. 

‘아버지의 뜻’만을 앞세우는 신동주 전 부회장과 달리, 신동빈 회장이 내세운 현실적인 공약은 온 국민과 주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결과 신 회장은 ‘경영능력 우위’라는 이미지로 여론전에서 승기를 거머쥐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롯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러나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의 전 방위 수사가 벌어지면서 어렵게 기회를 얻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신규 특허 취득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인 호텔롯데 상장 역시 물 건너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신 회장의 거액 비자금 조성 혐의가 사실로 입증될 경우, 그의 리더십은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롯데 측 “사태 예측 어려워…예의주시 중”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상장은 일본 롯데와의 지분관계를 끊어내고 롯데그룹이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필수 절차다. 호텔롯데 상장을 시작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롯데 핵심 계열사들이 줄줄이 상장하면 신동빈 식 ‘투명경영’은 물론, 순환출자구조 해소 등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롯데면세점 사태 때문에 호텔롯데 상장은 당초 목표했던 6월 말에서 7월 말로 연기됐다. 삼성생명을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 꿈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검찰 수사확대 여부에 따라 상장 일정은 앞으로도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회심의 일격을 가할 기회를 잡았다. 신 전 부회장 측은 내내 호텔롯데 상장을 반대해왔다. 한국 롯데를 일본 롯데가 지배하고 있는 현 구조를 바꾸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 회장 측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졌던 6월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역시 변수가 생겼다. 한국 롯데의 위기를 본 일본 롯데 주주들이 신 회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경영권 분쟁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주요 계열사에 대한 신 전 부회장의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도 이어질 수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을 입증해 모든 소송전을 끝내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당초 4월 신 총괄회장 병원 입원, 5월 신 총괄회장 성년후견인 지정을 통한 소송전 종료, 6월 호텔롯데 상장과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완승, 12월 롯데월드타워 완공 및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화해라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나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지금,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당사자인 신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받지 않겠다고 병원을 박차고 나간 상황이어서 롯데의 선택지가 좁다. 경영권 분쟁 초기 신 전 부회장 편에 섰던 신 이사장을 포용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신 회장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번 수사가 롯데그룹의 핵심사업인 제2롯데월드 건설 인허가 과정 특혜 시비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롯데그룹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인해 호텔롯데 상장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우리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롯데물산 압수수색은 없었기 때문에 제2롯데월드까지 사태가 확대될 것이라는 추측은 지나치고 일단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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