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우리가 사는 곳으로 끌어내리자”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14 15:59
  • 호수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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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특권은 국회의원을 우리의 삶으로부터 유리시켜”

 

 

6월9일 오후 20대 국회 첫 본회의를 위해 여야 의원들이 일제히 본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새 국회가 개원할 때마다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가 숙제로 제시되곤 한다. 근래 들어선 총선 때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에 대한 공약도 많았고 실제로 이에 대한 제도개선도 있어왔다. 19대 국회에선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종사 금지,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 제도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국회의원 수당법,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이 통과된 바 있다. 과도하거나 비합리적인 특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은 여전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국회의원들에게는 상당한 경제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연봉 1억5000만원가량 되는 세비 이외에 사무실 운영비, 정책자료 발간비 등 의정활동 경비가 1억원 가까이 추가로 지급된다. 그래서 국회의원 한 명이 1년에 받는 돈은 2억3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보좌진 7명의 급여를 더하면 사실상 의원 한 사람에게 연간 6억800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지역구 활동이나 현장방문 등으로 지방에 많이 다녀야 하는 점을 감안해 KTX와 국내 선박·항공기 탑승도 지원받는다. 그리고 국회 안에 있는 각종 편의시설들에 대한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모두가 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라고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갖고 일일이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지원을 받고 의정활동만 제대로 해준다면 그것을 감당 못할 국력도 아니고, 이해 못할 국민도 아니다. 수많은 특권과 지원 가운데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당장 19대 국회가 매듭짓지 못해 이월된 숙제들이 있다. 우선 불체포 특권의 남용을 방지하는 일이다.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장이 정부로부터 체포동의 요청을 받은 후 처음 여는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체포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지지 않고 기간이 경과돼 그냥 폐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국회가 여론을 의식해서 부결시키기는 부담스러운 경우 이런 방식이 사용되곤 한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국회가 불체포 특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19대 국회에서도 이를 개선하려는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결국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체포동의안을 정해진 기간 내에 표결하지 않을 경우, 그 기간이 지난 이후 처음으로 여는 본회의에 자동 상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서 발의했으니, 이에 관한 초당적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불체포 특권 남용도 재논의 해야

 

그리고 유명무실한 국회 윤리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 윤리위는 제 식구 감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의원들의 비윤리적 행태에 대한 제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윤리위의 위상을 강화하고 외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해 실질적인 조사와 징계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밖에도 편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의 통로가 돼온 출판기념회 금지 여부, 본회의와 상임위가 열리지 않을 경우 수당 지급을 금지하는 문제 등도 20대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정치를 무조건 불신하는 반(反)정치의 사고에서 나올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들은 별로 하는 일도 없으니 온갖 권리와 지원을 없애서 별 볼일 없는 신세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론 더 나은 정치를 만들 수 없다. 밉든 곱든, 제 역할을 하든 못하든, 우리들의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 정치는 소중한 것이다.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정치혐오를 앞세워 국회의원들을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다만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들을 우리가 사는 곳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필요하다. 가는 곳마다 의원님 소리를 들으며 목에 힘주는 습관이 몸에 배어 마침내 세상을 내려다보는 정치인이 우리의 삶과 하나가 되기는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19대 국회에서도 그런 국회의원들을 많이 보아왔다. 약자들의 아픔은 대수롭지 않게 외면하면서 어느덧 ‘갑(甲)’이 돼 행세하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은 종종 비난과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다르니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갖는 본질적 의미는 사실 그런 것이 아닐까. 다들 어렵게 살고 있으니 함께 비용을 줄인다는 차원의 내려놓기 의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거리를 없애고 일체감을 갖는 대표자들이 되는 길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다.

 

특권 중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 선별해야

 

국회의원선거가 있을 때면 금배지를 달려는 정치인들의 집념과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지켜보게 된다. 4년 내내 지역구를 관리하고 천신만고 끝에 공천을 따내고 마침내 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되는 광경을 보노라면, 정말 아무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더욱이 한번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 자진해서 그 길에서 물러서는 경우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무엇이 그토록 국회의원 자리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일까.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국민의 삶이 개선되도록 하려는 소명의식에서 그러리라 믿는다. 선출된 권력에게 부여되는 특권의 맛에 빠져들어 그렇게 집착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그럴수록 국회의원의 특권은 계속 축소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의원 자리라는 것이 일만 죽어라 하고, 막상 목에 힘주는 신분이 되는 것은 옛날 얘기가 돼버릴 때, 권력의지가 아닌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여의도 의원회관은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해봤더니 힘만 들고 별로 대접도 못 받는 매력 없는 직업이 될 때, 국회의원과 국민은 비로소 삶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특권은 계속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과도한 특권은 국회의원들을 우리의 삶으로부터 유리시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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