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하고 빼든 칼 최종목표는 신동빈 회장
  • 이석·감명국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6.20 13:13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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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강도 검찰수사 업고 신동주 前 부회장 반격 롯데家 경영권 분쟁 다시 원점으로

 

검찰의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이 실시된 서울 서초구 롯데건설 본사에서 15일 새벽 검찰 직원들이 압수물을 실어 나르고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그야말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느낌. 지금 롯데그룹의 상황이다. 국내 재계서열 5위 롯데그룹이 이른바 ‘멘붕’에 빠져 있다. 그룹의 상징적 존재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고, 신동빈 회장은 행여 출국금지라도 당할까 싶어 미국 출장길에서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한 채 곧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그룹을 움직이는 심장부 역할을 하던 롯데정책본부는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년 넘게 검찰수사를 지켜봤지만, 이 정도로 강하게 한 기업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는 건 처음 본다”는 한 검찰 관계자의 말처럼 롯데에 대한 검찰수사는 당초 예상을 벗어난다. 검찰은 지난 6월10일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계열사 30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신 총괄회장의 호텔 집무실과 신 회장 자택까지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현금다발이 들어 있는 비밀금고가 발견되기도 했다. 수사에 투입된 인원만 240명에 달한다.  

 

“‘제2의 중수부’는 특수단이 아닌 특수4부”

 

지난 6월8일 검찰이 대우조선해양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10일 서울 소공동 소재 롯데그룹 정책본부 사무실과 롯데호텔·롯데쇼핑·롯데홈쇼핑 등 계열사 7곳을 압수수색할 때만 해도 재계를 비롯한 서초동 주변에서는 “검찰이 여론 희석용으로 재계 사정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와 진경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한 비리 의혹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기획사정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마치 보란 듯이 롯데에 대한 수사 강도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결코 검찰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듯, 끝장을 보겠다는 투다. 제2롯데월드 인허가 의혹으로 수사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MB 정권을 표적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과 61학번 동기인 장경작 전 호텔롯데 총괄사장이 타깃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왔다. 그러자 “대규모 횡령·배임 등 그룹 총수 일가의 비자금 수사가 주력이 될 것”이라는 검찰의 강경한 입장이 곧 이런 전망을 뒤덮었다.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면서 신동빈 회장(사진)이 표적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사실 검찰과 국회 주변에서는 올 초부터 4월 총선 이후 사정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 첫 번째 타깃이 어디가 될지를 놓고 여러 추정들이 난무했다. 대검찰청이 지난 1월 특별 발족한 부패범죄특별수사단(특수단)이 6월8일 대우조선해양 수사에 먼저 나서고, 바로 뒤를 이어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에서 롯데 수사에 나서자 “검찰이 대우조선 수사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는 오해였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새롭게 발족한 특수단을 가리켜 ‘제2의 중수부’가 아니냐는 표현을 썼지만, 특수단은 TF팀의 한시적 성격이 강하다. 언젠가는 없어질 팀이라는 뜻이다. 내부적으로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를 실질적인 ‘제2의 중수부’로 본다. 중수부가 폐지된 이후 바로 신설된 게 특수4부였고, 실제 중수부 인원 상당수가 특수4부에 배치됐다. 이런 특수4부에 첨단범죄수사1부까지 (롯데 수사에) 가세했다. 그야말로 최정예 요원들이 참여한 것이다.”

 

검찰의 롯데 수사가 결코 갑작스러운 게 아니며, 의도적이거나 즉흥적인 기획·표적 수사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을 이 관계자는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 대관(對官)업무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롯데 수사에서 놀라운 점은 6월10일 압수수색 전까지 검찰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검찰이 이 정도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일 정도면 이미 사전에 치밀하고 다양한 내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전혀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롯데가 받은 충격이 훨씬 더 커 보인다.”

 

 

청진동 사무실 ‘신동주 사단’ 컨트롤타워

 

이 대목에서 또 다른 의혹들이 제기된다. 누군가 롯데 수사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당장 떠오르는 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쪽이다. 신 전 부회장과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롯데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간 다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의혹 부문은 그동안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 측이 제기한 문제와 겹친다. 대표적인 것이 롯데그룹의 중국 사업 부문이다. 

 

MB 정부 초기인 2008년 롯데쇼핑은 홍콩에 설립된 롯데홀딩스를 통해 중국 투자에 나섰다. 이듬해 65개 마트를 보유한 ‘타임스’를 인수했다. 당시 롯데그룹 한국 사업을 총괄했던 신동빈  회장은 롯데쇼핑을 통해 7400억원 규모의 현금을 쏟아 부었다. 2010년에는 롯데홈쇼핑과 롯데미도파 등 유통 계열사를 동원해 중국 럭키파이 지분을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거액의 손실이 발생했다. 롯데쇼핑 중국법인 중 상당수가 현재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추정이지만 손실 규모도 1조원에서 3조원으로 커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검찰은 롯데가 중국에서 손실액을 부풀려 상당액을 비자금으로 조성한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 이면에 대규모 배임과 횡령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015년 10월1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측도 그동안 중국 사업의 부실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왔다. 경영권 다툼에서 패배한 신 전 부회장은 롯데쇼핑 등의 1만6000페이지 분량의 회계 자료를 확보했다. 이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상당수 잡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불거진 ‘왕자의 난’도 사실은 신 전 부회장이 중국 사업의 손실을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보고하면서 본격화됐다. 

신 전 부회장의 ‘책사’로 불리는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현재 SDJ코퍼레이션의 고문직을 맡고 있다. SDJ코퍼레이션은 신 전 부회장이 대표로 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위치한 SDJ코퍼레이션은 그동안 정체불명의 사무실이었다. 명목상 상품종합도매업 회사로 돼 있지만, 특별히 하는 일도 업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실의 실질적인 주도자가 민 전 회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 전 부회장은 이 사무실 운영비로 불과 반년 동안 무려 75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무실의 실질적인 업무는 신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 전 부회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란 게 정설이다. 따라서 롯데 주변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민 고문에게 제대로 코가 꿰었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무실이 향후 대대적 반격을 꾀하기 위한 ‘신동주 사단’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와 정혜원 SDJ코퍼레이션 홍보상무도 민 전 회장을 통해 신동주 사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 전 회장은 그동안 신동빈 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왔다. 그는 “롯데의 중국 투자 손실 규모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규모와 맞먹는다”며 “손실을 막기 위해 계열사 자금이 대거 동원되면서 횡령이나 배임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곳이 신 전 부회장 쪽이라는 얘기가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는 “민 전 회장이 보기 좋게 내용을 잘 정리해서 (검찰에) 건넸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은 이 같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민 전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수사는 (검찰이) 장기간 내사를 거쳐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항간에 떠도는 수사 자료 사전 제공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신 전 부회장의 대리인인 김수창 변호사도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보유한 자료를 추가할 수도 있다”면서도 “이번 수사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 측 자료가 도움 된 것은 사실”

 

하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 롯데그룹 압수수색 초기 검찰은 증거 인멸의 흔적을 비교적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롯데건설의 경우 WPM이란 자료 삭제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롯데칠성음료는 컴퓨터 외장하드를 빼서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룹 내부의 조력자가 없었다면 파악이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민유성 전 회장도 올해 초 의미 있는 언급을 했다. 그는 “(주총에서 패배한) 신 전 부회장이 여전히 일본에서 종업원지주회 관계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며 “일정 부분 진전도 있었다. 지주회 회원들이 속마음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명분을 줄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 후 검찰이 롯데그룹을 상대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는 점에서 여전히 뒷말이 나오고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 측 자료가 수사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는 얘기까지 롯데 수사팀 관계자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공은 현재 검찰의 손에 넘어간 상태다. 검찰은 두 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 상당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요하다면 해외 수사 당국과 형사사법 공조를 하는 방안까지도 검토 중이다. 지난해 8월과 올해 3월 일본에서 진행된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승리하며 그룹을 장악한 신동빈 회장의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신 전 부회장 역시 한국 롯데에 대한 검찰수사를 틈타 반격을 노리고 있다. 결국 검찰의 최종목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라는 게 현재 서초동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2차 압수수색으로 롯데 비자금 수사 윤곽 

 

롯데그룹을 둘러싼 의혹은 현재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특히 검찰은 6월14일 2번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후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의 윤곽도 더욱 뚜렷해졌다. 우선 주목되는 곳이 롯데케미칼이다. 롯데케미칼은 국내에 상장된 롯데 계열사 중 시가총액이 가장 큰 회사다. 주로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원료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 넣어 ‘통행세’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비자금 루트 중 하나로 지목된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롯데케미칼 측은 “비자금 조성은 말이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6월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롯데물산은 외환위기 시절부터 거래를 해왔다”며 “당시 한국 기업의 재무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롯데물산의 신용도를 활용했다. 오히려 롯데케미칼이 일본 롯데물산의 신용을 활용해 이익을 얻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2차 압수수색 대상에는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회사는 모두 롯데 제주리조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 회사는 호텔롯데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호텔롯데의 지분 중 99%가 일본 계열사라는 점에서 ‘국부 유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오너 일가 및 계열사의 부동산 거래 역시 의혹의 대상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2007년 경기도 오산에 있는 자신의 땅 약 3만 평(10만㎡)을 롯데장학재단에 무상으로 증여했다. 이후 한 달 만에 롯데쇼핑에 되팔리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인천 계양구 계양산에 위치한 골프장 부지 역시 2011년 시세보다 2배 비싼 가격에 롯데상사에 매각됐다. 이 때문에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다. 검찰은 오너 일가와 계열사 간의 거래에 탈세 등 문제가 없었는지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검찰은 그룹의 자금을 관리하는 핵심 인사들을 소환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돈이 오너 일가에 지급된 사실도 확인됐다. 5000억원 가까이 보관된 신격호 총괄회장의 개인 금고가 있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비자금으로 조성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롯데그룹 측은 “이미 기업공시를 통해 출처가 밝혀진 것”이라며 “급여나 배당금 등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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