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는 영국인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6.22 18:39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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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입을 열다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지을 운명의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영국 여론이 여전히 찬반으로 갈려 분분한 가운데 헷지펀드의 귀재 조지 소로스가 브렉시트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6월20일(현지 시각) 영국 가디언지에 ‘브렉시트는 영국인 모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경계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싣고 브렉시트가 초래할 비관적 영국 경제전망을 그렸다.

과거 소로스는 1992년 9월16일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에 영국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10억 달러 이상의 차익을 본 경험이 있다. 이 일로 그는 일약 ‘공매도의 귀재’로 떠올랐다. 당시 소로스 거래는 영국의 유럽 환율 메커니즘이 무너지는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가디언지에 실린 소로스의 기고문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인 모두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경계하라"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영국 재무부, 영국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은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가 초래할 경제적 리스크를 과장하고 있다는 공격을 받아왔다. 이러한 비판 기조는 영국의 언론 및 많은 금융분석가들이 폭넓게 유지해왔고, 그 결과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지을 영국인들은 브렉시트 후 그들이 감당해야 할 대가를 상당히 과소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영국인들은 브렉시트가 그들 개개인의 삶과 재정상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바람일 뿐이다. 영국의 EU 탈퇴는 분명 모든 영국 가정에 빠르게 영향을 줄 것이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다. 금융시장과 투자, 물가와 고용시장에도 즉각적이고도 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브렉시트 찬반 여부를 둘러싼 여론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지난 60여 년간 금융권에서 쌓은 개인적 경험을 들어 현 상황에서 자명한 사실들을 몇 가지 짚어주려고 한다. 영국이 EU를 떠났을 때 나타날 매우 실질적인 결과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영국중앙은행과 경제전문기관인 IFS․IMF는 브렉시트가 영국 내부와 대외적으로 초래할 장기적인 경제효과를 평가해왔다. 이들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브렉시트 발효 후 5년 뒤, 영국이 새로운 안정기에 접어들게 됐을 때 영국 한 가구당 소득수준이 매년 3000파운드(약 508만원)~5000파운드(약 847만원)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충분히 비관적인데, 이번 국민투표 논란 과정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더 충격적인 결과가 있다.

투표를 통해 일단 탈퇴가 결정되면 파운드화는 빠르게 추락할 것이 확실하다. 어제(현지 시각 6월19일) 대국민 여론 조사가 EU 잔류 쪽으로 기울면서 시장상황이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브렉시트 이후 예상되는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는 지난 1992년 9월의 수준보다 파괴력이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1992년 당시 파운드화는 15% 수준의 평가절하가 일어났는데 덕분에 나는 투자를 통해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시장가격을 고려한다면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는 최소 15%가 하락할 것이며, 어쩌면 현재 파운드화 가치(파운드당 1.46달러)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20% 이하(파운드당 1.15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국민투표 이전 가격대인 1.50달러~1.60달러 선과 비교하면 25~30% 정도 떨어지는 셈이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이렇게까지 폭락한다면 1파운드 당 가치가 1유로에 해당하는 수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영국인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은 분명하다.

브렉시트 옹호자들은 브렉시트 이후에 파운드화의 급격한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들은 파운드화의 평가절하로 영국 가정의 구매력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것이지만 그래도 평가절하가 영국 경제에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실제 1992년 파운드화의 가치 폭락은 결과적으로 영국 경제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 판명났다. 당시 나는 그런 상황을 초래한 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고맙다는 소리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나는 1992년의 경험이 오늘날 되풀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92년 유익한 평가절하가 가능했던 이유는 영국 정부가 환율 메카니즘의 붕괴로 치솟은 이자율로 인해 과대평가된 파운드화를 ‘방어’할 책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떨까. 이번에 이뤄질 대규모 평가절하는 1992년의 그것보다 훨씬 거칠고 공격적일 것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영국중앙은행이 더 이상 이자율을 내리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영국중앙은행은 1992년과 2008년의 대규모 평가절하 사태 이후 이자율을 완화했다. 하지만 현재 기준이자율은 영국의 시중은행들과 양립할 수 있는 선에서 이미 최저 수준이다. 이 부분이 브렉시트가 통과돼서는 안 될 이유다. 브렉시트 이후 주택가격의 하락과 일자리 감소가 경기 침체를 가져온다고 치자(장담컨데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기준이자율이 이미 최저점을 찍고 있는 상태에서는 통화정책만으로는 경기 침체와 수요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둘째, 영국은 현재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상태다. 1992년과 2008년과 비교해 봐도 그 규모가 훨씬 크다. 오늘날의 영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외국 자본의 유입에 의존하고 있다. 마크 카니 영국중앙은행장의 표현처럼 낯선 이들의 호의에 의존하고 있다. 1992년과 2008년의 평가절하는 더 많은 외국 자본이 영국에 들어오도록 촉진시켰다. 주거용 자산과 상업용 토지뿐만 아니라 제조업 투자에도 외국 자본이 물밀듯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번 브렉시트 이후에는? 자본의 흐름은 반대로 흘러갈 것이다. 이처럼 자본 유출 현상은 영국이 EU와 재협상을 하는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더욱 분명하게 일어날 것이다.

셋째, 브렉시트 이후의 평가절하는 1992년과 달리 제조업 수출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영국 업체들이 새로운 투자를 감당하거나 고용을 늘리거나 혹은 수출 역량을 늘리기에는 무역 상황이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브렉시트 이후 일어날 평가절하가 1967년의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1967년 파운드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던 해럴드 윌슨 총리의 유명한 말이 있다. “네 호주머니 속의 파운드화는 아직 평가절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영국인들은 그에게 동조하지 않았고 수입비용과 해외여행 경비는 솟구쳤다. 반면 영국인들의 실질적인 삶의 수준은 하락했다. 그러는 동안 ‘취리히의 작은 악마’라고 불리던 스위스 증시의 투기세력들은 많은 차익을 취했다.

오늘날 시장의 투기세력은 당시보다 훨씬 크고 훨씬 강력해졌다. 이들은 영국 정부 혹은 영국 국민들이 실수하기를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다. 브렉시트를 결정지을 국민투표는 누군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울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투표자들은 눈에 띄게 가난해질 것이다.

나는 영국인들이 ‘EU를 떠나는 것’의 진정한 대가를 알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전에 말이다. 만약 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영국이 EU를 탈퇴하게 된다면 우리는 조만간 또 한 번의 ‘블랙 프라이데이’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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