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명문구단 쇼핑’ 나선 中 거대자본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3 10:45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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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캉그룹·쑤닝 등 애스턴 빌라·인터 밀란 잇따라 인수

#1. 5월19일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의 축구구단 애스턴 빌라는 구단 홈페이지에 “구단주 랜디 러너가 구단 지분 100%를 샤젠퉁(夏建統)이 이끄는 루이캉(睿康)그룹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영국 BBC가 보도한 매각대금은 6000만 파운드(약 1001억원)였다.

 

#2. 6월6일 중국에서 2번째로 큰 가전유통업체인 쑤닝(蘇寧)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문구단 인터 밀란의 지분 70%를 2억7000만 유로(약 3576억원)에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의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는 장진둥(張近東) 쑤닝 회장과 에릭 토히르 인터 밀란 회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장 회장은 “인터 밀란은 세계 일류 축구선수들의 요람이자 꿈의 무대”라면서 “인터 밀란의 미래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축구 명문구단을 집어삼키고 있다. 완다그룹이 지분을 사들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 모습

 

시진핑 주석 “월드컵 우승은 나의 소원”

 

2주 간격으로 벌어진 이 빅딜은 세계 축구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애스턴 빌라와 인터 밀란이 현지 축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다. 애스턴 빌라는 1874년 버밍엄을 연고지로 창단했다. 1888년 세계 최초로 창립된 축구리그인 풋볼리그(프리미어리그의 전신)에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그 뒤 풋볼리그 7회 우승, FA컵 7회 우승,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1회 우승 등의 큰 성과를 거뒀다. 

 

인터 밀란이 남긴 족적은 더욱 거대하다. 인터 밀란은 1908년 이탈리아와 영국 선수만 받았던 AC밀란에 반기를 들어 창단됐다. 창단 이듬해 첫 우승컵을 안은 이래 세리에A에서 18번 우승한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3차례나 우승했고, UEFA컵에서도 우승컵을 3번 안았다. AC밀란과는 숙명의 맞수로 유명하다.

 

지난 수년간 애스턴 빌라와 인터 밀란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애스턴 빌라는 2006년 미국인 사업가인 랜디 러너가 인수한 뒤 줄곧 하위권을 맴돌았다. 2015~16시즌엔 최하위에 그쳐, 1992년 프리미어리그가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또한 지난해 2700만 파운드(약 4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성적 부진으로 입장료와 TV 중계권료의 수익이 줄면서, 올해 안에 500여 명의 직원을 해고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구렁텅이에 빠진 애스턴 빌라를 루이캉이 구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루이캉은 홍콩과 중국 증시에 상장된 5개 기업을 포함해 22개의 법인을 거느린 지주회사다. 75개국에서 3만500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샤젠퉁 회장은 19살에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가, 25살에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다. 미국에서 IT(정보기술)회사를 창업해 지금의 다국적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샤 회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다닐 때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애스턴 빌라의 광팬이었기에 인수전에 나섰다”고 밝혔다.

 

루이캉이 축구계에 처음 발을 담근 초짜라면, 쑤닝은 이미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장본인이다. 지난겨울 쑤닝이 운영하는 중국 슈퍼리그의 장쑤 구단이 이적 시장에서 세계적 스타들을 줄줄이 사들였기 때문이다. 장쑤는 알렉스 테세이라(브라질), 하미레스(브라질), 조(브라질), 트렌트 세인즈버리(호주) 등을 영입했다. 유럽 빅 클럽들이 노리던 테세이라의 이적료로 5000만 유로(약 662억원)를 지불하는 등 모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 축구계를 경악시켰다.

 

본래 쑤닝은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국 최대 가전유통업체인 궈메이(國美)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느라 다른 분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수년 전 중국의 상황이 급변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축구광인 데다 중국 정부가 축구굴기(足球崛起·축구를 일으켜 세움)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열성 치우미(球迷)다. 시 주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중국이 월드컵에 출전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나의 세 가지 소원”이라고 말하곤 했다. 2013년 6월 자국 대표팀이 태국에 1대5로 대패하자, 시 주석은 국가체육총국에 직접 전화를 걸어 “모든 역량을 동원해 원인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시 주석의 열정은 지난해 2월에 표면화됐다. 중국 정부가 ‘축구개혁 종합방안’을 수립했던 것. 이 방안에는 △초등·중학교 체육과목에서 축구를 필수로 지정하고 △2017년까지 축구학교 2만 개를 설립해 축구선수 10만 명을 양성하며 △10년 내 전용경기장 수백 개를 설립하도록 했다. 여기에 중국 기업들이 발 빠르게 호응했다. 2014년 6월 알리바바그룹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가 연고지인 헝다(恒大) 구단을 인수했다. 이후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헝다를 중국 최고의 클럽으로 성장시켰다.

여기에 쑤닝도 뒤늦게 참여했다. 지난해 12월 5억2300만 위안(약 934억원)을 들여 장쑤 구단을 사들인 뒤 세계적 스타들을 영입한 것이다. 장진둥 회장은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10년간 축구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실제 쑤닝은 구단 인수, 코칭스태프와 선수 영입 등에 23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장 회장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장쑤팀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자비로 1000만 위안(약 17억8000만원)의 승리수당을 걸기도 했다. 장 회장의 개인자산은 약 15조원에 달한다.

 

 

인터 밀란 출신 축구선수 하비에르 자네티(왼쪽)가 6월6일 중국 난징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다.

 

中 정부 ‘축구굴기’  적극 추진

 

유럽 명문구단 쇼핑 붐은 지난해 초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 중국 최대 부동산재벌인 완다(萬達)그룹이 프리메라리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4500만 유로(약 525억원)에 사들였다. 11월에는 완구제작업체인 싱후이(星輝)그룹이 RCD 에스파뇰의 지분 56%를 6500만 유로(약 857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12월엔 중국 최대 국유기업인 시틱(CITIC)이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모회사인 시티 풋볼그룹의 지분 13%를 4억 달러에 사들였다. 현재 AC 밀란도 지분의 70%를 한 중국 기업에 넘기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 구단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중국인들이 유럽 축구를 가장 좋아하고,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인지도를 단시일 내에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정부의 국책사업에 적극 협조하는 행보로 반대급부를 챙길 수 있다. 실제 중국 정부는 축구굴기를 통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0.6%인 스포츠산업 규모를 2025년까지 1%로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런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이 시 주석의 꿈을 실현하는 데 일조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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