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는 지금 투수 전성시대
  • 김남우 MLB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3 11:01
  • 호수 139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투고타저’ 1점대 평균자책점 4명…‘타고투저’ 한국과는 정반대

 

(왼쪽부터)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메이저리그에서는 6월14일(현지 시각) 기준으로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를 포함한 총 4명의 선발투수가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커쇼는 2013년 처음으로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이후 3번째 1점대 기록을 달성 중이다. 지난해에도 제이크 아리에타(시카고 컵스)와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2013년 이후 올해까지 총 8명의 투수가 1점대를 기록 중이다. 그런데 그 이전 10년 동안에는 이 기록을 달성한 이가 2006년의 로저 클레멘스(휴스턴 애스트로스) 한 명뿐이었다.

 

2000년대 중반 ‘약물시대’로 불리던 타고투저(打高投低)가 끝나면서 투수들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로 이어지던 약물시대는 역대 가장 많은 홈런을 만들어내던 시기다. 2000년의 팀당 평균득점은 4.77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3년간은 모두 3점대의 평균득점을 기록했다. 약물시대가 끝나면서 타고투저에서 투고타저(投高打低)로 시대가 옮겨간 것이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40홈런 타자는 12명이 나왔는데 2000년에는 한 해에만 무려 16명의 타자가 40개 이상의 홈런을 날렸다.

 

투수 평균 구속 10년 사이 시속 4~5km 증가

 

과거에 비해 투수들의 신체조건이 좋아진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에는 각 구단이 선발투수를 키울 때 신체 사이즈를 상당히 중시해서 보고 있다. 그러면서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10년 전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시속 145km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시속 149km에 달한다. 특히 불펜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50km를 넘어간다. 10년 사이에 평균 구속이 4~5km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매년 증가했는데 그에 대한 비중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과 같은 변형 패스트볼의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구종(球種)이 다양해져 투수들이 타자와의 대결에서 우위에 서면서 삼진수가 크게 증가했다. 2006년 9이닝당 삼진수는 6.6개였는데 올해 그 숫자는 8.1개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다. 타자 입장에서는 삼진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변형 패스트볼로 인해 땅볼 타구 또한 증가하면서 장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투수들의 분업화 또한 타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과거에는 선발투수가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게 미덕으로 꼽히던 시절이 있었다. 불펜 투수도 2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투수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선발투수에게 많은 공을 던지게 하지 않는다. 투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투구수를 관리해주고 있으며, 타자들 눈에 익숙해질 만하면 불펜 투수로 교체한다. 특히 불펜 투수는 선발투수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기 때문에 선발투수를 마운드에서 내린다 하더라도 타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투고타저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수비의 변화다. 과거에는 공격이 좋은 선수는 다소 수비력이 떨어지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타자들의 이미지가 1루수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비가 안 좋은 선수는 공격이 좋다 하더라도 ‘반쪽 선수’ 이미지가 남아 많은 출장기회를 얻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에 데뷔한 선수들을 제외하면 최근의 강타자는 1루수보다 수비가 좋은 3루수와 외야수로 많이 뛴다. 최근 신인 드래프트만 보더라도 상위 지명을 받는 선수들은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격수가 많다. 일단 순발력과 수비가 뛰어난 유격수는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더라도 뛰어난 수비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재능을 갖춘 야수들이 뛰고 있는 메이저리그는 최근 몇 년간 경기당 실책수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가장 낮은 0.56개의 경기당 실책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와 올해는 그다음으로 낮은 0.58개의 실책을 기록 중이다.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의 발전도 수비 강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통계를 이용한 과학적 야구 분석 기법을 말한다. 많은 구단들이 수비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중시하면서 타구의 방향을 미리 예측한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변형 패스트볼로 인해 늘어난 땅볼 타구는 이러한 수비 시프트의 그물에 걸리며 많은 아웃 카운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타고투저’ 한국, 젊은 투수 성장 힘들어 

 

반대로 우리나라는 몇 년째 타고투저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역대 최고에 해당하는 2000년의 메이저리그가 팀당 평균 득점이 4.77점이었는데, 우리나라는 2014년 이후 계속해서 평균 득점이 5점을 넘어가고 있다. 특히 타고투저가 시작된 시기에 신생구단이 생겨나면서 8개를 유지하던 구단이 2013년 9개에서 2015년 10개로 늘어났다. 2년 단위로 구단이 생기면서 기존에 있던 8개 구단은 2년 단위로 선수들이 신생팀으로 이동하게 됐다. 또한 신인 선수도 8개 구단에서 10개 구단이 영입하게 되면서 예전에 비해 선수층이 얇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공백을 줄이기 위해 외국인 선수의 숫자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리게 됐지만 1명은 꼭 타자를 영입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투수력에 비해 타력에 더 큰 보강이 이루어졌다. 투수진의 두께가 8개 구단 시절에 비해 얇아졌지만 각 구단은 중심타자를 한 명씩 보강하게 된 것이다. 또한 새롭게 영입된 외국인 타자들은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를 맡게 되면서 수비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타고투저가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그동안 문제가 됐던 반발계수가 높은 공인구 문제와 좁은 스트라이크존에 있다. 메이저리그 공인구에 비해 반발계수가 높다 보니 타구의 비거리도 멀리 나갈 뿐만 아니라 타구의 속도 또한 빨라 수비수들이 수비하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두 리그 간의 선수풀 차이로 볼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는 해외 리그 출신의 우수한 선수들이 계속해서 진출하고 있으며, 선수풀이 뛰어나기 때문에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많아졌다. 물론 선수풀이 좋다는 것은 투수뿐 아니라 타자에서도 뛰어난 재능들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고타저가 이어지는 이유로는 뛰어난 재능의 타자들이 수비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고교 야구에서 혹사한 투수들이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수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각한 타고투저 환경에서는 젊은 투수가 성장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막상 잘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부족한 것이기도 하다. 당장 스트라이크존 크기를 조정한다거나 공인구의 반발계수를 낮추는 등의 대책은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서는 선수풀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