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광화문시네마’를 기억해둘 때
  • 이은선 ‘매거진 M’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6.24 14:05
  • 호수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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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영화 ‘동아리’독립영화계 이어 상업영화 시장서도 두각

 

영화 《굿바이 싱글》

 

나 홀로 사는 이들이 넘쳐나는 때다. 혼자 먹는 밥, 혼자 있는 집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굿바이 싱글》은 시대를 잘 타고난 영화다. 1인 가구가 눈에 띄게 불어나는 요즘 세태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한 기획물이라는 인상이다. 발 연기에 온갖 스캔들로 ‘국민 진상’이라는 꼬리표를 단 여배우 고주연(김혜수)은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조카뻘 남자 연예인과의 연애가 전국적 망신살이 뻗친 가운데 끝이 나자, 고주연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본다. 한 몸처럼 손발 맞춰 일하고 있지만 결국엔 제 가족과 제 앞길이 더 중요할 회사 식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협찬으로 가득 채워진 집안도 허무하다. 고주연은 절대 연을 끊을 수 없는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임신을 결심한다.   

 

김태곤 등 7명 참여, 《족구왕》으로 주목

 

감독은 실제로 오랜 세월 톱스타로 살아온 김혜수의 경력과 스타성을 영리하게 끌어다 쓴다. 어떤 이유로 시상식 레드카펫에 참석하지 못한 고주연이 집에서 드레스 차림으로 입을 샐쭉거리며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사소한 장면 역시 주연배우의 처지와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김혜수는 화려한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스타로 살아간다는 인물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최적의 인물이기에, 현실에서 붕붕 떠 있는 만화 캐릭터 같은 고주연이라는 인물에 남다른 몰입감과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덜컥 임신하게 된 여중생 단지(김현수)와 그런 단지와 손을 잡아야 하는 고주연의 임신 스캔들을 발랄하게 그린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를 연출한 김태곤 감독이다. 독립영화계의 주목받는 신예였던 그는 국내 대형 투자배급사 중 한 곳인 ‘쇼박스’와 손잡고 그의 첫 상업 장편영화 《굿바이 싱글》을 내놨다. 재미있는 건 그가 속한 영화창작집단의 멤버들이 오늘날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그리고 두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충무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 창작자들의 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이름을 기억해둘 때다. 

 

광화문시네마는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 친숙한 이름이다. 김태곤 감독을 비롯해 전고운·우문기 등 5명의 감독과 2명의 프로듀서가 속한 집단이다. 김지훈 프로듀서를 제외하고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동기(13기)다.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비 1000만원을 모아 만든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2013)가 광화문시네마의 첫 작품이다. 제작사 이름은 순전히 개봉과 영화제 출품을 위한 사업자등록증을 내려던 이들이 단순하게 떠올려 지은 것이다. 광화문 근처에 살던 전고운 감독의 집에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장충동 족발, 명동 칼국수 같은 작명이랄까.

 

《1999, 면회》는 전국 관객 3000명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안재홍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탄생을 알렸다. 제작비가 워낙 적었던 탓에 수익도 남겼다. 김태곤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상원(심희섭)과 승준(안재홍)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한 친구 민욱(김창환)의 면회를 위해 철원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반갑게 재회한 세 친구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승준은 민욱의 여자친구가 민욱에게 이별을 고하며 쓴 편지를 가지고 있다. 언제 어떻게 이 슬픈 소식을 전할 것인가. 그사이 상원은 자신의 첫사랑과 꼭 닮은 다방 종업원 미연(김꽃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세 친구가 함께 보내는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그 안에서 대학생과 재수생, 그리고 군인이라는 각자의 환경을 경험하는 세 친구의 미묘한 갈등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스무 살 즈음을 통과하는 그 또래 남자들이 겪는 상처, 첫 실연의 상실감 같은 미묘한 감정선을 그린 이 영화는 감독의 재능을 확인케 했다. 독립영화계에서 광화문시네마를 주목하게 된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광화문시네마는 그들의 두 번째 영화이자 전국 관객 4만5000명을 모은 《족구왕》(2014)으로 그해 독립영화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히트 작품의 시작은 술자리였다. 2012년 초여름쯤 김태곤 감독은 “족구를 잘하는 주인공이 제대 후에 복학해서도 족구를 하는 이야기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던졌고, 족구의 찌질한 이미지를 영화로 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우문기 감독이 그걸 덥석 물었다. 그날 먹은 닭발 값을 계산하는 것으로 연출자는 우 감독으로 자동 낙점됐다. 광화문시네마는 한 명씩 돌아가며 연출을 맡고, 나머지 인원들이 시나리오 작업과 촬영 등등 영화 제작 전반을 돕는 품앗이 방식으로 작업한다. 

 

 

영화 《족구왕》

 

구성원 모두가 공감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들의 영화는 고된 현실에서 분투하는 청춘의 모습을 담아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번째 영화이자 올여름쯤 개봉하는 《범죄의 여왕》(이요서 감독)도 마찬가지다. 고시원에 사는 수험생(김대현)에게 수도 요금 120만원이 나온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엄마(박지영)가 상경하는데, 이곳저곳 들쑤시던 그녀는 우연찮게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이 영화는 《족구왕》의 쿠키 영상(엔드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등장하는 보너스 영상)에서 출발했다. 수도 요금 120만원을 해결해달라며 엄마에게 전화하는 고시생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것이 화제가 되면서 실제 영화 작업으로 이어졌고, 투자 배급사 ‘NEW’의 자회사인 ‘콘텐츠판다’가 메인 투자사로 나섰다. 《범죄의 여왕》은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에 슬쩍 등장하기도 했다. 

 

 

“제작사가 아닌 영화 동아리”

 

광화문시네마의 멤버들은 ‘따로 또 같이’ 전략을 구사한다. 김태곤 감독이 《굿바이 싱글》을 준비할 때 권오광 감독은 CJ E&M의 부름을 받아 사회파 코미디 《돌연변이》(2015)를 만들었다. 권 감독은 2013년 칸국제영화제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받은 《세이프》의 각본을 쓴 인물이기도 하다. 우문기 감독은 요트를 소재로 한 스포츠 성장 드라마인 가칭 《요트왕》을 준비 중이고, 전고운 감독은 광화문시네마의 네 번째 영화 《소공녀》를 준비 중이다. 자신들을 “제작사가 아닌 영화 동아리”라고 소개하는 광화문시네마의 목표는 잘난 척하지 않는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꾸준히 선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가 흥행 감독이 되더라도 언제든 함께 작은 규모의 영화를 자유롭게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창작 집단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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