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40살 선배에게 권하는 책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6.2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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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뭉치 7.4기가 분석해 최초로 만들어진 1300페이지 ‘게임사전’

 

 

이인화, 한혜원 책임집필 이어령 감수 엔씨소프트문화재단 편찬 해냄 출판사 펴냄 1304쪽 6만8000원


 

 

‘캐리하다(게임을 아군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플레이어 또는 플레이어의 행위)', ‘어그로 끈다(게임에서 상대방을 도발하는 행위)’, ‘만렙(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레벨)’, '몹(게임 내에서 플레이어와 대립하거나 경쟁하는 비사용자 캐릭터)…'. 이 단어들을 모르면 당신은 10~30대 위주인 ‘게임세대’와 대화하는 것을 포기해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엔씨소프트문화재단이 편찬하고, 해냄출판사가 펴낸 《게임사전》은 어쩌면 ‘게임세대’와 ‘비게임세대’를 교감하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국내 최대 게임 웹진인 ‘인벤’의 게임별 사용자 커뮤니티, 게임 정보, 게임 뉴스 항목의 텍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완성했다. 최근 5년(2010년 4월~2015년 3월)간 공통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추출해 말뭉치 용량 7.4기가바이트(GB)를 분석했다. ‘캐리’를 모른다면 《게임사전》에서 찾아보면 된다. 《게임사전》 631페이지에서는 ‘캐리’를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캐리: 게임을 아군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플레이어 또는 플레이어의 행위.…(중략)'팀을 캐리한다‘와 같이 동사형으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플레이어의 캐리 행위 강도가 높을 경우 ’하드캐리‘, ’슈퍼캐리‘, ’강제캐리‘ 등으로 불린다. 캐리에 의해 개인의 역량과 관계없이 팀이 승리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켜 ’버스탄다‘로 표현하기도 한다.’

게임과 관련된 책이라 해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13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은 단순히 게임용어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게임용어를 학술적으로 체계화했다. 6월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SK텔레콤관에서 열린 《게임사전》 제작발표회에서 윤송이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이사장은 “체계적 연구와 학술적 가치를 담은 《게임사전》이 아직 없었다”면서 “사전을 편찬해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기획자들은 사전 편찬이 ‘게임용어’을 공인된 언어로 만드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성재 엔씨소프트문화재단 전무는 “1876년 벨이 전화기를 발명했을 때 사람들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대방에게 대답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우리말의 ‘여보세요’에 해당하는 ‘헬로(hello)’가 정착된 것은 에디슨에 의해서다. 이 용어는 대중에게 급속히 퍼져나가며 지금에 이르렀다”면서 게임처럼 새로운 사회현상이 공식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설명했다.

이 책 집필은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의 회장인 이인화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와 같은 과 한혜원 부교수가 맡아 ‘캐리’했다. “아무도 ‘겜돌이(게임하는 사람)’를 공식적 언어를 쓰는 대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학자라면 재벌이든 게임폐인이든 일정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면 같은 가치로 여겨야 한다.” 이 교수가 이날 밝힌 《게임사전》을 집필한 이유다.

《게임사전》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감수를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이 사전을 감수하며 ‘감수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21세기는 게임의 시대이다. 게임은 당당한 시민권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산재해 있던 모든 용어들을 모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게임시대의 계몽기를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한 백과전서파가 한국에서 탄생했다. 《게임사전》을 시작으로 게임에 대한 비판과 토론이 가시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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