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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없고 ‘여배우’는 있다

여배우 기근 현상 벌어진 한국 영화계서 손예진·김혜수 등의 의미 있는 변신

허남웅 영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2(Sat) 17:07:26 | 13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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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김주혁이 출연한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여배우의 변신이 주목받고 있다.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일색인 한국 영화계에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그 수는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다. 

 

 

손예진은 없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손예진을 위한 영화다. 손예진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고군분투’하다가 ‘대오각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기존의 손예진이 맡았던 캐릭터는 ‘절세미인’(《아내가 결혼했다》(2008))으로 등장해, ‘경국지색’(《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으로 뭇 남성들을 홀린 후, 그중 한 명과 ‘천생연분’(《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을 맺는 역할이 거의 전부였다. 손예진의 경우만 그럴까. 미모가 뛰어난 여배우들의 영화에서의 운명이란 게 대부분 그러했다. 그러니까,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은 전에 본 적 없던 이미지로 관객을 홀린다. 

 

손예진이 《비밀은 없다》에서 맡은 역할은 연홍이다. 예비 국회의원 종찬(김주혁)을 남편으로 둔 아내다. 연홍은 남편의 선거 승리를 위해 조용히 내조를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이 실종되면서부터 연홍의 태도는 돌변한다. 선거가 코앞인 남편은 딸의 실종에 슬퍼하는 내색을 비치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돼서다. 연홍은 그런 남편이 가식적으로 느껴진다. 행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될까 종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경찰도 믿기 어렵다. 연홍은 직접 딸을 찾아 나선다.  

 

딸을 잃은 모성이 중요한 테마이니만큼 극중 손예진은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예쁘게 넘겨 묶었던 머리는 딸의 실종 날짜가 늘어날수록 점점 풀어져 마지막에는 산발이 된다. 우아한 서울말을 구사하던 그녀는 경찰의 수사에 진전이 없자 이성을 잃고는 걸쭉한 고향 사투리를 내뱉더니 급기야 쌍욕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천생연분이 웬 말, 딸의 실종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종찬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그 와중에, 집에서는 사랑스러웠던 딸이 학교에서는 전혀 다른 면모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 연홍은 예전의 연홍과는 안녕을 고한다.  

 

극중 연홍은, 아니 연홍을 연기한 손예진은 전복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녀는 더는 예쁨으로 승부하는 배우가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비밀은 없다》는 첫 장면을 그녀의 얼굴에 할애한다. 카메라를 비스듬히 잡아 각이 진 그녀의 얼굴 위로 머리카락이 나부끼면서 예쁨과는 다른 차원의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얼굴 위로 정체 모를 사연이 드러나고, 그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런 게 배우들의 새로운 면모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감독의 연출법이다. 하지만 남배우들의 매력 포인트만 부각하는 영화들에 많은 여배우들이 소외감을 느끼던 터였다. 

 

한국의 여배우들이 매력이 떨어져서? 여성 관객이 흥행을 주도하기에 그들이 혹할 만한 남배우의 매력을 우선적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선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레즈비언 로맨스다. 기존 투자사와 제작사의 편견대로라면 《아가씨》는 전혀 흥행할 만한 영화가 아니다. 김민희·김태리 두 여배우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심지어 동성 베드신까지 감행한다. 결과는? 개봉 한 달 동안 400만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박 감독이 만든 ‘19금 영화’ 중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여배우는 있다

 

《비밀은 없다》와 《아가씨》가 한국 영화계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그동안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여배우 또한 남배우들처럼 마땅한 멍석이 깔리면 새로운 매력을 뽐낼 만한 실력이 충분하다. 바로 그와 같은 제한적인 기회를 살려 롱런한 대표적인 배우가 김혜수다. 김혜수의 대표작은 《차이나타운》(2015)과 《도둑들》(2013), 《타짜》(2006) 등이다. 《차이나타운》에서는 뒷골목 조직의 보스를, 《도둑들》에서는 옛 남자에게 배신당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도둑을, 《타짜》에서는 “나 이대 나온 여자야”란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마담을 연기했다. 이들 영화가 김혜수의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녀에게서 다양한 얼굴과 캐릭터를 뽑아낸 까닭이다. 

 

 

김혜수가 주연을 맡은 영화 《굿바이 싱글》의 한 장면

 

 

 

 

신작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는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이제는 한물간 여배우 주연이다. 인기가 시들해지자 그녀는 평생을 함께할 내 편을 만들겠다며 돌연 임신 발표를 한다. 남자도 없는데 임신 발표라니, 이런 대책 없는 여배우를 봤나. 소속사 식구들은 희대의 임신 스캔들을 덮으려 뒷수습에 나서고, 주연은 우연히 만난 미혼모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한다. 똑 부러지고 자기주장이 강한 김혜수의 평소 모습으로 보건대, 《굿바이 싱글》의 주연은 그녀의 새로운 면모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혀 짧은 소리에, 상황에 맞지 않는 단어 사용으로 주변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주연 캐릭터는 김혜수에게는 도전이다.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도 ‘여성 영화’가 중요

 

도전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한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한국 영화계는 매년 두세 편 정도의 1000만 관객 영화를 생산하며 박스오피스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동시에 다양한 영화의 빈곤으로 우려를 자아낸다. 다양성 부재의 주요한 원인은 남자 영화로의 몰림 현상이다.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로 1000만 관객과 같은 대박을 노리다 보니 아버지가 전면에 나서는 드라마, 남자들의 폭력이 판을 치는 누아르, 두 남자 주인공의 콤비플레이가 브로맨스(브라더와 로맨스를 합친 신조어)로 포장되는 버디 무비 일색이다. 어쩌다가 1000만 영화가 등장한다지만, 이를 제외하면 매번 그 나물에 그 밥인 한국 영화에 관객은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여배우를 소홀히 한 대가다. 《검사외전》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2월 이후, 《곡성》이 등장하기까지 한국 영화의 관객 동원력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은 700만 가까운 관객 동원력을 보여준 《늑대소년》(2012) 조성희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고작 100만 명이 넘는 수준에서 그쳤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케팅 과정에서 주연급으로 분류됐던 고아라가 정작 영화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분량으로 출연해 배신감을 느낀 팬들이 적지 않았다. 결과론적인 가정이지만, 오히려 예상 가능한 홍길동 캐릭터와 다르게 홍길동이 속한 자선재단 활빈당의 황 회장(고아라) 비중을 높였다면 좀 더 다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홍길동이 사고를 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하게 뒷수습을 하는 황 회장 캐릭터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지금 극장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다양성 영화는 《우리들》이다. 《우리들》은 빈익빈 부익부의 갈등이 극에 달한 환경에 내몰린 여자 중학생들이 어긋난 관계를 그들 스스로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바라본다. 

 

천편일률적인 영화로 넘쳐나는 한국 영화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들 중 많은 수가 두세 편의 1000만 영화보다 10여 편의 200만~300만 관객 동원 영화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고는 한다.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예술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성 (배우가 중심인) 영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 다양성이 확보된 사회는 결국 원활한 소통이 전제된다. 우리 사회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사연과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여성 영화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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