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후폭풍? 확실히 득보다는 ‘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7.04 17:30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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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기적으로 현대기아차·두산·SK 등 브렉시트 피해 가능성

 


 

영국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확정된 6월24일, 국내 증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 ‘바겐세일’을 시작했다. 코스피지수는 61.47포인트(3.09%)나 하락한 1925.24로 장을 마쳤다.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으로 50조원 가까운 돈이 증발한 것이다. 

 

일부 증권사는 코스피가 1700선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영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금융권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외국인이 6월24일부터 3거래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팔아치운 금액만 7540억원대에 이른다. 외국인의 ‘엑소더스(Exodus)’가 계속될 경우 국내 증시는 물론이고, 수출 산업에도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LG전자가 6월11~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상업용 세탁기 전시회 ‘2016 국제 텍스케어’에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시간 지나면서 브렉시트 이슈 진정세 

 

다행히 브렉시트 이슈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되는 분위기다. 코스피지수는 브렉시트 이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됐다. 외국인 역시 ‘사자세’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6월30일 하루에만 4040억원어치 주식을 쓸어 담았다. 주식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영국에 수출하는 비중은 1.4%(73억9000만 달러)에 불과하다”며 “브렉시트 이슈로 금융시장이 순간 흔들리기는 했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후폭풍’을 우려했던 재계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기업 대관(對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브렉시트가 터지면서 향후 재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분석하느라 분주했다”며 “유럽 시장 매출이 전체의 10% 미만이며, 영국 단일시장 비중은 더욱 낮기 때문에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LG전자는 유럽지역 대표를 영국에서 독일로 옮긴 상태다. 2015년 말 자동차부품 사업을 강화하면서 영국법인에 있던 유럽지역 대표를 독일로 옮기고, 영국법인장도 부사장급에서 상무급으로 변경했다. 당분간 조직 변화는 없을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유럽지역 총괄 법인이 영국 첼시에 있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영국보다 EU 회원국으로 총괄법인을 이동하는 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조직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여전히 브렉시트의 ‘여진’이 우려되고 있다. 한 해 500억 달러 정도를 EU에 수출하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주요 그룹도 장기적으로 유럽 시장에 대한 가격 경쟁력 저하나 수출 감소 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대·기아차그룹이 대표적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를 대표적인 ‘브렉시트 수혜주’로 꼽고 있다. 브렉시트로 엔화 가치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초 120엔대였던 달러당 엔화 환율은 6월24일 99엔까지 떨어졌다. 그동안 엔화 가치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왔던 ‘아베노믹스’가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현대·기아차는 수출 시장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특히 도요타와 닛산, 혼다 등 일본 완성차 회사는 대부분 영국에 생산 기지를 갖고 있다. 그동안에는 무관세 혜택을 받았지만, EU 탈퇴로 유럽 수출 무관세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영국에 생산시설이 전무하다. 공장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몰려 있다. 유럽 시장에서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브렉시트가 확정된 다음 날 현대차와 기아차의 주가가 1% 안팎 상승한 것도 이 때문이다.




 

EU, 자동차산업 규제 강화 시 현대차 타격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황을 낙관할 수만도 없다. 브렉시트로 엔화 가치가 오른 데 반해, 유로화 가치는 오히려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각에서는 자동차 업종이 환율 하락에 따른 모멘텀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유로화 가치가 지금과 같이 계속 하락할 경우, 일본차가 아닌 독일차 대비 현대차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U의 경기침체와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유럽 내 판매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기아차는 올해 1~5월 유럽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가량 늘어나는 등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어 우려가 더하다. EU 차원에서 자동차산업 관련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영국의 탈퇴로 잔류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부담이 늘어나면서 관련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며 “영국이 EU를 탈퇴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재개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영국은 그동안 EU의 금융허브 역할을 해왔다. 그런 만큼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적지 않다. 증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증시 전체 외국인 자본의 23%(500억 달러)가 영국계 자금”이라며 “브렉시트 후폭풍이 커질 경우 외국계 자금의 대규모 이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금융권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헬스케어, 두산밥캣 등의 상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두산그룹은 재무구조개선 작업의 일환으로 2014년부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해왔다. 두산동아와 KFC, 몽따베르, 렉스콘 등 알짜 계열사나 사업부문을 잇달아 매각했다. 올해 4월에는 방위산업체 두산DST의 지분 51%를 한화테크윈에 매각했다. 이런 방식으로 확보한 자금은 3조2500억원에 이른다. 

 

올해 말에는 두산밥캣의 상장이 예정돼 있다. 두산밥캣의 상장은 두산그룹 재무구조개선 작업의 핵심 프로젝트다. 두산은 두산밥캣 상장을 통해 재무구조개선을 졸업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금융 변동성이 커질 경우 상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두산은 유럽 시장에서 영국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어 브렉시트의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면서도 “다만, 두산밥캣의 상장이 흥행하지 못할 경우 지난 2년간 진행해온 구조조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SK그룹 역시 유가 하락과 환율 증대에 따른 변동성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원유를 수입해 제품화하는 에너지·화학 계열사를 중심으로 유가 하락과 환율 증대에 따른 변동성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며 “현재 실물 측면에서 글로벌 시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여야 정치권의 수장들을 잇달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주요 그룹들은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와 브렉시트, 기업구조조정 등 안팎의 악재를 해결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하지만 경제활성화 법안은 계속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이슈를 통해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고자 정부나 국회를 압박하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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