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막장드라마 구도’에 빠진 날
  •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5 10:19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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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수준 수렴에 머물러 있는 대중 의식 드러낸 ‘홍상수·김민희 스캔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언론시사회에서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상수·김민희 스캔들’이 뜨거운 화제다. 홍상수는 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예술영화 감독으로 세계 영화계에 확고한 위상을 가진 인물이다. 요사이도 미국과 프랑스에서 잇따라 홍상수 감독의 회고전이 열리는가 하면, 최근작인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대해서도 LA타임스가 ‘거의 완벽한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을 내놓는 등 찬사가 쏟아진다. 이 정도의 인물이, 칸영화제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의 여주인공과 불륜행각을 벌였다고 하니 외신에서까지 스캔들 기사를 낼 정도로 관심이 쏟아졌다.

 

 

도덕주의와 가족주의가 여전히 절대적 가치

 

그렇게 많은 감독·여배우 커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홍상수·김민희 커플에 대중이 분노한 건 바로 불륜 때문이다. 홍상수 감독에게 이미 가정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 대중은 연예인의 불륜에 대단히 민감하다. 이병헌 협박 사건 당시 이병헌은 협박을 당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질타를 한 몸에 받아야 했다. 새 신부를 집에 두고도 어린 여성들과 술자리를 하며 부적절한 농담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같았으면 망신만 당한 채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한국에선 치명적인 대죄였다.

 

기본적으로 주부들이 분노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심지어 남자들까지 이런 분노에 가세한다. 남자들은 평소 지인들이 바람피우는 것엔 매우 관대하지만, 연예인의 불륜 스캔들엔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 사실 당사자는 부인이고, 부인이 괜찮다면 남들이 추궁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한국 대중은 부인 의사와 상관없이 심판을 내린다. 이병헌 사건 때 그의 부인 이민정은 괜찮다는데도 대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이번엔 홍상수 감독의 부인이 과도한 언론과 대중의 비난에 힘들어하는데도 대중은 상관하지 않았다. 

 

연예계 인사들에게 도덕적 모범을 보일 것을 대중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대중은 연예계 인사들이 예술적 끼를 보여줄 것도 요구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사실 양립하기 힘든 요구다. 끼가 넘치는 사람이 모범적이기까지 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보통 서구에선 연예계 인사들에게 끼만을 요구한다. 이편이 자연스럽다. 외국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스캔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회고전이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상영 일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면에 우리는 지금 홍 감독과 김민희의 국내 활동이 불투명해진 상황이고, 홍 감독의 차기작은 개봉 연기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병헌의 《내부자들》도 상당 기간 개봉을 못했었다. 이런 대중 정서의 혹독함 때문에 한국 연예인의 길은 외국보다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번 홍 감독 스캔들은 가족주의와 도덕주의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절대적 가치라는 걸 보여줬다.

 

 

‘흑백논리’의 대중심리 여실히 드러나

 

이번 사건은 또, 한국 대중이 불륜 스토리를 소비하는 방식도 보여줬다. 몇몇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특종 기사를 내면서 이 사건이 알려졌는데, 그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던 가정적인 남편 홍상수를 가증스러운 김민희가 꾀어냈고, 본처는 남편만을 기다린다’는 스토리였다. 이것은 삼류 막장드라마의 구조와 같았다. 불쌍한 조강지처와 무(無)개념 남편, 그리고 ‘불여시’ 악녀의 삼각 구도인 것이다. 한국인이 너무나 사랑해서, 욕하면서 보는 스토리다. 매체와 대중은 이번 스캔들도 바로 그 구도 속에 집어넣어 소비했다. 한 방송프로그램에선 김민희를 ‘팜므파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팜므파탈이란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요부(妖婦)를 일컫는 말이다. 김민희가 정말 홍상수 감독을 유혹하고 드라마처럼 본처를 모욕했는지, 홍 감독이 정말 가정적인 남편이었는지, 그 가정이 정말로 김민희 출현 이전엔 평화로운 가정이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스캔들은 터졌고 불륜녀가 악녀인 쪽이 자극적이고, 재밌고, 욕하면서 즐기기에 좋았다. 매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런 스토리를 기사 바탕에 깔았고 대중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것을 즐겼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또 다른 대중심리는 흑백논리다. 김민희 악녀론에 근거가 없다고 하면 대중은 ‘그럼 불륜이 아니란 말이냐?’라고 되물었다. 불륜이라고 다 악녀인 것은 아니다. 세상엔 다양한 층위(層位)의 진실이 있는 법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다양한 층위의 복잡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0 아니면 100이다. 무죄 아니면 유죄, 선 아니면 악인 것이다. 유죄로 판단되면 무조건 돌부터 던지고, 복잡한 이야기엔 귀를 닫는다. 불륜녀는 근거 없는 악평을 뒤집어써도 싸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가정과 김민희와의 관계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불륜은 사실이라고 해도 악녀인지 여부는 물음표의 영역이다. 모르는 건 모호함 속에 남겨둬야 한다. 하지만 모호한 건 답답하다. 그런 답답함 없이 무엇이든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찌라시다. 이번 사건은 한국 대중의 의식이 찌라시 수준에 수렴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무조건 확신부터 내리고 단죄부터 한다.

 

모호한 걸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시민사회가 성숙할 수 없다. 찌라시, 음모론, 근거 없는 선동 비방 등에 현혹당하는 유권자들로 민주주의 작동에 문제가 생기고, 희생양도 쉽게 만들어진다. 홍상수·김민희 스캔들이 소비되는 양태는 우리 사회가 이미 그런 경로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경고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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