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섣불리 나서지 말아야 할 위작논란
  • 정준모 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05 10:31
  • 호수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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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계에서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위작 논란을 대하는 법

6월27일 이우환 화백이 서울 중랑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로 출두하면서 경찰이 자신의 작품 13점에 대해 위작 판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경찰과 언론에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세상이 시끄럽다. 살다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미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와 가짜 논쟁은 시끄러운 세상을 더욱더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놓고 미술계에서는 진작(眞作)이라 했지만 작가는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최근에는 또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이우환 화백의 작품에 대해서 경찰 수사에서는 위작 결론이 났지만, 작가는 진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까지도 왜 이런 진위 논란에 ‘열광’하는 것일까.

 

 

작가도 자신의 작품 진위 번복하는 경우 허다

 

위작 논란에 열광하는 세간의 흐름은 일부 황색저널리즘 행태를 보인 언론의 탓도 크지만, 미술품이나 문화재를 문화적 가치로 보지 않고 경제적 재화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는 우리의 세태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그림을 스스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닌, 수동적 암기 위주의 시험용으로 대하는 교육 탓도 크다. 그래서 미술품의 가치는 가격에 비례하고, 비싼 그림은 좋은 그림이라는 등식으로 그림을 대한다. 하지만 잘 그린다는 것은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 다르다. 마치 단 음료수를 두고 각자의 입맛에 따라 달다고 느끼는 정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달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지경에 더더욱 위작 논란을 부추기는 것은 소위 해당 작가들의 지나친 개입과 함께 신중해야 할 전문가, 또는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책임질 수도, 근거도 없는 말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해당 작품을 보지도 않은 채 사진이나 해당 기사만 보고 진위 여부를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배짱을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의견이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간다. 

 

우선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진위 문제에 개입을 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또 그게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개입해 진(眞)이나 위(僞)라고 확인을 하게 되면, 전문가들이 학술적인 연구나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기법·재료·색채·서명·작품출처·소장이력 등등의 연구를 축적하게 될 기회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가 섣불리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할 경우, 만에 하나 실수로 자신의 작품 진위를 틀리게 말한 것으로 밝혀지면 위신도 깎일뿐더러 작품을 두고 진정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 뻔하다. 

 

작가들의 경우 오랜 기간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기복제를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 보면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것, 자기 세계를 확립했다는 것은 흔들림 없이 어떤 스타일을 일정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작가들도 자신의 작품을 잘못 보고 진위를 번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작가를 보호하기 위해 개입을 말리는 것이다. 위작 논란이 발생하면, 때에 따라 작가의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도 작가가 직접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담당하는 이가 이런저런 의견이 있었고 이를 종합해서 판단한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체면과 명성 때문에 자신이 진위를 잘못 말했을 경우, 이를 번복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견은 감정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여러 의견 중 하나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작품의 제작과정에서는 절대적인 권리를 갖지만, 작품이 일단 작업실을 떠나고 나면 작가는 작품 감정을 할 의무도 없지만 권리도 없다. 마치 아픈 환자가 병원에 가서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성실하게 자신의 아픈 곳과 정도를 설명하면 의사가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다. 

 

네덜란드 작가 카렐 아펠(Karel Appel·1921~2006)은 1994년 경매에 나온 자신의 작품의 진위가 문제가 되자, 본인의 작품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위작범 기어르트 얀 얀센(Geert Jan Jansen·1943~ )이 체포되면서 스타일을 구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예는 빈번하지만, 작가들의 명예를 위해 공개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 알려진 고(故) 윤중식 화백의 경우는 감정가들이 진작으로 판단한 작품을 작가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면서 작품 뒷면에 ‘위작’이라고 써놓아 일이 커진 경우다. 이로 인해 재판매가 어려워진 소장가가 재산상의 손해를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했는데, 이 작품이 전시를 위해 1976년 도록에 수록돼 있는 진작으로 밝혀지면서 법원이 진품으로 확정 판결해 일단락 지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도 몰라본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고, 실제 재판까지 간 일 때문에 일부 미술계에 알려졌다.  

 

사실 미술시장에서 인기 있는 작가들의 경우, 위작 시비는 일상사이기도 하다. 데미안 허스트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로버트 인디아나, 야스퍼 존스 등의 경우, 위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은 관망할 뿐 진위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모두 위작범이 검거되고 소송으로 진행돼 상응하는 벌을 받았다. 또 베르메르나 렘브란트, 피카소, 샤갈, 자코메티 등 유명 작가들의 경우도 전문가 집단에서 감정을 거치면서 위작을 만든 일이 드러나 범인들은 상응하는 처벌을 받으면서 일단락됐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천경자 《미인도》

 

외국선 작가들 관망할 뿐, 직접 언급 안 해

 

감정이란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학술적인 문제이다. 사실 그동안 작가들이 개입된 진위 논란 사건들의 공통점은 작가들이 문제의 작품을 실제로 보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먼저 의견을 개진하면서 일이 커졌다. 이럴 때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이 ‘과학적 감정’이다. 사실 미술품 감정에서 과학적 감정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과학적인 검사 결과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과학적인 분석 데이터는 정밀한 결과를 도출하고 안목감정을 보완하기 위한 방편이다. 

 

 사실 제아무리 재주가 좋은 위작범도 진작을 안 보고는 어떤 것도 그릴 수 없다. 하지만 위작은 진작의 외형만 모사하기 때문에 진작보다 만들기가 쉽다. 따라서 대상 작품의 이면에 내재된 예술적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미술품·문화재 감정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설령 작가라도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100% ‘진짜다’ ‘가짜다’를 단언할 수는 없다. 감정도 신이 아닌 인간이 하는 탓이다. 그래서 때로는 의사들이 오진을 하듯, 감정 역시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미술품 진위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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