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범죄, 개인이 방어할 수 있는 문제 아니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7.06 13:31
  • 호수 139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인터뷰“범죄 명칭보다 죄명·동기 우선시해야 구체적 대책 나와”

 

 

우발적인 사건들로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분노가 표출되는 범죄 양상을 보면서 누군가는 ‘증오범죄’라고 하고, 누군가는 ‘혐오범죄’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를 ‘분노범죄’ 등으로 규정짓는 것 자체가 지양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범죄의 명칭을 애매하게 붙이는 것이 범죄를 과대 포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의 명칭보다는 죄명과 동기를 우선시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가해자·피해자 간 특정 원한관계가 없는 범죄가 많이 일어났다. ‘분노’가 그 이유라고 보나.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범죄가 모두 ‘분노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피의자들이 피해자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범죄가 시작된 경우도 있고, 피해자와 전혀 상호작용 없이 자신의 정신질환으로 인해 상황을 착각하고 벌인 범죄까지 다양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사회화되지 못한 구성원들이 분노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가.

 

분노를 참는 이유는 가족이나 동료를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심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사회화의 과정은 친사회적 규범을 습득하게 되는 데 매우 주요한 기능을 한다. 가정이나 교육의 부재가 폭력범죄의 발생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족의 결핍이 모두 성인기 범죄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1명이 분노조절장애라는 통계가 있다. 이들 중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얼마나 된다고 보나.

 

단순히 분노만이 동기가 되는 범죄는 극소수일 것이다. 다만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이 대부분 폭력범죄의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보통 분노범죄는 그야말로 아주 극단적인 화풀이성 폭력범죄를 말한다. 운전하고 가다가 끼어들거나 양보를 안 해준다는 이유로 보복성 폭력을 휘두르는 등의 범죄다. 현재는 분노범죄의 개념이 굉장히 혼재돼 있다.

 

분노범죄에 경제적 어려움이 반영된다고 보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가해자에게) 일종의 스트레스 유발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전과나 정신질환, 교육 정도 등의 나머지 요인도 좌절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좌절 경험과 분노 사이에 연관성이 생길 수 있다.

 

분노조절장애가 정신병이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분노조절장애는 정신분열병과 어떻게 다른가. 

 

현저한 차이가 있다. 정신분열병은 현실 판단능력(합리적 의사결정능력)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신병자가 저지르는 범죄율은 0.3% 미만으로 현저히 적다. 정신 질환이 심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를 능력이 기본적으로 되지 않는다. 정신병 쪽으로 범죄의 본질을 매도하게 되면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없다. 

 

분노범죄는 각 ‘개인의 문제’와 ‘인간관계의 문제’ 중 어느 쪽에 비중을 둬야 하는가.

 

인간관계와 독립적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분노범죄에서도 범행 대상으로 여성이 선택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성이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방어력이 약하기 때문이지만, 단순히 여성의 취약성만이 문제는 아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폭력행위들이 있다. 무조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분노범죄나 혐오범죄로 볼 수 없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혐오범죄라고 주장하는 범죄를 정신과 전문의는 분노범죄라 분석하기도 한다. 강력범죄 중 여성의 수가 많은 범죄는 성폭력인데, 그것이 어떻게 여성을 향한 분노나 혐오로 볼 수 있겠는가. 분노의 유발 대상자가 여자인 양 간주하는 것 자체가 오인의 소지가 있다. 

 

비면식 관계에서 분노범죄가 일어나는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면식관계인) 가정폭력이야말로 가장 큰 분노범죄일 수도 있다. 

 

범죄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음주’라고 보는가.

 

술로 인해 발생하는 범죄가 많지만, 음주와 범죄가 꼭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분노라는 감정이 언제, 무엇을 계기로 발생하는지 규명이 어려울 것 같다.

 

분노는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문제는 인간이 좌절감을 느낄 때 발생하는 분노를 조절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이다. 분노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조절력’이 문제가 되는데, 사실상 조절력의 습득은 어릴 때부터 교육과 훈련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공중화장실 안전대책 요구, 호신용품 구매 등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의 대응 방식이 분노범죄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범죄들은 개인이 방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폭력범죄는 국가에서 정책으로 예방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분노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중 6개월 이내에 재범을 하는 상습적인 폭력범죄자에 대한 출소 후 관리제도도 꼭 이뤄져야 한다.

분노범죄 등 범죄를  분류하는 것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경찰청 소속 범죄분석관들이 보고서를 통해 ‘묻지마 범죄’와 ‘분노 충동형 범죄’를 분류했다. 

 

분노범죄 등 ‘○○범죄’라는 용어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범죄에 대한 혼돈을 준다. 폭력성의 기저에는 일반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깔려 있다. 분노범죄, 혐오범죄 등 범죄의 명칭에 주목할 경우 범죄의 동기나 유형이 희석되어 사실상 대안의 모색이 불가능하게 된다. 경찰청에서 사용하는 (범죄와 관련된) 명칭은 아직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이 범죄들을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서 범죄를 저지르겠나. 화가 나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분노다.

 

어떤 방식으로 범죄가 분류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범죄는 ‘죄명’이 중요하다. 범행 동기라는 것이 있지 않나. 죄명과 동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범죄와 연관된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접근해야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성범죄의 경우는 전자발찌를 집행하는 방식을 연구해야 하고, 가정폭력은 경찰의 체포우선주의를 통해 가해자와 분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범죄마다 다 대안이 다른데 모두 ‘분노’라는 한 가지로 묶을 수는 없다. ‘분노가 생기는 것’을 원인으로 본다면 “대책이 없다”는 접근밖에 할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