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우리 시대 망언 종결자들
  • 권상집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4 16: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곤한 철학에서 비롯된 요란한 빈수레

교육부 공무원이 국내 주요 포털 검색어 1위에 오른 건 포털이라는 인터넷 매체가 생긴 이래 아마 처음일 것이다. 장관이나 차관․국회의원․재벌총수․연예인 등이 말실수로 한방에 훅 가는 경우를 본 적은 많아도 ‘자칭 1%’에 끼고 싶었던 2급 공무원이 이런 망언 대열에 등극해서 한방에 훅 갈 줄은 아마 나향욱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민감한 정치․경제적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인 스캔들이 터진다는 음모론은 들었지만, 적어도 교육부 공무원이 모든 사건을 뒤덮을 정도의 이슈를 터뜨릴 줄은 미처 몰랐다.  

 


2016년 7월에는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정치적으로는 개헌 논의가 불붙었고, 외교적으로는 사드 배치로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난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뿐인가. 경제적으로는 브렉시트로 인해 향후 경제성장 전망이 언론의 경제 지면을 뒤덮었다. 이와 동시에 국가 브랜드인 ‘Creative Korea’에 대해 표절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불붙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에 대한 기억을 나향욱이라는 망언 종결자가 모두 지워버렸다. 그 어떤 연예인도 이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덮을 수 있는 파괴력은 없었다. 나향욱이라는 일개 무명 공무원이 그 일을 해내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향욱이 어떤 망언을 했고 현재 어떤 지경에 처했는지는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했기에 다시 설명하지 않겠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향욱의 망언이든 실언이든 간에 소위 가진 자, 배운 자들의 인성이 왜 저렇게 바닥까지 내려갈까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싶다. 나향욱 이전에도 권력을 가진 자, 권위를 가진 자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힘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가슴을 짓밟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망언을 각 분야별로 몇 가지만 떠올려보자. 


1997년 한보그룹 비자금 청문회에서 한보그룹의 전문경영인이 비자금 액수를 공개하자 정태수 당시 한보 회장은 ‘머슴이 뭘 안다꼬’라는 한 마디로 모든 직장인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머슴이 곳간에 뭐가 들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주인인 내가 잘 안다’라는 말을 이어가며 대한민국 모든 전문경영인을 졸지에 머슴으로 만들었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국내 재벌 오너의 횡포에 대해 비판을 쏟아낸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이런 막말을 쏟아낸 정태수 회장은 2007년 도피한 후 지금까지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채 법망을 조롱하고 있다.


검찰로 눈을 돌려보자. 2014년 제주도의 고요한 밤거리에서 음란행위라는 초유의 일탈로 제주지검장에서 쫓겨난 김수창. 그는 4년 전인 2012년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논쟁이 불붙었을 때 ‘수사에서는 검사가 경찰보다 낫다. 수술할 때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지 간호사에게 맡기는 경우는 없다’라는 한 마디로 전국 30만 간호사의 공분을 일으키며 대한간호협회의 공개 사과 요구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비하 발언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대응한 김수창은 제주지검장에서 박탈된 후에도 여전히 변호사로 고객의 변론을 맡고 있다. 


정치 분야는 검찰 못지않게 망언에 관한 역대급 선수들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이 중 6년 전 여기자 포럼에서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장은 ‘나는 여성들이 직업을 갖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길 바란다. 여성의 임무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맞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해서 최소한 애 둘은 낳아 달라’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긴다.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가장 최측근으로 꼽힌 최시중의 망언과 2011년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했던 MB의 망언이 교묘히 겹쳐지는 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걸까? 옛날부터 고관대작을 성공의 유일한 지표로 삼았던 조선시대 반상(班常) 제도의 낡은 관습이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양반은 천민이나 상놈과 무릇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던 조선시대의 천박한 귀족 마인드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을 조롱하고 있다. 2016년 오늘날에도 고위공직자와 일부 전문직 종사자, 그리고 타락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을 상위 1%로 여기면서 자신들만의 이너서클을 더욱 강화하고 반상 제도의 낡은 관습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대통령 명의의 검사 임명장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수여받을 때 검사들은 절대로 장관에게 허리를 굽히지 말고 목례만 하라는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신임 검사 교육 때 ‘포장마차나 시장통에서 먹지 말고 밖에 나가면 잘 모르는 누군가가 다가와서 인사하면 무시하라’는 구체적인 지침까지 전달 받는다. 물론 검사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권력기관이기에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지침이라고는 하지만 무의식중에 저런 낡은 지침을 통해 검사들은 목을 빳빳이 세우며 스스로 거룩한 상류계급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학계는 다른가. 필자 역시 대학교수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어려운 말을 남발하며 지적 허세를 부리는 가짜 지식인들이 정말 많다. 그들은 언제나 현학적인 용어를 즐겨 쓰며,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 두꺼운 서적 속 오래된 관념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학문적 명예욕을 자랑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가장 많은 팔로워를 거느렸다는 한 평론가는 자신의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내 글과 논리를 이해하기에는 너의 지식이나 머리가 너무 얕다’라는 천박한 허세를 부리며 자화자찬식 모드에 항상 빠져 있다. 전형적인 가짜 엘리트주의자이다. 


나향욱이 강조했던 상위 1%는 언제나 ‘가재는 게 편’이라는 입장으로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영역과 명예를 보장 받기 위해 몸부림쳐 왔다. 그 과정에서 타인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다. 앞서 말한 정태수 전 한보 회장,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여전히 법적․사회적 감시를 농락하며 호의호식하고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전두환․노태우가 일으켰던 군사반란 사건에 대해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는 ‘성공한 쿠데타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역대급 망언을 남기며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검찰의 망언 이후 모든 국민이 결과지향적 사고에 빠졌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러나 그 이후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결과를 만들어’라는 말이 우리 시대에 일상이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必有隣)’. 망언을 습관적으로 내뱉는 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조언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을 사실상 적으로 돌려 나락으로 떨어진 나향욱. 지금 그보다 더 외롭고 쓸쓸한 이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망언 종결자가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자처했던 MB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며 검찰의 강도 높은 재벌(롯데) 수사를 비판했다. 역시 MB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