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유통하는 포탈은 왜 선플운동에 미지근할까요?”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7.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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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착한 댓글 전도사로 변신한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

 지금부터 20여년 전, 외국어 교육을 담당하던 학원가가 생존을 걱정해야하던 시기가 있었다. 세계화의 바람 속에 교육시장도 개방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학원뿐만 아니라 출판도 개방을 걱정해야 했다. 국내 외국어학원들이 사용하는 교재 대부분은 외국교재였다. 그래서 개방은 곧 국내 시장 잠식을 뜻했다. 그나마 외국어학원에서 사용하는 국내 교재 중 대표격으로 남아있던 게 ‘민병철 생활영어’였다.

 

‘민병철’이란 이름 세 글자는 국내 영어 교육의 대표격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이제 교수란 직함이 따라붙는다. 지금까지 건국대 국제학부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다. 또 다른 직함도 있다. ㈔선플운동본부 이사장이다. 선플은 말 그대로 ‘악플’의 반대말이다. 착한, 그리고 좋은 댓글을 뜻한다. 근거 없는 악플로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선플을 달아 인터넷 문화를 좋은 쪽으로 가꾸어 나가자는 게 선플 운동의 목적이다. 온라인 시대의 정신문화 운동을 민 이사장은 꾸려오고 있다.

  

그의 개인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에서 만났다. 라디오나 TV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익숙한 목소리.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이 없었다. 또랑또랑 귀에 박히는 말투로 민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수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다 담아내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였다.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


최근 중국에 갔다온 걸로 알고 있는데 잘 갔다 왔나.

  

맥주로 유명한 청도(靑島)에 다녀왔다. 중국에 SNS로 유명한 웨이보가 있지 않나. 제 팔로워가 약 25만 명이다. 내가 두 번에 걸쳐서 웨이보에서 선플에 관해 실시간 포럼을 했다. 선플이 무언지 설명했다. 그래서 생긴 팔로워 25만 명이다. 웨이보에서 선플만 소개하기 어려우니 영어도 소개해 달라고 해서 무료 어플을 제공하고 있다. 하하. 


선플 운동이란 거, 중국 정부가 좋아할 것 같은 아이템이다.

 

중국에서는 엄청난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사용한다. 그쪽에서도 사용자들이 인터넷 상에 나쁜 글을 올리는 게 문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의 한 19세 청년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자신의 자살과정을 인터넷에 생중계 하는 사건이 있었다.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난리가 난 거다. 그래서 웨이보에 “죽고 싶다”고 올리니까 “빨리 죽어라”라는 의미로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 그 친구는 진짜 자살했다. 중국은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이 인터넷을 관리한다. 2014년 판공실 주임을 우리나라 방통위원장과 함께 만나러 갈 때 ‘선플 운동’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니 같이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 후 판공실의 도움으로 중국에서의 선플운동이 소개되고 있다. 

 

 

선플 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때가 2007년이라고 들었다.

 

2007년 1월이었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한 여가수가 악플 때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 때 중앙대 부교수였는데. 3월에 개강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때였다. 그래서 영어 강의는 당연히 기본이고 단순하게 과제를 하나 내줬다. 그 때 온라인과 오프라인 합쳐서 570명을 가르쳤는데 1명의 학생이 10명의 연예인의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악플러에게는 악플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비판하고, 연예인에게는 좋은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라고 과제를 줬다. 물론 하라고 하면 했겠나. 교수 과제니까 당연히, 하하. 

 

학생 중에는 악플을 달아본 학생도 있었을 거고 댓글 자체를 아예 달아본 적 없는 학생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악플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뺏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그 자체가 커다란 교육이었고 큰 울림이었다.


어지간한 동력이 있지 않고서는 이런 선플운동을 10년이나 하긴 쉽지 않을 거 같다.

 

아까도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 분이 참 좋은 일이라고 그러더라. 영어교육으로 받은 사랑에 답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받은 대중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 가지 돌려드릴 방법이 있겠지만 이걸로 갚겠다는 모티베이션이 있다.



교육활동으로 받은 것들에 대한 부채의식인가.

 

부채의식은 너무 부담되고 하하. 사랑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하면 좋겠다.
 

 

선플달기운동본부 홈페이지

선플달기운동본부 홈페이지



주 타깃층이 학생들이다. 

  

아이를 통해서 투영되는 모습이 더 순수하지 않겠나 싶었다. 내 자식이 좋은 댓글을 단다는 게 얼마나 좋겠나. 언어학자로서 볼 때도 그렇다. 우리나라 말에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는데 언어의 형성과정도 그렇다. 12살 정도 되면 언어습득의 환갑 나이다. 언어의 습득은 인성의 습득과 같은 말이다. 그리고 그 기한이 3~12살 사이다. 이때 해야 효과가 나는 거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런 선플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걸로 투영된 모습이 어른들에게 다가가는 게 효과가 훨씬 크다고 본다. 


언어 습득이라면 나이가 중요할 수 있지만 악플은 후천적 습성 아닐까.

 

점수 위주의 사회, 잘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감, 자존감의 결여. 이런 것들이 요즘에는 어른들에게도 있다. 교육적인 차원에서는 어린애부터 해야 되는게 맞지만, 어른들도 사회가 보듬지 못하는 좌절감과 낙오감 등을 느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뭘 모르는 게 무엇이냐면 자기가 던지는 한 마디의 말이 비수로 꽂혀서 장난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영혼을 파괴하고 죽게도 할 수 있는, 그런 말이란 걸 인지하지 못한다. 농담으로 “나가 죽어~”라고 하지만 이걸 받는 사람에게 그 말은 곧 죽으라는 말이다. 이런 악플은 한 나라를 떠나 중국 같은 다른 나라까지 전파되기도 한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악플은 좁게는 주위 사람을 괴롭히고 넓게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 권해야 할 운동인 거 같다.

 

국회의원들에게 선플운동을 설명하고 서명해달라고 하면 대부분 서명을 한다. 그러면서 바로 알아듣는다. “말을 골라 하라는 말씀이시죠?”라고. 그 자체가 우리는 좋다. 언어를 절제해 사용해야겠다는 효과, 그게 선플운동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지난 번에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말을 쓰는 국회의원을 학생들이 선정해 상을 주게 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그 때 수상하러 나왔는데 그 때 학생이 상을 줬다. 학생이 교육부장관에게 상을 주는 건 아마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극단적인 악플러의 경우 기소 단계까지 간다. 최근에 그렇게 기소유예 당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던데.

 

얼마 전에 세상에 처음 있는 강의를 했는데, 그게 바로 그 악플러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다. 이건 나밖에 못하는 강의일 것 같다. 이 분야는 우리가 독보적으로 오랫동안 준비해 온 강의이기 때문이다. 악플을 단 친구들에게 뭘 썼냐고 물어보고 그 악플을 쓰게 한 다음에 읽으라고 했다. 그러니 크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더라. 정말 잘못했다면서. 

 

얼마 전에는 선플운동본부로 전화가 왔다.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악플을 달았는데 상대방이 자기를 고발해야겠다고 했단다.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보고 “돼지 같다”는 표현을 했나보더라. 겁을 덜컥 먹고 상대방에게 용서해달라고 메일 보내고 했는데 대꾸가 없었다고 한다. 고소하겠다는 상대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좋은 글도 달아보고 선플운동도 참여하고 그랬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다더라. 우리에게 선플운동 활동에 관해 증명할 수 있는 걸 달라, 우리가 중재를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 10년쯤 하다 보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연예인들이 악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더니 이제는 일반인들의 경우도 고발로 대응하는 경우가 늘었다.

 

나는 악플을 단속하는 게 교통 단속이랑 똑같다고 말한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안전벨트는 생명줄이라고 말하는 캠페인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범칙금을 매기는 것도 필요하다.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게 아니다. 전혀 관계없는 비방에 관한 얘기다. 유통된 악플을 삭제한다고 해도 이미 자기 존재는 다 망가진 뒤다. 


포털에서 선플운동에 참여해야 될 것 같다.

 

우리가 요청하는 것도 그렇다. 이런 댓글들로 수익을 얻는 포털이 이런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포털 측에 지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반응이 너무 약하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 기업들이 선플운동에 동참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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