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기후변화 재앙에서도 밥상 지켜줄 발효식품
  •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2 11:33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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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 스트레스로 음식 재료 자체 독성 수준 높아져 지구환경 위기일수록 전통의 지혜 살려야

요즘 뭘 먹어도 예전 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피로감이 생겨 입맛이 떨어져서일까. 하지만 이런 불평은 꽤 오래전부터 들려왔으며, 계절과는 관계없이 항상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문제를 두고 원인을 찾으려 할 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기후변화’가 우리의 입맛과 식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자.

 

음식물 재료 자체의 자연 독성 증가시켜

 

기후변화. 지구상 모든 지역의 기후 패턴이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면서 생태계와 우리의 삶 전체에 혼란을 주는 현상을 말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알고 있었고, 한 세대쯤 전에는 아예 사람들의 인식 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 개념은 이제 상식을 갖춘 지구인이라면 누구라도 익숙하게 알 만한 단어가 되었다. 지구온난화와 동반되어 전개되는 현상인 기후변화는 지구환경 문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새로운 개념이 우리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데는 물론 매스컴의 영향이 크다. 산불, 메뚜기 떼, 폭풍, 가물어 쩍쩍 갈라진 농토 등 상당히 드라마틱한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전달되는 기후변화 관련 보도는 뭔가 심각한 위기가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다는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반면 이런 장면들과 동떨어져 아파트에서 눈을 뜨고 서둘러 지하철로 이동하며, 고층건물 속 사무실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많은 도시인들에게 기후변화란, 비가 오락가락하고 더웠다 추워졌다를 눈에 띄게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이상으로는 실감되기 어렵다.

 

우리의 체감 인식이 어떻든 간에,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에 다방면으로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 아마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식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먹거리가 되어주는 동식물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혼란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 혼란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점점 더워지기 때문에 농어촌 생태계에서 주로 자라는 생물의 종류가 바뀐다는 점이다. 감나무 같은 것은 40~50년 전만 해도 남부지방에서만 잘 자라던 식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도 인근에서도 감이 많이 생산될 정도다.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한반도 동해의 주 생산 어종은 청어였다. 이제 청어는 훨씬 위도가 높은 유럽의 북해 지역에서 나는 것을 수입할 수밖에 없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바뀌는 것이야 그 자체로 문제라고 하긴 어렵다. 사람들의 기호가 가지각색이기 때문에, 더 좋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먹거리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다. 변덕스러운 기후 패턴으로 먹거리가 되는 동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체내에 스트레스 독성을 생산한다. 기후변화가 식생활에 미치는 영향 두 번째는, 생태계 혼란으로 인해 음식물 재료 자체에 포함된 자연 독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심지어 미생물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체내에 독성이 생산된다. 스트레스란 생존을 위협하는 강한 외부 자극을 의미한다. 이런 자극이 생겼을 때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생물의 체내에서는 근육의 힘을 강화하고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아드레날린 계열의 호르몬이 나오는데, 사실 이 호르몬은 살모사나 복어의 독처럼 강한 자연독성이기도 하다. 아드레날린의 영향으로 비상한 힘을 발휘해서 위기를 넘기고 나면 안도감과 함께 행복 호르몬이 나와 체내의 모든 독성을 해독해주지만, 계속 위기감을 느끼게 되면 독성이 축적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병에 걸려 수명이 단축되기도 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어떤 생물이 만든 독이든, 다른 생물에게도 독으로 작용한다. 즉 곰팡이가 만든 독을 인간이 먹어도 생명에 위해가 되는 것이다. 

 

 


 

발효, 독성 수준 낮아지고 영양성분 풍부

 

이제까지 몇 번의 기회에서 말했지만, 건강한 미각을 갖고 있다면 어떤 생명체든 자기 몸에 좋은 것을 맛있다고 느끼고, 몸에 해로운 것을 맛없다고 느낀다. 우리가 무얼 먹든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우리가 요즘 먹는 음식물이 대체로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동식물의 혼란과 긴장감도 분명히 큰 몫을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음식에 무슨 나쁜 성분이 들어 있는 거지?’ 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우리의 의식이 긴장되고 경계감을 가질수록, 우리의 독성 분해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아무 문제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맛없게 느끼며 바로 체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요즘 같은 급작스러운 기후변화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한랭기에서 온난기를 오락가락하는 주기적 변화를 겪어왔다. 물론 최근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사용한 석유 등 화석연료의 영향으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지구 생물은 기후변화 등 급격한 지구 환경조건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인간의 경우, 그 적응 노하우는 음식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급격한 지구의 기후변화로 생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따라서 음식 재료 자체에 스트레스 독성 수준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기를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한 노하우가 음식문화로서 축적되어 왔다. 그 축적은 한반도처럼 오랜 세월 인간이 살아온 지역일수록 풍부하게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발효식품. 어떤 식재료든 그대로 먹는 것보다는 발효시켰을 때 훨씬 더 독성수준이 낮아지고 영양성분은 풍부해진다. 발효 미생물이 독성물질을 분해해 우리 몸에 무해하거나 유익한 성분으로 바꾸어주기 때문이다. 간장·된장·고추장·젓갈·장아찌… 엄청나게 다양한 우리의 발효식품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의 일상 속에 실천한다면, 급격한 기후변화 시기에도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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