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ASSA 아세안] 점점 실망스러워지는 수치의 행보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7.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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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총선 압승으로 집권 100일째 접어든 수치, ‘민주적 독재자’ 비난에 직면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로 대표되는 새로운 집권 세력이 미얀마에 들어선 지 7월10일로 딱 100일이 지났습니다. 세계에서 정치 시스템이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인 미얀마에 지난 100일 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대보다 미흡했다’는 게 외신들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작년 11월 치러진 총선에서 미얀마 국민들은 차기 집권 세력으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압도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국에는 해빙 무드가 찾아왔죠. 하지만 총선 승리 이후 수치의 행보를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표면적으로 군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수치는 현행법에 따라 대통령에 오를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절친’이자, 운전기사·비서실장인 틴 쩌를 대통령에 앉혔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은 헌법에도 없는 ‘국가자문역’이라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아울러 외무장관 자리에도 앉으면서 사실상 ‘내·외치’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사실상 국가 최고지도자 대접을 받고 있는 겁니다. 

 

  


국가 주요 정책도 수치와 그의 측근만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결정되면서 ‘민주적 독재자(Democratic Dictator)’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습니다. 취임 초기 수백 명의 정치범을 석방하면서 ‘과거와의 화해’를 모색했지만, 현재 미얀마는 정치범 60여명이 미석방 된 상태이며 미결수 정치범 수도 140여명에 이릅니다. 

 

 

최근 와서는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과 폭력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인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에서 밀입국한 불법이민자로 간주하는 등 자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국적자인 로힝야족은 미얀마에서 거주와 이동에 있어 자유가 없고 직업, 가족의 규모까지 제한받는 등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로힝야족에게는 ‘아시아의 집시’ ‘아시아의 유대인’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고 있으며, 매년 수천 명이 미얀마를 탈출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수년간을 가택연금 상태로 지낸 수치가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게 참으로 안타깝네요. 본인도 그런 억압을 받았으면서 말입니다. 

 

 


아쉽게도 이와 관련해 수치의 태도는 평소 태도와는 다르게 분명하지 않습니다.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 인권,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온 그녀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자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할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말 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치는 약 14만명으로 추산되는 태국 내 로힝야족 난민을 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밝혔으나, 직전인 6월22일 유엔 인권보고관과 면담에서는 공식 문서에 로힝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얀마 내 인권 문제가 제기되자 최근 미 국무부는 연례 인신매매실태 보고서에서 5년 만에 미얀마를 ‘최악의 인신매매국’으로 지정했습니다. 우군이었던 미국이 이런 조치를 내렸다는 것은 단순하게 볼 사안이 아닙니다. 

 

 


집권 초기부터 “군부와는 또 다른 모습의 독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자 그녀를 지지했던 서방의 미국과 유럽연합국들도 미얀마 내 이 같은 움직임을 점차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과거 군부 시절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지방 군벌조직이 자행하는 인권 유린이 계속되고 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심각한 인권 침해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카친주와 샨주입니다. 두 지역에서는 지방정부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슬림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지난 6월21일 미얀마 정보부 산하 영화·비디오 검열위원회가 오스트리아 영화 《버마에 드리운 노을 : 샨족 왕비로서의 내 인생》에 대해 상영금지 조치를 내린 것도 지금의 미얀마 사회 시스템이 과거 군부독재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샨족은 로힝야족과 함께 미얀마에서 인권 탄압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소수민족입니다.

 

 


더군다나 경제 개발과 관련해서도 수치가 이끄는 집권 여당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막대한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을 서두르고 있지만, 외자 유치와 관련해서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죠. 

 

 


물론 서구 언론의 실망이 큰 것은 그만큼 그녀에게 건 기대가 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군부 세력의 위세가 막강한 상태에서 단기간 뭔가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죠. 때문에 100일 밖에 지나지 않은 수치 정부를 지금 시점에서 뭐라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추락하는 스타냐 희망의 횃불이냐’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얀마 유력 언론인이자 교육자인 예 나잉 모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물론 윤리성은 다른 문제겠지만, 오랜 군부 통치를 끝마치고 이제 민선 정부가 1000일도 아닌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현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힘들다. 다행히도 미얀마 국민은 인내심이 많다.”

 

 


과연 그럴까요.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입니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 민주화의 대명사인 수치의 명예가 땅바닥으로 떨어지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그게 세상 이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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