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폭로와 소송 어떻게 결말날까
  • 안성모·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7.25 10:08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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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에 돌입한 ‘김영사 사태’…전·현직 대표 피고소인 신분 바뀌어

 

딱 1년 전의 일이다. 지난해 7월말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될 무렵 출판업계를 발칵 뒤집을 사건 하나가 터졌다.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김영사의 박은주 전 사장이 창업주인 김강유 회장을 350억원 규모의 배임 및 횡령, 그리고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다. 업계 최초의 여성 CEO(최고경영자)로 ‘출판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사장은 2014년 5월말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둬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로부터 1년2개월 뒤 “김강유 회장이 김영사를 사금고처럼 운영했다”는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이른바 ‘김영사 사태’ 1라운드의 시작이었다.


시사저널은 제1346호(2015년 8월4일자)에서 박 전 사장 측이 검찰에 제출한 자료를 입수해 박 전 사장 측에서 김 회장의 ‘불법 행위’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것들을 살펴봤다. 요약하면 ‘김 회장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김영사 자금 35억원을 빌려주고 금융권에 보증을 서게 해 손실을 끼쳤고, 출근도 안 하면서 본인 월급 등의 명목으로 36억원을 받아갔으며, 박 전 사장에게 보상금 45억원을 준다고 속여 박 전 사장 소유 회사 주식과 가회동 사옥, 그리고 퇴직금까지 모두 포기하게 하는 식으로 285억원 상당을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영사 김강유 회장(왼쪽)과 박은주 전 사장


‘횡령’ 혐의와 ‘교주’ 논란


시사저널은 또 용인에 위치한 김 회장 소유의 백성농장을 직접 찾아가 그를 둘러싼 종교 논란의 진위를 추적했다. 박 전 사장은 농장 내 법당을 운영하는 김 회장을 ‘교주’, 법당에서 《금강경》 공부를 하는 회원들을 ‘신도’라고 지칭해 또 다른 파장을 불러왔다. 박 전 사장은 “1984년 6월부터 2003년 5월까지 20년간 월급과 주식 배당금 등 36억원을 보시금이라는 명목으로 갖다 바쳤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의 이 같은 주장은 가뜩이나 무덥던 그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김영사가 회사 차원에서 반박에 나섰지만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특히 김 회장이 직접 해명에 나서지 않자 이런저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2015년 11월2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는 김 회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다시 한 달여 뒤인 12월22일 시사저널은 김 회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제1368호 참조).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 사옥에서 만난 김 회장은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아 직접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사장이 일방적인 폭로를 했다”며 자신을 향해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한 곳인 김영사지만 그동안 창업주인 김 회장의 경우 알려진 게 별로 없었다. 워낙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의혹이 더 증폭된 측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회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일상적으로 해왔다”고 반박하면서 “직접적인 경영은 박 전 사장이 했지만 사장을 감독하고 큰일을 결정하는 게 회장이 하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이 ‘김영사 신화’를 이끌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김 회장은 “박 전 사장은 행동형 실무자였다. 아이디어를 내는 쪽이 아니었다”며 “내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외부에서 들어왔을 때 이런 것을 구체적인 지시에 의해 실천하는 역할이었다. 직책 때문에 박 전 사장 이름으로 나간 거였는데 자신이 기획하고 제안해 책을 냈다는 식으로 과장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영사 사태가 논란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는 종교와 관련된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무소불위의 부처님 행세를 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교주’라고 지칭한 데 대해 “박 전 사장이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니까 종교를 물고 늘어진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박 전 사장이 세월호 참사에 편승해 ‘사이비 교주’라는 식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내가 만약 교주였다면 1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가만히 내버려뒀겠느냐”고 반문했다.

 


김강유 회장 ‘무혐의’ 처분


김 회장의 배임 혐의 근거는 형이 운영해온 한국리더십센터에 김영사가 수십억원을 대여해주고 또 보증을 서줬다는 데 있었다. 구체적으로 △2008년 10억원 대여 △2012년 국민은행 차입금 10억원 지급보증 △2013년 오투저축은행 9억원, 비에스저축은행 25억원 대출 연대보증 △2013~14년 신한은행 대출 6억원 연대보증 △2014년 은행권 대출금 35억원 대위변제 △2014~15년 6억6000만원 대여 등이다.


횡령 혐의는 김 회장이 1994~2014년 김영사에서 실제 업무를 하지 않았음에도 △2005~14년까지 7억5700만원의 급여를 지급받고 △개인 운전기사를 고용해 7억4300만원의 월급을 지급하게 하고 △카드 결제대금 및 개인 차량 리스료로 5억원 상당을 대납하게 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또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김영사 가회동 사옥 임대료를 4억원씩 총 8억원을 증액한 다음 이를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도 거론됐다.


사기 혐의의 경우 2014년 9월22일 박 전 사장이 서울시 서초구 한 호텔에서 김 회장과 만나 합의한 내용과 관련돼 있다. 김 회장이 박 전 사장이 김영사와 관련한 권리를 포기하면 45억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박 전 사장이 △시가 200억원 상당의 가회동 사옥 소유권 △35억원 상당의 퇴직금 △시가 40억원 상당의 김영사 주식 △시가 10억원 상당의 월드김영사 주식 등 285억원 상당의 재산상 권리를 포기했는데도 불구하고 약속한 45억원을 지급하지 않고 편취를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일단 김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검은 김 회장에 대한 무혐의 처분 이유로 배임 부분의 경우 △한국리더십센터의 지분을 김영사가 보유하고 있고 △대여와 연대보증 및 대위변제 당시 충분한 채권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들었다.


횡령 혐의의 경우 △2014년 4월5일자 각서 등에 의하면 박 전 사장이 가회동 사옥의 실소유주가 김 회장임을 인정하고 있고 △1994년 가회동 사옥 거래 당시 중개인인 소아무개씨도 실질적인 매수인은 김 회장이라고 진술한 점 등을 무혐의 이유로 들었다.


사기 부분의 경우 2014년 9월22일 작성한 합의서에 45억원 지급에 관한 내용이 없었는데 이러한 고액의 합의 조건이 계약서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것은 경험칙상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는 게 주된 이유로 거론됐다. 김 회장과 구두로 약속했다는 박 전 사장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박 전 사장은 서울지검의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고검에 항고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그는 서울고검의 결정도 인정할 수 없다며 대검에 재항고를 신청한 상태다. 박 전 사장은 “검찰의 수사가 미진한 부분도 있고 사실을 오인한 부분도 있다”며 “김 회장에 대한 수사가 재개돼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5년 7월29일 기자가 찾은 김강유 김영사 회장의 법당이 있는 경기도 용인 백성농장 정문



김영사 성장과 비리 의혹 놓고 ‘다른 말’


김 회장과의 인터뷰 후 시사저널은 김영사 이사회에서 작성한 ‘박은주 전 사장의 실체와 비리’ 관련 문서를 입수했다. 여기에는 김영사 내부 감사 결과 박 전 사장이 배임 및 횡령을 한 비리 사실이 적발됐다며 그 내역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김 회장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향해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었다.


최근 김영사는 이를 근거로 박 전 사장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1년 만에 피고소인이 김 회장에서 박 전 사장으로 바뀐 것이다. 김영사 사태가 2라운드로 접어든 셈이다. 고소 내용을 요약하면 ‘박 전 사장 등 3명이 허위로 회계 처리를 하거나 회계 처리 없이 무단으로 김영사 돈을 횡령했고, 월드맥스원 등 박 전 사장 혹은 지인이 설립한 회사에 부당한 이득을 안겨준 배임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 상황이 바뀌었지만 쟁점은 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에게 제기된 혐의는 서로 맞닿아 있다. 자신을 향한 칼날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상대에게 칼날을 휘두르는 모양새다.


박 전 사장의 횡령 혐의 부분은 △2007 ~11년 허위 회계 처리를 통해 약 10억9000만원, 2007~12년 회계 처리 없이 약 18억2000만원 사용 △허위 직원을 등재해 급여 및 퇴직금으로 약 5억1000만원 사용 △ 개인 건물의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건물 공사비를 회삿돈으로 사용 △다른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면서 자문료 등 명목으로 회삿돈 사용 등이다.


배임 혐의의 경우 월드맥스원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김영사가 출판하는 모든 서적의 유통과 영업 업무를 독점적으로 대행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점을 거론했다. 2010~14년 총 43회에 걸쳐 약 32억4000만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사실상 박 전 사장의 회사인 월드김영사가 김영사의 수익부서인 체험학습 사업부문을 이전받은 것도 문제로 삼고 있다.


반면 박 전 사장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전혀 터무니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회장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 데 일조한 확인서와 합의서가 이번에는 박 전 사장의 횡령·배임 혐의의 근거로 제시됐다. 2014년 4월15일 박 전 사장이 서명한 것으로 돼 있는 비리 내역이 담긴 ‘확인서’와 그해 9월22일 양측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서명한 ‘합의서’가 대표적이다.


박 전 사장은 4·15확인서의 경우 김 회장이 회장실로 불러 무조건 서명하라고 협박해 이름과 날짜를 쓰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9·22합의서의 경우 서면 합의와 함께 구두 합의도 했다고 주장했다. 서면으로는 박 전 사장이 가회동 사옥, 퇴직금, 김영사와 월드김영사 주식 등을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구두로는 김 회장이 압류 중인 박 전 사장의 부동산 3건을 해지하고 합의금 45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김 회장과 박 전 사장이 다시 함께 걷기는 힘들어 보인다. 두 사람은 국내 출판계에서 단행본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김영사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불거진 비리 의혹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박 전 사장 명의로 돼 있던 가회동 사옥과 김영사 주식의 실소유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엇갈린 주장을 내놓고 있다. 2라운드에 접어든 김영사 사태가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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