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Insight] ‘맞춤형 인권 제재’로 비상 걸린 평양 권력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27 09:48
  • 호수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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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북한 노예국가’ 규정…국제사회 인권 비판에 속수무책인 북한

북한 김정은 체제가 ‘노예국가’로 낙인찍혔다. 미국 공화당은 7월18일(현지 시각)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북한을 ‘김씨 일가의 노예국가(Kim family’s state)’로 규정하는 정강을 채택했다. 미국에서 노예국가라는 표현은 과거 노예제를 합법화하고 사고팔기까지 하던 일부 주(州)를 지칭한다. 이번 정강 채택은 김정은 정권을 전근대적인 인권유린의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체제로 미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평양 지도부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이른바 ‘최고존엄’으로 지칭되는 김정은을 정면 겨냥한 인권 칼날이 목전에 닿았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게 기대를 한껏 걸었던 터라 실망감은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은 트럼프가 후보 선출을 위한 레이스를 펼칠 당시 내놓은 ‘주한미군 철수’ 등의 발언을 놓고 “선견지명이 있는 대통령 후보”라고 관영 매체를 동원해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또 “트럼프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가 헛물을 켰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북한의 대외 및 선전·선동 라인은 김정은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됐다.

 

 

2015년 12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사만다 파워 주유엔 미국대사가 북한 인권 실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에 뒤통수 맞은 평양 지도부

 

더욱이 상대 진영인 미 민주당도 이달 초 정강 초안에서 김정은 체제를 “지구상에서 가학적 독재자가 통치하는 가장 억압적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결국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느 쪽도 김정은에게 ‘희망’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트럼프나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당선 시 북한에 대해 인권문제만큼은 강도 높은 압박을 계속해나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해외 북한 노동자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며 평양을 압박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지난 7월20일 폴란드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북한 노동자에 대한 강제노동을 비롯한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며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제재에 착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 정권을 긴장케 하고 있다. 물론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3년 미국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국제적 이슈로 제기했고, 79년 국제사면위원회는 탈북자 증언 등을 토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양심수로 겪은 일들’이란 보고서를 펴냈을 정도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이 지난 1월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연이어 핵과 미사일 도발에 집착하고 있는 사이 국제사회는 김정은을 지목한 ‘족집게 식’ 인권 제재의 수위를 한껏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에 주목하면서도 “초정밀 위조달러(슈퍼노트)와 마약·가짜담배에 이은 미국의 대북 압박 수순은 북한 인권일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열악한 인권상황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게 한 건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권력을 잡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김정은은 겉으로는 민생 챙기기와 경제건설을 표방했지만 실제 행동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식량난 속에서도 체제 선전성 우상화물(偶像化物) 건립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고, 스키장과 골프장, 워터파크 등 평양 일부 특권층의 환심을 사는 데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탈북자 단속을 위해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북한 쪽 가족을 위협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를 북한으로 다시 유인하는 비인도적 행위도 감행했다.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잔혹한 공개처형 방식으로 제거한 건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자신의 후견인으로 아버지가 지목해준 최고 실세마저 정치적 보복 형태로 숙청하는 30대 초반 최고지도자의 모습은 국제사회에 정상적으로 비쳐질 리 없었다. 생명권의 자의적 박탈로 비치는 즉결처형이나 기관총을 난사해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비인도적 행태, 죽은 사람을 화염방사기를 이용해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건 김정은 식 공포정치의 전형으로 국제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결국 취약한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꺼낸 고모부 처형이란 카드는 김정은 자신의 목을 겨누는 부메랑이 됐다.

 

 

2015년 5월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인권, 김정은 팔 비트는 최대 아킬레스건

 

북한은 국제사회의 이런 인권비판 여론에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수미 테리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인권 이슈가 북한을 움직이는 놀라운 레버리지(지렛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마치 2005년 미국이 북한 김정일의 비자금을 포함한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했을 때 북한의 대응을 떠올리게 한다는 얘기다. 당시 미 당국자들은 “평양의 팔을 살짝 비틀려 했는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놀랐다. BDA가 북한의 급소란 걸 알아차리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BDA 자금동결에 이어 이번에는 인권문제가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의 한계 때문에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수령 독재가 권력을 지탱하는 기본 틀인 상황에서 이를 부정하거나 철폐한다는 건 곧 정권의 붕괴를 의미한다. 폭압적 통치와 주민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대를 이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외부세계의 인권문제 비판에 대해 “인민들이 만족하며 행복하게 산다”고 주장한다. 나라마다 인권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국제사회는 이미 보편적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최고존엄’ 한 사람만이 아닌 2400만 주민 모두의 ‘보편적 존엄성’에 북한 당국이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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