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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수’ 필요한 産銀에 ‘방화범’ 내려보냈다”

산은 직원들의 전·현직 회장 평가, “홍기택, 산은 역사상 최악의 수장”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press.com | 승인 2016.07.29(Fri) 09:07:03 | 13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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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대표적인 인사 실패 사례로 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의 산업은행(산은) 회장,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 선임을 꼽는 이가 많다. 홍 전 회장은 올 6월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말해 관치금융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돌연 AIIB 부총재 자리에서 물러나 박근혜 정부 경제외교 정책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관가(官街)에서는 이를 이미 예고된 재앙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홍 전 회장의 ‘공직자로서의 자질 부족’은 이번 AIIB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


 

 

홍기택에 대한 직원들 만족도, 15.3% 불과

 

공기업 중 산은처럼 부침(浮沈)을 많이 겪은 곳도 드물다. 역대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의 대명사로 꼽혔으며, 부실관리로 인한 혈세 낭비는 산은이 매번 지적받는 레퍼토리였다. 권력 상층부의 눈치를 보는 금융기관으로 전락하면서 산은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산은 구성원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볼까.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기자와 만난 직원들은 오늘날 산은의 명성이 추락하게 된 원인을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와 △잦은 조직 정체성 변경으로 꼽았다. 그중 2013년 4월부터 올 1월까지 현 정부의 집권 전반기 동안 산은 회장으로 근무한 홍기택 전 회장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특이한 회장’으로 불린다. 산은 직원들이 평가하는 홍 전 회장은 ‘무색무취 리더’다. 재임기간 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성과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산은에 입사한 지 15년을 넘긴 한 차장급 직원의 말이다. “홍 전 회장이 취임한 2013년은 우리(산은)나 한국 경제에 붙은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다시 말해 ‘골든타임’이었다. 당시 조직 내에서는 ‘이대로 가면 한국 경제가 큰일 난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그런데 당시 출범한 정부가 행정 경험이 없는 대학교수를 CEO(최고경영자)로 선임한 것에 대한 직원들의 실망감이 상당했다. 불이 난 상황에서 ‘노련한 소방관’이 아닌 ‘방화범’을 내려보낸 꼴이나 다름없었다.”

 

홍 전 회장에 대한 산은 직원들의 평가는 냉혹하리만큼 혹평 일색이다. ‘산은 역사상 최악의 수장’ ‘임기 내 한 일이라고는 백서(白書) 만든 게 전부’라는 혹평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최근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홍 전 회장은 재임기간 내부 직원 평가에서 낙제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지난해 말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서 홍 전 회장의 대내 활동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는 15.3%에 불과했으며, 대외 대응 및 대외관계 관리 분야에서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의견이 15.7%에 그쳤다. 

 

이는 취임 초기부터 우려된 점이었다. 2013년 2월말 박근혜 정부가 첫 회장으로 홍기택 중앙대 교수를 선임했을 당시, 현장 경험이 없는 교수 출신을 국책 금융기관 수장으로 앉히는 것은 논란거리였다. 홍 전 회장은 2010년 말 결성된 국가미래연구원의 창립 멤버다. 이 단체는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로 불린 기관이다. 산은 회장으로 부임하기 전, 홍 전 회장과 금융권의 인연은 NH농협금융지주·삼성카드·동양종금증권의 사외이사가 전부다. 더군다나 홍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홍 전 회장은 2013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서강대 출신 인사들이 주요 금융기관 대표 자리를 꿰찬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논란의 중심에 홍 전 회장이 있다. 

 

 

홍기택 前 회장(왼쪽)과 이동걸 회장


 

 

“책임 전가하는 ‘유체이탈식’ 화법 종종 해”

 

당시 산은 노조와 야당에서는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지만, 정작 홍 전 회장 본인은 “성공한 낙하산이 되겠다”며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외부에 비친 홍 전 회장은 남의 평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쿨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내부 직원들과는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현재 회사 내에서 영업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산은 직원의 설명이다. “당시 사내에서는 홍 회장이 국회 상임위에서 서두에 항상 ‘제가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이라고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본인이 직접 실무를 챙기지 않고 실무자 보고만 받다 보니 이런 것 아니겠는가. 지금 논란이 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실패는 내 잘못이 아니다’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유체이탈식’ 화법은 산은에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때문에 홍 전 회장은 노조와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2014년 9월 ‘관치금융 철폐’를 걸고 진행된 금융노조의 총파업 과정에서 홍 전 회장은 산은 노조로부터 업무방해 협의로 피소됐다. 추후 노조가 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됐지만 홍 전 회장은 “(노조가) 어떻게 나를 고소할 수 있느냐”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산은 직원 A씨는 “평생 학교에만 있다 보니 내부 직원과의 소통 능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말 직원 평가에서 홍 전 회장은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 부문에서 문제가 있다(58.1%)는 평가를 받았다.

 

조정 능력 부재는 홍기택 전 회장 재임 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다. 홍 전 회장 이전까지 산은 회장(과거 총재직 포함)은 주로 관료 출신 인사들이 차지했다. 이근영(1998년 취임), 엄낙용(2000년) 총재는 재경부 세제실장, 재경부 차관을 지냈으며, 정건용(2001년), 유지창(2003년), 김창록(2005년) 총재 역시 금감위 부위원장 내지는 금감원 부원장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직전 강만수 전 회장은 기재부 장관을 지낸 후, 산은 회장에 취임한 케이스다. 입사 5년을 넘긴 한 산은 직원의 설명이다. 

 

“홍 전 회장을 겪어보면서 ‘왜 정책금융기관 수장에 관료 출신들이 필요한지 알 것 같다. 산은은 민간과 공공성이 결합된 독특한 금융기관이다. IMF(국제통화기금)나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 수장에 정통 관료 출신이 선임되는 것은 그만큼 조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료 출신들은 같은 낙하산이더라도 필요할 경우 국회·정부를 찾아가 설득하는 능력이 있다. 반면, 평생 남에게 굽신거려 본 적이 없는 학자 출신이 이런 게 가능했겠나. 가령 STX조선 문제만 해도 문제가 불거진 2013년 2월 바로 법정관리로 보내든지 다른 회사와 합병을 추진했어야 했는데, 그때 시간을 질질 끌면서 문제가 커져버린 것이다. 차라리 강만수 전 회장처럼 장관 출신이 회장으로 있을 때가 조직 입장에서는 더 좋았을지 모른다. 당시 강 회장은 직장 내 어린이집을 개설하는 등 노조와 이견을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도 ‘통 큰’ 결정을 종종 했다.”

 

 


 

 

MB 정부 5년 ‘민영화 논란’으로 허비

 

민영화와 정책금융기관 사이에서 ‘갈 지(之)자’ 행태를 보인 것도 오늘날 산은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원인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업무가 추가됐지만 기본적으로 산은은 유망 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정책금융기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산업은행의 투자은행과 정책금융 기능을 분리, 투자은행 기능을 민영화시키겠다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산업은행 흑역사’는 본격화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산은은 총재 1명, 부총재 1명, 등기이사 6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등기이사 임기는 3년이며 이 중 1명이 부총재로 선임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민영화 추진으로 정책금융기능이 분리된 후, 산은 이사회는 행장 겸 회장(이사회 의장 겸직)과 수석부행장 1명, 상임이사 1명,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아래 부행장이 9명가량 근무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비등기 임원이다. 산은에서 임기가 보장된 인사는 회장, 수석부행장, 상임이사, 사외이사뿐이다. 지배구조상 내부 직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다. 내부 직원들은 오늘날 산은이 어정쩡한 국책 금융기관으로 전락한 것도 거슬러 올라가면 ‘민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한 차장급 직원의 말이다.

 

“민영화를 위해서는 기업공개(IPO)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산을 키우는 게 기본이다. 산은은 120조~130조원에 달하는 총자산에 비해 당기순이익은 1조~2조원에 불과한 금융기관이다. 그나마 보유자산도 현금이 아니라 한전 주식처럼 안전 하지만 현금유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상당수다. 2009년 민영화 당시 당장 덩치를 키워야 하는 산은에 조선·해운업이 눈에 들어온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두 업종은 위험도가 높다. 또 산업의 특성상 장기대출이 필요하다. 그런데 5년 단임제 정부 아래서 민영화를 한다?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그러는 사이 업황이 주저앉으면서 부실이 커진 것이다.”

 

산은과 비슷한 성격의 정책금융기관인 수출입은행(수은)이 경쟁적으로 ‘덩치 키우기’에 나선 것도 그때부터다. 공교롭게도 산은과 수은 모두 현재 혈세만 날린 대표적인 부실 공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여기에 강만수 회장 재임 시에는 우리금융지주를 인수하는 ‘메가뱅크’(거대 민간 금융기관)가 당면과제로 자리 잡으면서 산은 내부는 격랑에 휩싸였다. 본사에서 만난 차장급 직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팀장급 중에는 당시 강 회장의 메가뱅크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었다. 현재 산은 내 가장 많은 인원이 1990~92년 입사자다. 대략 600여 명 되는데, 전체 산업은행 직원이 3600명인 것에 비하면 비중이 상당하다. 문제는 이들이 있어야 할 부서장의 숫자가 130~140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팀장급 이상에서는 아무래도 메가뱅크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산은 민영화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원점에서 재검토됐다. 5년이라는 시간을 민영화에 허비하는 동안 ‘정책금융+구조조정’이라는 고유 업무 기능이 약화됐다. 

 

 


 

 

‘서금회’ 홍기택 이어, 영남대 출신 이동걸 낙점

 

올 2월에 취임한 이동걸 현 회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 출신으로, 이덕훈 현 수출입은행장 등 전·현직 금융인 1365명이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당사에 모여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 지지를 선언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보은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산은에 오기 전 이 회장은 신한은행 부행장, 신한캐피탈·신한금융투자 대표를 지낸 정통 ‘신한맨’이다.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에 근무하는 동안 이 회장은 인사 및 해외영업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 내 영업지원파트에서 근무하는 한 대리급 직원의 말이다. “지난 4월1일 있었던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이 회장이 기념사를 낭독하는 도중 일어난 일이다. 원고에 없던 부분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 무심코 나온 말이 ‘사랑하는 신한가족 여러분’이었다. 다들 황당해 서로 얼굴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수였겠지만, 이 회장 스스로가 신한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취임 후 이 회장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 역시 성과연봉제 도입과 해외 네트워크 확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지금 산은에 필요한 수장의 자질은 잡음 없이 구조조정을 끝마치고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능력”이라면서 “그런 면에서 BH(청와대)는 아직도 산은이 어떤 기관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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