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제2의 가정의례준칙’ 될까 우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6.08.01 15:11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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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헌재 합헌 판결 이후 모호성 논란 더욱 커져…“지속적 개정·보완 필요”

대한민국 법률 가운데 ‘가정의례법’이란 게 있다. 세간에는 한때 관련 법규 이름이었던 ‘가정의례준칙’으로 더 많이 알려진 법률이다. 하지만 지금 이 법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유명무실해진 법을 가리켜 ‘사문화(死文化)된 법’이라고 한다. ‘부패 방지와 근절’을 바라는 전 국민의 관심과 염원 속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오는 9월28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자칫 이 법이 ‘제2의 가정의례법’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7월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 선고에서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현실성 결여된 가정의례법, 사실상 사문화

 

본격 시행도 되기 전에 벌써부터 ‘사문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김영란법’에 대한 모호성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향후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지속적인 개정·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는 지난 7월28일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판결문 내에서도 소수의견으로 “졸속 입법”이란 지적이 등장할 정도다. 부패방지란 대의명분이 워낙 큰 탓에 김영란법의 취지와 존재 자체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결코 유명무실한 법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가정의례법의 탄생 때도 이와 흡사한 모호성과 현실성에 대한 논란이 잇따랐다. 1969년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개발과 산업화로 인한 소비풍조가 늘어나자 허례허식과 낭비 억제, 사회기풍 진작을 목적으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시행되었다. 1973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개명되었고, 1980년 12월 전문 개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73년 개정안 발표 때 결혼 및 상례(喪禮) 시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주변에 돌리거나 음식물 접대 등을 하면 5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처벌조항을 내놓자 인정(人情)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생활을 정부에서 지나치게 간섭해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 취지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처벌 대상 및 조항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하다 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채 방치됐다. 결국 ‘가정의례준칙’은 1999년 폐지되고 대신 ‘건전가정의례준칙’이 새로 개정됐으나, 이 또한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2008년 10월14일에 이어 지난해 12월30일 내용이 전면 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사실상 지금의 국민들은 이런 법률안이 존재하는지 또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임직원과 언론인, 사립학교 임직원 등 240만여 명이고,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회사원과 학부모 등 금품 및 향응 제공자도 처벌을 받는 만큼 사실상 전 국민이 대상에 포함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법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사실상 원래 취지를 잃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는 지난 4년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영란법의 발단은 지난 2010년 터진 소위 ‘스폰서 검사’ 사건과 ‘벤츠 여검사’ 사건이었다. 현직 검사가 건설업자에게 향응과 돈을 받고 변호사에게 벤츠 승용차와 명품 가방을 받았으나,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모두 무죄판결을 받은 게 큰 논란이 됐다.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도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높아졌고,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이 내용으로 2012년 8월 일명 ‘김영란법’을 내놓았다.

 

2013년 7월 국회에 제출됐으나, 논의가 겉돌다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탔다. 당시 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 문제로 비난 여론이 급등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관피아를 척결하겠으니, 국회에서 김영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하면서 제정 논의가 활발해진 것이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해 1월 ‘공직자 외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임직원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는 내용의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초 공무원을 대상으로 발의된 취지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국회의원들 자신은 ‘선출된 공직자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 빠져나가면서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이 법은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했고, 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헌재도 “졸속 입법” 우려 제기

 

법 조항이 형평성에 준하지 않거나 불명확하다며 대한변협의 문제제기가 뒤따랐다. 민간인의 신분임에도 갑작스레 공직자 범위에 포함된 언론단체와 교직원단체의 반발도 상당했다. 헌법소원이 이뤄졌으나, 7월28일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합헌 결정 이후에 논란은 오히려 더 증폭되고 있다. 4가지 쟁점에서 ‘배우자 금품 수수 신고 의무’와 ‘식사비·선물 등 금액 상한선을 시행령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5대4로 의견이 팽팽히 갈린 끝에 가까스로 통과됐고,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7대2로 반대 입장의 소수의견이 나오는 등 여전한 논란거리를 남겨뒀다.

 

헌재 판결문에도 이런 고심의 흔적은 역력하다. 김영란법에 대한 주변의 비판과 우려를 의식한 듯 “청렴도를 높이고 부패를 줄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야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부패의 원인이 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관행을 방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다소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큰 취지를 살려 시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언론과 교육 분야가 포함된 것에 대한 문제를 의식한 듯 “국가가 (김영란)법을 남용하거나 악용할 경우 언론의 자유나 사학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부정청탁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이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소수의견에서 “언론과 사립학교 교원을 법 적용 대상으로 삼은 합리적인 기준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민간영역 중 교육이나 언론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은 합리적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야 할 정도로 부패했다는 조사 결과도 없이 국회가 졸속으로 입법을 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합헌 결정을 내린 판결문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이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고 밝힌 점에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여론조사’를 헌재가 판단의 근거로 직접 인용했다는 데 대해 법률학자들의 지적이 제기되면서 “향후 여론조사 결과가 바뀌면 법이 또 바뀌어야 하는가”란 반문도 나왔다.

 

소수의견이긴 하지만 “(김영란법은) 진지한 논의 없이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입법된 것으로 보인다”는 헌재의 지적은 향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국회가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서도 “위헌 소지를 포함해 여전히 법에 문제가 많지만 여론이 워낙 강경하니 일단 통과시키고, 추후 다시 수정을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들이 많았다.

 

한국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공직자와 맞먹는 청렴성이 요구된다는 헌재의 판결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며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언론 본연의 임무인 정부 비판 기능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령 정부에 우호적인 A언론이 있고, 비판적인 B언론이 있다고 치자. 정부에서 B언론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사찰을 감행하면, 설령 A언론이 99의 법규 위반을 저지르고, B언론은 단 1의 위반만 있었다 하더라도, B언론만 걸려들 수밖에 없다. 이 법이 비판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로 악용되어선 안 되는데, 지금으로선 그럴 허점이 많아 보인다”고 밝혔다. 

 

2012년 당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최초 제안한 ‘김영란법’은 이후 4년간 수정을 거치면서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홍만표 사건 등 터질 때마다 논란 불가피”

 

정부 내에서조차 공식적인 이의 제기가 나올 정도다. 헌재 판결이 나온 직후인 7월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해양수산부,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김영란법 시행령을 조정해 줄 것을 법제처에 요청하기로 했다. 시행을 코앞에 둔 법률에 대해 정부 관계 부처가 곧바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 판결문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위헌이 될 만큼 최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법이 최선은 아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향후 손질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립학교 종사자와 언론인을 포함시켜 적용 대상자를 확대한 부분은 계속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 본래의 입법 취지대로 공직자를 적용 대상으로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민간부문에서 언론과 교육 분야만 집어넣고 다른 분야는 제외한 기준이 무척 모호하다. 예를 들어 이번 홍만표 변호사 사건에서 보듯이 전관예우 변호사들의 공공성이 언론이나 교육 못지않은데, 향후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논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처음 시행 단계에서는 적용 대상 범위를 좁히되, 법이 정착되면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의원은 “국회의원이 적용 대상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민들의 거센 비판 여론에 직면할 것”이라며 “‘3·5·10’(식사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하)도 국민들 정서로 볼 땐 형평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직 검사장이 수백억을 받는 작금의 현실에서 말단 공무원에게 3만원을 적용해 처벌하는 게 과연 이 법의 본래 취지인지 고민스럽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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