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에게 언론 통제수단 허용 민주주의 심각하게 후퇴시켜”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8.01 16:32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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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소원 제기’ 대한변협·기자협회 “김영란법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 악용 우려”

헌법재판소가 7월28일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이 비판언론 길들이기로 악용된다면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고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은 세월호 참사로 도마에 오른 ‘관피아 척결’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만들어졌다. 공직자의 청렴을 법적 제재를 통해 실현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 불똥이 언론계로 튀었다. 언론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언론인을 ‘공직자’와 같은 부류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후 언론인과 공직자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느냐는 논란과 함께 헌법 제21조에 규정돼 있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7월28일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직원들이 헌법재판소의 부정청탁금지법 합헌 판결 관련 보도를 시청하고 있다.


사정기관, 비판언론에 대한 선별 사정 가능

 

헌법재판소는 민간영역에 있는 언론인을 공직자와 함께 포함시킨 것에 대해 7대2로 합헌을 결정했다. 언론인의 공적 책임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해석된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에 의해 청탁금지법이 남용될 경우 언론의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소지는 있다”면서도 “이 문제는 취재 관행과 접대 문화의 개선, 그리고 의식 개혁이 뒤따라가지 못함에 따른 과도기적인 우려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이러한 염려나 제약에 따라 침해되는 사익이 부정청탁금지조항이 추구하는 공익보다 크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데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대한변협은 “헌법재판소가 권력자에게 언론통제 수단을 허용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고 지적하면서 “국회가 법을 개정해 ‘민간언론’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협회는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지적의 밑바탕에는 권력이 김영란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7월22일 발간한 부정청탁금지법 해설집에 따르면, 이 법이 적용될 언론사는 올해 2월 기준으로 1만6388개인 것으로 파악됐다. 언론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제2조 제12호에 따른 것으로 이들 언론사의 대표자와 그 임직원이 모두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인지수사 범위가 확대되면서 사정기관의 수사권이 남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한 선별 사정이 가능해져 언론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자협회는 “사정당국이 자의적인 법 적용으로 정상적인 취재·보도 활동을 제한하고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김영란법을 악용하지 않는지 똑똑히 감시할 것이다”고 밝혔다.

 

2015년 3월18일 한국언론법학회 주최로 열린 ‘김영란법과 언론의 자유’ 토론회


“언론의 자유 침해 않도록 특단의 조치 마련”

 

김영란법과 언론의 자유 논란은 2015년 3월3일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온 사안이다. 언론의 공공성과 언론의 자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많았다. 이 법을 처음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그해 3월10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회의 법안 통과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민간 분야의 반부패대책도 절실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작업을 공직사회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 뜻밖에 국회에서 언론과 사립학교 분야를 추가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직자 부분이 2년 넘게 공론화 과정을 거친 데 비해 민간 분야에 대하여는 적용 범위와 속도·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확대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공직사회의 반부패문제를 새롭게 개혁하고 차츰 2차적으로 기업·금융·언론·사회단체 등을 포함하는 모든 민간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그 범위와 속도·방법의 문제는 따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은 또 “우리 국민 69.8%가 사립학교교직원과 언론인까지 법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언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입법이라든지 비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지적한 후 언론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당부를 더했다.

 

“지금이라도 우리 헌법상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수사 착수를 일정한 소명이 있는 경우에 한다든지 수사 착수 시 언론사에 사전통보 한다든지 하는 등의 장치이다. 언론의 자유는 특별히 보호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언급한 것처럼 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 ‘바람직하다’는 국민여론이 높은 점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 언론에 대한 불신은 기자를 쓰레기에 비유하는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데는 국민에게 불신을 안겨준 언론 스스로가 초래한 측면이 있다.

 

언론계 내에서는 김영란법 시행 여부를 떠나 기자 사회의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는 게 당연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취재 윤리를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김영란법의 취지에 대해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 법이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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