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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살겠다는 부산행의 반칙개봉·변칙흥행

개봉일보다 1주 전에 ‘유료 시사’ 명목으로 미리 개봉…시장 질서 파괴로 ‘작은 영화’에 피해 안겨

허남웅 영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2(Tue) 17:33:50 | 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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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의 흥행 기세가 무섭다.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의 기록을 있는 대로 갈아치우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부산행》을 배급한 ‘NEW’에 따르면,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사전 예매량(32만3186장), 역대 최고 오프닝(87만2232명), 역대 일일 최다 관객 수(128만950명), 역대 개봉 첫 주 최다 관객 수(531만5567명) 등 개봉(7월20일) 5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루 평균 100만 명을 넘어서는 속도인 셈이다. 영화가 지닌 오락성이 관객에게 통한 결과라고 분석하면 좋겠지만, 《부산행》의 흥행 기록은 단순히 작품의 힘에만 있지 않다. 1년 중 가장 성수기로 통하는 여름 대목, 돈이 되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멀티플렉스의 폐해’와 이를 악용한 ‘변칙개봉’이 더 큰 흥행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 <부산행>


개봉 전 3일간 ‘유료 시사’로 57만 명 모아

 

《부산행》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삽시간에 좀비로 변해가는 혼돈을 배경으로 한다. 그 와중에 서울발 부산행 KTX에 탑승한 일부 승객들만이 운 좋게(?) 살아남는다. 말이 좋아 생존이지 KTX 안도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이 KTX에 올라타고 주변 승객들을 물어뜯으면서 곧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KTX가 칸으로 구획되는 구조라 좀비로 가득한 객차를 피해 문을 닫고 옆 칸으로 이동한 몇몇은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간다. 그것도 잠시, 인간의 이기심은 극한 상황에서 물을 흐리고 결국 모두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좀비의 공격을 피해서 온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람들은 전염 위험이 있다며 이들이 죽건 말건 다시 칸을 옮기라고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부산행》과 같은 재난 블록버스터는 동시대의 사회상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부산행》의 배경인 KTX는 곧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좀비의 공격에서 살아남겠다고 사투를 벌이는 극 중 주인공들은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피 말리는 생존 전쟁을 벌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더욱이 침몰하는 사회를 구조해야 할 리더는 부재한 상황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만 득세하다 보니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이 생존의 주요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이런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부산행》이 정작 극장 개봉에서는 역설적으로 ‘각자도생’하는 폐해를 낳고 있다. 《부산행》이 연일 경신하고 있는 박스오피스의 기록에는 ‘변칙’이 숨겨져 있다. 《부산행》의 공식 개봉일은 7월20일이다. 하지만 《부산행》은 공식 개봉 5일 전인 7월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유료 시사’ 명목으로 57만 명 가까운 관객을 미리 모았다. 그러니까, 《부산행》이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5일 만의 500만 관객 돌파’는 실은 개봉 전 3일간의 유료 시사 관객 수까지 포함한 ‘반칙’ 흥행이라는 얘기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부산행》은 개봉일인 7월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474만9953명을 기록했다. 정확히는 하루 평균 100만 명이 되지 않는 수치다. 변칙개봉으로 하루 평균 1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한 《부산행》은 ‘보기 좋은’ 숫자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며 더 많은 관객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 이는 시장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은 영화’가 떠안고 있다.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 공존 모색해야

 

《부산행》과 같은 블록버스터는 개봉일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 보통이다. 거액의 제작비(《부산행》의 경우는 110억원)가 투입되는 까닭에 홍보 일정도 길게 잡아야 하고, 여름 시즌은 워낙 대작들이 집중되는 시기라 비슷한 체급의 영화들끼리 함께 붙어 출혈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의도다. 작은 영화는 블록버스터처럼 예산이 크지 않고 빅스타도 출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홍보에 한계가 있어 온전히 작품성만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될 수 있는 대로 블록버스터의 개봉일을 피해 최대한 많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이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가 공존해야 영화라는 문화의 다양성을 지킬 수 있다.

 

《부산행》의 변칙개봉은 영화산업의 페어플레이를 저해하는 행위다. 《부산행》의 1주 빠른 ‘실질적인’ 개봉 행위는 하나라도 더 스크린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은 영화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부산행》은 2500개에 달하는 국내 총 스크린 수 가운데, 개봉 첫째 주에 1700여개(개봉 4일차 1786개, 상영 1만292회), 둘째 주 1000여개 (개봉 10일차 1020개, 상영 5576회)를 확보했고 유료 시사회 동안은 2663회를 상영하며 56만5614명의 관객을 모았다. 관객 수 1만 명을 넘지 못하는 작은 영화가 부지기수인 것을 고려하면, 《부산행》의 ‘유료 시사회’로 작은 영화가 직격탄을 맞았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부산행》만의 사례가 아니다. 《나우 유 씨 미 2》는 《부산행》에 앞서 변칙개봉을 감행했다. 스크린 독점 문제는 올해만 해도 《검사외전》(1806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1708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1863개) 등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영화계 문제는 내부에서 자정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움직여야 할 CJ와 롯데, 쇼박스와 NEW 등과 같은 대형 회사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개선의 여지는 물 건너간 상태다.

 

이제 방법은 하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법으로 금지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대법원은 일찍이 1948년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영화관을 계열로 지배하는 것을 공정거래에 어긋난다며 불법화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 19대 국회에서 멀티플렉스의 특정 영화 스크린 수를 제한하는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법률로 제정되는 것에는 실패했다. 지금은 시민단체들이 주도해 스크린 독과점을 제한하는 법을 입법청원한 상태다. 과연 대형 제작·배급사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부산행》에는 혼자만 살겠다며 주변의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천리마 고속버스 회사 상무가 등장한다. 그의 말로(末路)는 당연히 비참하다. 꼭 영화 속 설정만도, 인간관계에서만 성립하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는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다. 그리고 문화의 본질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이 파괴된 산업에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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