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준비해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4 14:43
  • 호수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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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펴낸 한창훈 작가

한창훈 작가가 올해는 작은 소설집을 내놓았다. 소설 다섯 편을 모은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다. 176페이지밖에 안 되는 작은 책이지만, 이 책은 수십 년이 걸려서야 완성된 단단하고 커다란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창훈 작가는 다섯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물질과 소유 중심주의’ ‘소통과 공감의 부재’ ‘성공 지상주의’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주의’ ‘독재의 폐해에 시달리는 사회’를 풍자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와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짚고, 성공과 일등을 향해 질주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한창훈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176쪽 1만2000원


누구도 특권을 누리지 않는 나라 이야기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를 물으니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한 작가의 젊은 시절 또한 궁금해진다.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서 태어난 그는 마흔 전에는 기구할 거라는 사주팔자가 대략 들어맞는 삶을 살았다. 전업작가가 되기 전에는 음악실 DJ, 트럭운전사, 커피숍 주방장, 이런저런 배의 선원, 건설현장 막노동꾼, 포장마차 사장 따위의 이력을 거쳐야 했다. “20대 후반에 대전 신시가지 연립주택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한 신문의 칼럼을 읽었는데, 얼마나 가슴에 와 닿았던지 그 칼럼을 가위로 오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읽고 또 읽었다. 현재 녹색평론 발행인으로 계신 김종철 선생님의 칼럼인데, 제목은 ‘단 하나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였다. 남대서양 화산섬인 트리스탄 다 쿠냐 섬의 이야기였다. 그 섬에 잠시 주둔했던 영국군이 거친 환경 탓에 철수를 했는데, 한 하사관 가족이 남아 공동체를 꾸렸다는 것이었다. 그곳의 법은 단 한 줄, ‘누구도 특권을 누려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간주된다’였다.”

 

세월이 흘러 40대 중반이 된 한창훈 작가는, 어느 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에 대한 우화(寓話)풍 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는다. 처음엔 거절하지만 문득 저 가슴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섬 이야기가 떠오른다. 김종철 선생의 칼럼은 그렇게 연작소설의 첫 편인 ‘그 나라로 간 사람들’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이어서 다른 네 편의 소설이 5년 사이에 차례로 발표된다. 소중한 씨앗 하나가 연작소설을 낳게 만든 것이다. 

 

“바다의 특징은 잔잔하거나 파도가 치거나 똑같이 한다는 것이에요. 그제는 한 팔 정도의 파도가 쳤는데 모두 그 높이였어요. 어제는 가문비나무 높이만큼 치솟았는데 모든 파도가 그랬어요. 오늘은 보시다시피 똑같이 잔잔해요.” 섬나라 아이의 말을 듣고 법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전전긍긍하던 어른들은 ‘파도처럼 하면 되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 한마디에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 이것은 거문도의 바다가 한창훈 작가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한창훈 작가

바다가 가르쳐준 ‘진짜 행복’과 ‘진짜 사랑’

 

화산 폭발 때문에 섬을 떠나 본토인 육지로 이주하게 된 섬 주민들에게 어느 날 법학자가 찾아와 묻는다. 본토에서는 도둑질을 하면 열 배를 배상하거나 감옥살이를 하는데 섬에서는 어떻게 하느냐는 법학자의 질문에 주민들은 합창하듯 말한다. “누가 배가 고파 찾아오면 나눠 먹죠.” 하지만, “땅 소유에 대한 다툼은 어떻게 해결하겠냐”고 묻자 이번에는 모두들 침묵한다. 자기 땅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법학자는 결국 “설마 다툼마저 없진 않겠죠?”라고 묻는다. 측량사가 대답한다. “흥분은 결국 가라앉기 마련이죠. 거센 풍랑도 언젠가는 가라앉듯 말입니다.”

 

한창훈 작가는 이 섬을 ‘이상 사회’라고 말하진 않는다. 소설을 읽은 독자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면,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이상해서가 아닐까 반문할 것 같다. 거문도의 세 섬 가운데 서도(西島), 망망한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한 작가의 단층집 한쪽 벽면 맨 위에는 딸이 만든 ‘시 액자’가 걸려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동시인데, 딸은 아빠의 작업실을 찾을 때마다 먹던 홍시가 참 맛있었다고 적혀 있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그림 작업을 그 딸이 맡았다. 동시를 짓던 그 어린 딸이 자라서 이제는 아빠와 함께 책을 만든 것이다. 아빠는 딸에게 들려주듯 ‘진짜 사랑하는 게 뭔지, 진짜 행복한 게 뭔지’를 알려준다. 소설 속 여인 쿠니와 기자의 대화를 통해서다.

 

“‘참 혼란스러워요. 어릴 때부터 전 늘 준비하면서 살았어요. 준비를 해야 행복해진다고 배워서. 그래서 그런지 행복한 순간이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아요.’ 기자는 오늘 있었던 일과 살아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덧붙였다. 듣고 난 쿠니가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우리가 살던 화산섬에는 행복이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러니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기자가 들었다. ‘이곳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죠. 그 사람이 보고 싶고 만나면 기분이 좋았어요. 아마 그런 걸 행복이라고 말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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