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창업기]③ 임상훈 셀레브 대표 “크리에이터? 나는 기록자일 뿐”
  • 박성의 기자 (sincerity@sisajournal-e.com)
  • 승인 2016.08.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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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더아이콘티비 거쳐 영상콘텐츠기업 창업…“4K로 촬영, 재구성 가능한 영상 만들겠다”

꿈은 거리에서 시작됐다. 거리엔 사람이 모였고 그들의 언어, 옷, 관심사는 문화가 됐다. 사람들은 이를 스트리트 컬처(street culture)라 불렀다. 아류로 취급받던 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하나의 상품으로 변화시킨 건 임상훈(33) 셀레브(sellev) 대표다.

임 대표 이력서에 대기업은 없다. 다만 작은 성공과 실패들이 그물처럼 촘촘하다. 경험과 실험이 모여 지금의 임씨를 만들었다. 임씨는 스트리트 패션지 맵스와 큐비즘 편집장, 브로큰세븐 발행인을 거쳤다.

2014년에는 에스아포스트로피라는 광고회사의 신규사업 프로젝트팀 계약직 직원으로 합류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더아이콘티비(the ICON TV)라는 영상서비스 브랜드가 됐다. 임씨는 올해 또 다른 도전을 준비 중이다. 성공에 안주할 법도 하지만 그는 “꿈은 명예와 부가 아닌 나로 인해 바뀐 누군가의 삶”이라며 “타인의 삶을 조명하고 기록하며 빛내주는 콘텐츠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큐비즘·더아이콘티비로 엿본 영상콘텐츠의 가능성”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세계 경제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렸다. 여파는 한국에까지 미쳤다. 그 무렵 브로큰세븐이라는 패션지를 발행하던 임상훈 씨는 경영난에 직면했다. 도전의 결과는 빚 3500만원으로 돌아왔다.

임씨가 재기에 성공한 건 2013년이다. 임씨는 군 제대 후 쓴맛을 봤던 매거진으로 다시 복귀한다. 다만 펜이 아닌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낼 수 있다면 독자는 텍스트 아닌 영상에도 반응할 거라 확신했다.

“큐비즘에서 1년 동안 하루 1명씩 350명 가까이 인터뷰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다만 지면에만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영상콘텐츠가 뜨기 전이었는데 인터뷰 동영상을 짧게 편집해서 올려봤다. 그런데 이게 유투브에서 인기가 좋더라. 영상 콘텐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가능성을 엿본 그는 2015년 3월 무작정 동대문 패션위크를 찾는다. 카메라앵글에 담아낸 주인공은 모델 이성경. 영상 분량은 1분 30초였다. 이 짧은 동영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더아이콘티비의 시작이었다. 


“셀레브, ‘도전’이라는 시대정신에 도전하는 회사”

임씨가 영상에 담아낸 유명인들의 이야기는 누리꾼 이목을 끌었고 대기업 제휴문의가 줄을 이었다. 임씨는 그 뒤 국장이라는 명함을 얻었다. 이른 나이 손에 쥔 성취에도 임씨가 선택한 건 퇴사였다. 그는 또 다시 스타트업이라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수많은 매체를 거쳤지만 그 때마다 내 선택의 기준은 ‘시대 목표’였다. 이 시대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전까지 주로 영감을 주는 유명인들을 인터뷰했다면, 이번에는 영감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임씨가 창업한 회사의 이름은 셀레브(sellev)다. 사명은 중의적이다. ‘유명인(celeb)+모든 것(everything)‘ 또는 ’팔다(sell)+모든 것(everything)‘이라는 두 개의 뜻을 지녔다. 즉, 셀럽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이 지닌 무형의 능력을 유형화한 상품으로 선보이겠다는 취지다.

짧은 영상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포맷은 아이콘티비와 유사하다. 굳이 퇴직하고 무명(無名)의 사업체를 꾸린 이유가 궁금했다. 임씨도 이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다 했다. 그는 창업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 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기존 콘텐츠와 다른 무언가를 만들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콘티비와 큐비즘에서 만들었던 영상들. 그 속에 담아낸 이야기. 이 콘텐츠들을 만든 게 임상훈이더라. 도전이란 게 달라야만 의미를 갖진 않는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전파자 역할을 하고 싶었다.”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아…단지 기록할 뿐”


셀레브는 피사체를 4K 시네마 카메라로 담아낸다. 4K 카메라는 Full HD 영상 해상도의 4배를 구현한다. 장비가 비싸고 촬영이 까다롭지만 시청자에게 생동감 있는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 임 대표는 짧더라도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소비되고 바로 버려지는 ‘쓰레기 콘텐츠’가 아닌, 짧은 영상들이 다시 엮이면 또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임 대표 생각이다.

“그 순간 재밌고 시간 지나 버려지는 콘텐츠는 많다. 다시 조합하면 새로운 콘텐츠로 엮어낼 수 있는 재구성 가능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 3~4분 분량 영상도 다시 짧게 나눠서 필요한 키워드에 따라 나누고 묶을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즈 역시 이 같은 작업을 이미 진행 중이다.”

셀레브는 지난 4월 애니메이션 제작사 로커스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에게 투자는 낭보인 동시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신호탄이다. 임 대표 역시 수익구조를 고민하고 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를 제작 중이지만, 지난달 1일부터 중국의 외국 콘텐츠 규제가 강화되며 난관에 봉착했다. 임 대표는 콘텐츠 사업가라면 이 같은 상황을 항상 염두하고 단기 계획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외 상황이 3~4개월 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콘텐츠 사업이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목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코앞의 일들을 잘 해내다보면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셀레브도 콘텐츠 단 2개를 올렸을 시점에 제휴문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사가 크다보면 중국시장 진출 기회도 언제든 열릴 수 있다.”

임 대표는 CEO이자 기획자다. 성공을 맛 본 사업가이자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창업가기도 하다. 뭔가를 이뤄내면 새 도전거리를 찾는 탓에 주변에서 ‘내 것을 챙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그는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사업에서는 조연이 돼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타인의 삶을 조명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 그게 임 대표가 창업을 하는 이유이자 성공의 기준이다.

“일하는 분야에서 나보다 창의적인 사람은 많다. 나는 크리에이터가 아닌 기록자다. 내 목표는 부와 명예가 아니다. 타인의 삶을 기록하고 조명하는 삶. 그래서 나로 인해 바뀐 누군가의 삶. 내가 추구하는 성공은 이거구나 싶더라. 영화 어벤져스 속 주인공은 캡틴 아메리카지만 헐크의 팬도 있지 않나.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해내고 지켜낼 수 있다면,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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