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물산, 강남 일대 1조7000억원대 재건축사업 부당 수주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8.11 15:00
  • 호수 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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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 동원해 시공자 선정 신청…조합원들 “삼성 배만 불렸다”

삼성물산이 강남구 일대의 재건축사업을 부당하게 수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3년 7월 시행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단초가 됐다. 이로 인해 재건축·재개발사업 시공사 선정은 경쟁입찰 절차를 거치도록 강제됐다. 다만 도정법 시행 이전에 맺은 수의계약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인정하는 예외규정을 뒀다. 그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2002년 8월9일 전까지 조합원(토지 등 소유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을 것’과 ‘도정법 시행 두 달 이내인 2003년 8월31일까지 규정된 서류를 갖춰 관할 당국에 신고할 것’이다. 

 


대치 청실, 시공사 선정 서류 안 줬는데 신고

 

삼성물산은 이런 예외규정을 이용해 강남 지역 일대의 재건축사업을 대거 수주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합이 시공자 선정 신청 서류를 넘겨주지 않거나,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내지 못했음에도 편법을 동원해 사업을 수주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이런 의혹이 제기된 재개발단지는 시사저널이 파악한 것만 총 세 곳. 이들 재개발사업단지 조합원들은 삼성물산의 부당한 사업 수주로 고액의 분담금 등 피해를 입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의혹이 가장 먼저 제기된 곳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 재건축단지다. 이곳에서 처음 사업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이다. 그해 4월 (가칭)청실아파트 재건축사업 추진위원회가 창립되면서 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총회엔 당시 전체 조합원(토지 등 소유자) 1378명 중 641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 488명(35.4%)의 동의를 얻어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선정됐다. 추진위와 삼성물산은 2001년 사업약정서(MOU)를 맺었고, 이듬해인 2002년 전체 조합원의 50.14%에 해당하는 691명의 동의를 얻어 이를 인준했다. 

 

이런 가운데 2003년 7월 도정법이 시행됐다. 시공사가 사업을 부추기고 과다한 지분을 요구하는 등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각종 부조리가 끊이지 않아, 이를 근절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법안의 핵심은 시공사 선정은 경쟁입찰 방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합 내에서도 경쟁입찰을 거치는 것이 이익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조합은 삼성물산과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2004년엔 ‘경쟁입찰로 시공사를 선정한다’고 조합정관을 개정하기도 했다. 

 

이후 강남 재건축 열풍이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2009년 청실아파트 재건축사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때 조합은 강남구청으로부터 예상 밖의 공문을 받았다. 삼성물산이 이미 시공사로 선정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2003년 7월29일 관련 서류를 구비해 시공사 선정 신청을 했고, 같은 해 12월 강남구청에서 신청을 수리했다. 이 때문에 지난 6년간 경쟁입찰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것이라고 믿어온 조합원들은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 측은 삼성물산과 강남구청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0년 12월 조합이사이던 김아무개씨가 법원에 계약체결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했다. 삼성물산은 법원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7월29일 시공사 선정 신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강남구청의 서류 보완 요구에 따라 같은 해 8월29일과 10월28일 조합에 공문을 보내 필요한 자료를 넘겨받아 제출했다고도 했다. 법원이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가처분신청은 2011년 4월 기각됐고, 삼성물산은 시공자로 최종 선정됐다. 그러나 이후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강남구청은 삼성물산 측에 자료 보완 요청을 한 적도, 보완 자료를 받은 적도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뿐만 아니라 조합 측도 삼성물산에 신공사 선정과 관련된 자료 일체를 넘겨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조합장이던 서울시의회 부의장 출신의 이아무개씨는 2011년 1월 공증받은 속기록을 통해 ‘도정법에 규정된 신고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신고서류를 제공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또 2011년 조합총회 속기록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이아무개 조합감사의 ‘신고 서류를 준 사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삼성물산 측이 신고처리를 완료해 놓고 조합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다’는 발언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삼성물산 관계자는 “조합에서 제공해 준 자료를 바탕으로 강남구청에 시공사 선정신고서를 적법하게 접수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초우성1차아파트(위 사진)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청실아파트(現 래미안 대치팰리스)


시영·우성, 동의자 수 끼워맞춘 의혹

 

이런 지적이 제기된 것은 청실아파트만이 아니다.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 재건축사업 과정에서도 시공사 선정을 둘러싼 의혹이 나왔다. 삼성물산이 2002년 8월9일까지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했음에도 동의자 수를 임의대로 조작해 시공사 신고 절차를 마쳤다는 것이다. 이에 현재 일부 조합원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삼성물산의 시공자 선정 신고수리 처분 무효 확인 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재건축사업은 1997년에 시작됐다. 그해 7월 창립총회를 열어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정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창립총회 속기록에 따르면 전체 조합원 1665명 가운데 직접 참석 820명과 서면결의서 202명 등 모두 1022명이 참석했고, 이 가운데 902명이 단독 시공사로 나선 삼성물산에 동의했다. 그러나 2003년 삼성물산이 강남구청에 시공자 선정 신고를 할 때 동의자 수는 990명으로 둔갑했다. 문제는 동의자 수의 근거가 1997년 7월 열린 창립총회였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실제 토지 등 소유자 수가 1970명으로 파악되면서 과반수 이상의 동의율(50.3%)을 맞추기 위해 임의대로 동의자 수를 늘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삼성물산이 2003년 8월29일 시공자 변경 신고를 내는 과정에서도 동의자 수는 다시 한 번 늘어났다. 직접 참석자 902명이 동의를 했고, 서면결의서를 통한 동의자가 141명이라는 것이었다. 역시 동의자 수의 근거는 ‘창립총회’였다. 상기한 창립총회 속기록에 따르면, ‘902명의 동의’는 직접 참석자와 서면결의서를 합한 수다. 결국 141명의 추가 서면결의서를 통한 동의자가 갑작스레 생겨난 것이다. 이번에도 전체 조합원 수가 2038명으로 재확인되면서 과반수 이상(51.2%)의 동의율 확보를 위해 허위 신고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물산은 특히 변경한 동의자 수가 창립총회 참석자 수를 넘어서자, 이마저도 기존 1022명에서 1105명으로 늘렸다. 

 

행정 청구를 제기한 조합원 측은 갑자기 등장한 141명의 서면결의서는 실체가 없다고 보고 있다. 뒤늦게 조합원들의 동의를 구한 것이더라도 법적 효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2013년 2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대법원은 롯데건설의 신반포2차 재건축사업 과정에서 2002년 8월9일 이전, 총회에서 토지 등 소유자 40.3%의 동의를 받고 신고기간에 16%의 추가 동의받은 시공자 신고 수리는 법규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적법한 법적 절차에 따라 강남구청으로부터 시공사 선정 결과 통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강남구 서초동 우성1차아파트 재건축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절차를 밟아 시공사에 선정됐다는 것이다. 이곳의 일부 조합원들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삼성물산의 시공사 선정은 무효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소장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2001년 10월 열린 (가칭)추진위원회 창립총회에서 삼성물산의 시공사 선정 안건에 대해 조합원 786명 가운데 49.7%에 해당하는 391명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도정법 시행 이후 삼성물산은 서초구청에 시공사 선정 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족한 동의 수를 조합원 12명으로부터 받은 서면결의서로 채웠다. 확인 결과, 서면결의서를 통해 동의를 얻어낸 시점은 2003년 4월부터 6월까지였다. 2002년 8월9일까지 조합원 절반 이상 동의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역시 신고기간 내에 추가 동의받은 시공자 신고 수리는 법규 위반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정확히 적용된다. 그러나 법원은 7월22일 조합원들이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면서 결과적으로 삼성물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시영아파트. 이주가 완료돼 아파트 단지가 텅 비어 있다.


문제 제기된 재건축단지서 법적 분쟁 가능성

 

이처럼 각종 부당 수주 논란에도 삼성물산은 해당 재건축사업단지 3곳을 ‘무혈수주’ 할 수 있었다. 이들 단지의 재건축사업비 규모는 1조7160억원에 달한다. 지역별로 보면 △대치동 청실아파트(사업비 4672억원-공사비 4263억원) △개포동 시영아파트(8431억원-6062억원) △서초동 우성1차아파트(4057억원-3830억원) 등이다. 조합원들은 그로 인한 피해가 자신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는 입장이다. 실제, 문제가 된 세 곳 모두 인근 재건축단지와 비교해 높은 분담금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조합원들은 그 배경이 경쟁입찰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현재 문제의 재건축단지에서는 향후 법적 분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준공이 완료돼 입주를 시작한 청실이나, 일부 세대를 제외하고 이주 절차를 마무리한 시영 일부 조합원의 경우 향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물산의 일방적인 시공사 선정 신청으로 인한 피해를 보전받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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